• 최종편집 2022-06-2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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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랑은 언제나 간절하다

연애와 결혼에 지극히 관심이 많은 건 교회 안의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 등 5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뜻하는 ‘5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가 출현했다고는 하지만 이성으로부터 사랑받고 또한 사랑하고 싶은 뜨거운 피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둘 사이에 한 몸을 이루게 하신(창2:24) 하나님의 섭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젊은이들치고 연애와 결혼이 성경적 의미를 갖고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교회 예배에만 국한되어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의 온 삶의 영역에서 실천되는 것이라면 오히려 성경적인 연애와 결혼을 이루고 싶은 것이 요즘의 똑똑한 크리스천 청춘들이다. <아이 스틸 빌리브>(I Still Believe, 2020)는 대충 교회에 다니며 신앙보다는 연애에 관심을 둔 청년들이 아니라 진심으로 신앙에 중심을 둔 청춘 남녀가 연애와 결혼 그리고 고통을 넘어선 사랑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준 크리스천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 크리스천 보컬인 바트 밀라드(Bart Millard)의 삶과 신앙을 다룬 영화 <아이 캔 온리 이매진>(I can only imagine, 2018)을 만들어 유명해진 어윈 형제(Andrew Erwin/Jon Erwin)감독이 이번에는 세계적인 CCM 팝 가수 제레미 캠프(Jeremy Camp)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 역시 미국 CCM계의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인 ‘도브 어워즈’ 5회 수상에 빛나는 유명 크리스천 뮤지션이지만, 그의 사랑과 결혼이야기가 없었더라면 그의 감동적인 노래는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져서 암 투병을 해야 하는 여성과 결혼을 하고, 치유라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천국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이 그의 노래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대중들로 가득 찬 공연장에서의 사랑 고백과 사랑하는 여인의 회복을 위해서 관중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모습은 요즘 젊은이들의 마음을 빼앗고도 남을 만한 장면이기도 하다.

 

장르로서의 기독교 멜로드라마

기독교 영화 안에서 멜로드라마는 통속적인 멜로물의 장르적 관습을 따르지만, 신앙 안에서 혹은 신앙을 위해서 연애감정을 넘어서려는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사랑의 감정에 매몰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구하는데 내적인 갈등의 상당한 부분을 할애한다.

 김훈순과 동료 교수들이 함께 쓴 <영상콘텐츠연구>의 이론을 빌리자면 <아이 스틸 빌리브>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관습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나 스타일이 이 영화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1)일반적인 유형의 인물을 설정하고 (2)남녀 간의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지며 (3)가족이나 직장 등 사적인 배경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묘사하고 있고 (4)비극적 사건의 전개로 인한 파국의 위기와 (5)비극적 정서를 강조하는 데서 일어나는 정서의 과잉 등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장르란 영화의 비슷비슷한 소재나, 주제, 형식 혹은 구성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영화를 구분하는 분류법이다.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다는 점도 장르영화를 이해할 때 항상 기억할 점이다. 즉 장르 영화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의 반복성이 매우 중요하지만, 식상하지 않아야 하며 감독 고유의 성향도 드러나야 하는 까닭에 조금은 다른 변이성이 반드시 들어가야 좋은 장르 영화로 평가받는다. ‘비슷하지만 다르다’라는 평가는 성공적인 장르 영화의 핵심 사항인 셈이다.

 <아이 스틸 빌리브>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관습을 따른다. (1)평범한 기독교 가정에서 음악에 대한 꿈을 갖고 대학으로 떠나는 신입생인 제레미 캠프(K.J.아파)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 본 아버지(게리 시니즈)는 대학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고급 기타를 선물하는 애정을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음악은 취미였지만 아들에게는 전문가적 소양이 있다고 본 아버지의 판단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옳은 것으로 판명난다. (2)CCM 콘서트 현장에서 신입생 제레미는 우연히 멜리사 헤닝(브릿 로버트슨)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3)멜리사의 전 남자 친구 때문에 오해와 갈등으로 인한 감정들을 분출하지만 이들은 다시 결합하여 결혼에 성공한다. (4)그러나 멜리사는 암으로 인해 고통받고 마침내 세상을 떠나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기도를 하고 아내 멜리사가 입원한 병실에서 노래를 불러주지만 아내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다. (5)제레미는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기타를 부수는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다룬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나타나는 장면이다.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 만큼은 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기적을 바라지만 기대가 절망으로 바뀔 때 절망은 분노로 변하기 쉽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의미를 잃고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기독교 드라마로서 <아이 스틸 빌리브>는 일반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특징을 따르지만 분명 다른 면모도 갖추고 있다.

