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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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목회 3월호
    월간목회 3월호가 출간됐다. 이번 3월호 특집은 ‘한국교회 목회백서(04)-교육’이다. 다음세대가 아닌 ‘다른세대’라 불릴 만큼 낯설어진 세대,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신앙 전수의 위기 속에서 한국교회의 교육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월간목회」 2026년 3월호는 교육을 단순한 교회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 가정, 공동체 전체를 관통하는 목회의 핵심 과제로 조명한다. 온 세대 예배와 구조적 재설계를 통해 다음세대를 교회의 중심으로 세워 온 국내 교회의 실제 사례, 미국교회 현장에서 발견한 교회학교 ‘리셋’의 흐름과 교육 환경, 형식, 디테일의 변화 그리고 ‘무너진 교회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교육으로 응답한 생생한 기록을 담았다. 양육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커리큘럼을 재구성하며 현장에서 마주한 한계와 질문에 대한 목회적 대응을 돌아보고 성도 개인과 교회공동체가 경험한 변화도 함께 나눈다. 다음세대를 위해 교회의 시선과 우선순위는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는가. 오늘의 교육을 통해 한국교회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이번 특집이 한국교회 교육의 현재를 진단하고, 다음을 향한 길을 함께 모색하는 성찰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이현수 목사 규모가 아닌 분량으로 시작하는 ‘다음세대’ 사역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회’를 표어로 삼은 천성교회는 규모보다 분량에 충실한 다음세대 사역을 실천해 온 지역 교회로, 35년간 이어 온 세대통합예배와 ‘신앙 명문 가정 세우기 프로젝트’를 통해 교회와 가정이 함께 신앙 전수를 감당해 나가고 있다.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배와 가정, 일상과 관계 속에서 다음세대를 품어 온 실제 사례들을 살펴본다. 아울러 각 교회가 주어진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다음세대 사역의 가능성과 방향을 찾고자 한다. 최규명 목사 내일을 세우는 충정교회 교회학교 한때 다음세대의 위기를 겪었던 충정교회는 ‘복음과 사랑으로 다음세대를 세운다’라는 비전 아래 예배와 인력, 재정 등 교회 생태계를 새롭게 재편해 왔다. 전임 교역자 배치와 교사 양성, 교회·가정·교사가 연합하는 신앙 전수 구조를 통해 다음세대 사역의 실제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영유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관계 중심·복음 중심 사역으로 나타난 변화와 열매들은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이 곧 교회의 생명과 사명을 지키는 길임을 여실히 가르쳐 준다. 한민수 목사 프로그램이 아닌 절박한 물음에서 시작된 부흥 불로교회 교회학교 사역은 ‘아이들 사역’이라는 타깃 접근이 아니라,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한 목회적 질문에서 출발했다. 온 세대 예배를 교회의 중심에 두고, 교회학교 원리와 구조를 교회 전체 시스템에 적용하며 예배 문화와 공동체 정체성을 재구성했다. 특히 ‘아이워십예배’를 통해 다음세대를 예배를 이끄는 주체로 세워 나갔다. 이를 통해 교회 규모와 상관없이 적용 가능한 다음세대 목회의 실제적 방향과 희망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유승현 목사 미국교회에서 찾는 ‘교회학교 리셋’ 다음세대 위기 앞에서 다시 방향을 찾기 위해 미국교회에 주목했다. 미국교회 현장에서 교회학교를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환경·형식·디테일 전발을 리셋하는 구조적 변화로 대응해 온 흐름을 발견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간설계, 디지털 세대에 맞는 예배 형식, 그리고 평범함 속에 숨은 섬세한 배려는 다음세대를 교회의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힘이 되었다. 미국교회의 사례들을 통해 교회학교 리셋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 목 월간목회(2026년 3월호) 저 자 월간목회 편집국 펴낸날 2026년 3월 1일 판 형 208*276㎜ 분 량 244쪽 가 격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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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6
  • [김양현 목사의 영화이야기]왕과 사는 남자
    감독 : 장항준 주연 : 유해진(엄홍도), 박지훈(이홍위), 유지태(한명회), 전미도(매화) 한 번씩 대정향교를 가곤 한다. 대정향교 한 쪽 동재에는 추사 김정희가 써 준 현판이 걸려 있다. 疑問堂(의문당), 의심이 생기면 질문을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1846년 대정향교의 훈장이었던 강사공이 유배를 와 있던 김정희에게 부탁해서 써 준 현판이다. 추사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니 학문에 있어 경지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강사공은 추사에게 여러 번 강의를 부탁했었고 추사는 이에 응했다. 당시 추사에게 글을 배운 제자들은 강사공· 박혜백·허숙 ·이시형 ·김여추 ·이한우 ·김구오 ·강도순· 강기석· 김좌겸· 홍석호 등이 있다. 추사의 상황은 비록 유배중이었으나,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학자에게 글을 배울 수 있었으니 최고의 혜택을 누린 셈이다. 