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8-10(월)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교회 또 감염 확산 대상으로 여겨 정부와 정면 승부수를 두면서 종교 탄압 말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교회에서의 주일예배 이외 소모임과 교회 내 식당 운영 금지를 강력한 질병 감염 관련 지침에 불응할 경우 주최측 교회는 물론 참석하는 자체도 벌금 300만원을 부과한다는 협박성 지침이 나오자 한교총 등 연합기관이 강력하게 규탄하며 나섰다. 헌법에 명시된 종교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수용할 수 없다고 정면 대결로 나서자 정세균 총리는 한교총 등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교회 입장을 수용할 것으로 한발짝 후퇴하는 한편 24일자로 교회에 대한 지침은 해제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향한 사회적 염려도 제기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한국교회도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물론 교회는 교회가 예배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교회마다 질병 예방 지침은 그 어느 단체보다 잘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면 교회가 예방 대책의 모범 사례로 사회에서는 신뢰를 줄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할 것으로, 성찰과 반성도 고려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 향후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교회 본래의 모습과 부흥을 가져 올 수 있는 대책이 있을까?

바로 교회는 교회만의 교회가 아니라 대사회적 책임과 공적 연대성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복귀하기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 분들이 많다. 학교 교실을 학생 없는 강의로 영상을 통해 강의하는 비대면과 대면 양측을 시도하는 대학들이 즐비하게 늘고 있다. 하지만 교회도 예전처럼 전도와 부흥의 두마리 토끼를 잡기에 너무 멀리 있다. 그동안 교회와 교단들과 연합기관들이 성장제일주의와 교파 분열과 연합기관 분열사태는 과히 이기적인 형태로 일관하였던 것에 대해 지성과 반성을 해 볼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코로나19 이후 교회가 어떻게 변화를 모색하느냐에 따라 상당 부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느냐는 문제를 논의 해야 할 것이다.

1895년 서울에는 콜레라 전염병에 감염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조정은 콜레라 걸린 사람들을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으로 찾아가라고 곳곳에 대자보를 붙였다. 장로교 선교사로 파송 받은 언더우드 목사 부부는 물론이고 선교사들로 인력이 부족했을 때 그가 출석했던 새문안교회 교인들까지 자원봉사자로 나선 분들이 이 일에 목숨을 걸고 발 벗고 나섰다. 그들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힘 썼다고. 마침내 콜레라가 퇴치되고 나서 조정에서는 이들 자원봉사자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했다. 그런데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우리가 이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하여 모두가 교회에 헌금으로 드렸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교회와 기독교는 위기 극복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 비단 이 뿐이겠는가?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유출된 기름이 온 바다를 뒤덮었을 때에 한국교회 성도들이 나서 기름을 손수 닦았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자연환경을 살리고 지원하기 위해 나선 한국교회는 말없이 봉사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한 사회적 역할로 신뢰를 회복한 것이다.

15세기경에도 로마에 흑사병이 나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시신이 시내를 채우며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을 때 야밤에 검은 복장을 한 분들이 이 많은 시신을 깨끗이 다 치웠다. 훗날 이들이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수소문하여 알았보니, 기독교 박해로 지하 카타콤에 살았던 기독교인임을 알고 콘스탄티 황제는 비로소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때부터 노약자들을 돌보고 이들을 위해 법률을 정하고 복지시설을 세우는 한편 루터의 사회복지 법령, 칼빈의 종합 구민원, 츠빙글린의 비민법 등 사회적 재난을 당했을 때 기독교가 앞장 섰던 전례가 많다. 최근 한국교회 대표적인 대형 교회 가운데 서울 명성교회, 사랑의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포항 기쁨의교회, 부산 장유대성교회 등이 약한 교회들이 사회에 상당한 구제금을 지원하고 나섰다. 바로 이것이 사회적 신뢰를 쌓는 것이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서는 새 사도행전을 한국교회가 써내려 갈 수 있는 희망이 바로 100년 전 평양에 일어났던 성령의 대부흥의 바람이 침체에 빠진 한국교회에 새 소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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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 당면 과제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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