 

기독교 멜로드라마는 분명 다른 데가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청춘들의 연애와 사랑은 일반적인 젊은이들의 그것과 같으면서도 달라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을 개입시키자면 죄인 된 속성을 가지고 남녀가 만나더라도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혜 가운데서 상대방을 향한 사랑과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첫째, 위기에서 신앙의 개입은 기독교 멜로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제레미는 멜리사에게 한눈에 반해서 사귀기를 청하지만 멜리사는 하나님과 언니에게 올해는 딴짓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일단 거절한다. 제레미는 멜리사가 전에 사귀었던 남자 친구를 언급하며 그 때문인지를 묻는 바람에 멜리사의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자신의 성급한 처사로 미숙한 처신과 오해로 인해 헤어지자는 그는 멜리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님도 우리 사랑을 응원하신다면? 놓치면 안되는 사랑인 거지?”

 정말 교회 다니는 청년이 이성을 유혹(?)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고단수의 작업 멘트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아무 데나 개입시키는 일은 옳지 않지만, 인생의 중대한 일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것은 바른 신앙이라 볼 수 없다. 청춘의 삶에서 이성을 사랑하고 연애를 하는 일은 직장을 구하고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는 일 만큼 중요하다. 특히 결혼을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어찌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통속적 멜로드라마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남녀관계에서 왜 하나님을 개입시키는지 세상 사람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크리스천 청춘이라면 가능하고 또 그래야 한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운명은 그저 우주의 운행과 우연이 맺어준 인연으로 여기지만, 이 운명을 굳이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자면(‘운명(運命)’이란 용어는 자칫 운명론과 연계될 수 있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자연과 우연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우주와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안에서 일어난다고 믿는 까닭에 연애와 결혼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일은 당연하다.

 둘째, 연애의 상황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개입은 기독교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특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통속적 멜로드라마에서 사랑은 끓어오르는 감정의 분출과 육체적 욕망을 통해 드러난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날 개방된 연애관이 보여주는 현실일 수 있다. 그런데 <아이 스틸 빌리브>의 연인들은 하늘의 별을 보며 주님의 무한하심을 얘기한다. 수십억 개의 별 하나하나를 수 놓으신 하나님의 창조성에 감탄할 뿐이다. 마치 시편 8편에서 별을 보며 다윗이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생각하는 것과 닮았다. 다만 수명을 다하는 별이 가장 빛난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여주인공의 비극을 예견할 수 있지만 말이다.

 셋째, 고통을 대하는 자세에서 이 영화는 명확히 기독교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아내를 떠나보내는 젊은 남편의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을 수가 있으랴마는, 고통에 대한 신앙적 질문과 해석 그리고 그것이 창조적인 발전으로 이어져서 성공하는 크리스천 뮤지션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분명 일반 영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들에겐 아버지의 위로가 중요하다

아내를 잃고 병실에 쓰러져버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아프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제레미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아버지에게 묻는다. 제레미의 아버지가 어린 나이에 아내를 떠나 보낸 아들을 위로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왜 하필 멜리사였는지 묻는 거라면 글쎄, 모르겠다 정말로. 미안하다. 솔직히 지난번에는 결혼한다는 널 이해하지 못했다. 멜리사와 함께 고난의 길을 택했잖니.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있기로. 그런데 가족을 위해서라면 나도 너처럼 행동할 것 같다. 그게 사랑이니까. 우리 아들은 정말 사랑을 했더구나. 그런 사랑은 흔치 않는 기회거든. 네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르겠지만 이건 알겠어. 실망과 낙담으로 얼룩진 인생이 아니라 그로 인해 충만한 삶이란 걸. 네가 자랑스럽구나.”

 아버지는 아들을 인정함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이러한 아버지는 기독교 영화에서 중요하다. 흔히 멜로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가부장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기독교 드라마에서 아버지는 자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수용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인생의 어려움에 대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교회 청년회가 영화관에서 다시 봐야 하는 영화

<아이 스틸 빌리브>는 2022년도를 시작하는 첫 기독교 영화가 되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꺾이지 않은 현실에서 기독교 영화를 극장에 거는 일은 큰 모험에 가깝다. <아이 스틸 빌리브>는 보기 드문 청춘 멜로드라마로서 영화관의 주 고객층인 젊은이들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속에서 개봉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서울의 ‘필름포럼’ 같은 기독교 전문 영화 상영관에서는 계속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교회 홍보의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서 관객을 모으는 데는 어려운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극장에 관객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영화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꼭 극장이 아니더라도 IPTV든 OTT 서비스를 이용하든 한국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면 인생에 보탬이 되는 영화한 사실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음악영화로서 오락적 가치도 충분하고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성경적이어서 좋다. 음향시스템이 잘 갖춰진 영화관에서 다시 한번 한국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강진구 교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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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독교 멜로드라마는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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