유배자들은 그 지역의 학문 발전에 직간접적 역할을 했다. 1453년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후원자였던 김종서, 황보인등을 제거하고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그는 왕으로 등극하고 선왕이자 조카인 단종을 상왕으로 몰아냈다. 이후 단종을 복위하려는 움직임이 집현전 학자 출신 신하들에게서 있었고, 발각되어 성삼문, 박팽년 등이 고문 끝에 단죄가 된다. 세조는 이를 문제 삼아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보낸다. 한편 영월의 한 촌락인 광천골, 먹고 살기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는 부락민들이 있다. 이 마을의 촌장인 엄흥도는 고민이 많다. 부락민들을 돌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 비탈길에 넘어져 정신을 잃었다. 한참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이웃 산골마을이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이 마을에는 잔치가 벌어졌다. 흰 쌀밥에 고깃국에 닭요리가 한 상 가득하다. 아니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정신을 차린 엄흥도는 촌장에게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촌장의 말인즉 얼마 전 고관대작이던 양반이 이 마을로 유배를 왔는데 처음에는 양반 행세를 해서 귀찮고 성가신 존재였지만, 점차 이 양반을 찾아 많은 선비들이 오더라는 것이다. 양 손에 각종 선물 보따리를 가득 들고서. 유배 중인 양반이 혼자먹을 수 없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고, 심심하니 아이들을 불러 글공부를 가르쳤다는 게다. 그래서 마을이 활기차고 풍성해 졌다고 한다. 엄흥도의 눈이 반짝인다. 그는 즉시 영월 관아로 가서 사또를 찾아 뵙고 다짜고짜 다음 유배지는 광천골로 해 달라고 요청한다. 물이 굽이 치는 청령포가 있어서 유배지로 딱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유배자를 잘 돌보고 감시할 것이라고 약조한다. 얼마 후 엄흥도의 소원대로 광천골 청령포에 한 사람이 유배를 오게 되었다. 엄흥도는 옳거니 하면서 그를 반긴다. 하지만 엄흥도의 예상과 달리 왠 젊은이가 오게 되었고, 알고 보니 그는 폐위된 임금이다. 게다가 한명회라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양반이 엄흥도에게 경고를 한다. 유배자를 잘못 감시하면 마을 전체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망연자실한 엄흥도, 일이 꼬여도 그렇지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면서 한탄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해야 하니, 엄흥도는 유배된 단종에게 식사 수발을 하기 위해 드나들 수밖에 없다. 단종 역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예상치도 못한 유배 생활을 하게 되니 삶의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염없이 누워있고 하늘만 쳐다보기 일쑤다.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만 지내는 단종을 보는 엄흥도의 심정도 타들어간다. 만에 하나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자기 목숨이 날아갈 판이다. 엄흥도는 노산군의 방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젠장, 고관대작을 바랬더니 폐위된 왕이 왠 말인가? 이러다 나도 가족들도 다 죽게 생겼구나” 엄흥도의 불평을 들은 단종의 마음도 복잡하다. 왕으로 있을 때도 백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는데, 유배되어 와서도 백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단종은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밥상을 맞고, 마을 나들이도 하기 시작한다. 마을 아이들에게 글도 가르친다. 얼마 후 단종이 유배된 사실이 소문을 타고 나더니, 전국 각지에서 단종을 안타까워하는 선비들이 선물을 싸들고 마을을 방문한다. 엄흥도가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한 동거는 얼마가지 못했다. 영주에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아들, 세조의 동생)이 조카이자 왕이었던 단종의 복위를 꿰하기 시작했다. 그를 따르는 충신들을 모으고, 군사들을 모았다. 단종에게 사람을 보내어 거사를 전하고 윤허해 주기를 바란다. 단종은 윤허를 하고 금성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명회가 호락 호락 당할 인물이 아니다. 심어놓은 첩자를 통해 이 사실을 인지하고 군사들을 보내어 역모를 꾀한다는 이유로 처단을 한다. 그리고 단종에게도 사약이 날아든다. 어명으로 노산군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노산군으로 유배를 했던 단종과 그의 유배를 보살펴야 했던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의 행복했던 날들을 그렸다. 역사적 진실을 떠나 감독이 그린 영화의 내용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왕은 무엇하는 사람인지, 왕이 추구해야 할 정치는 어떤 것인지 말이다. 어좌에 앉아 있을 때 단종은 신하들과 궁궐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백성들을 만나지 못했다. 당연히 백성들의 희노애락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배 생활 동안 그는 너무나 평범한 백성들의 삶을 경험한다. 그리고 백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알게 된다. 잠시나마 폐위된 신분으로 오히려 진짜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 자신의 백성은 지켜내는 진짜 왕의 모습을 보게 된다. 왕은 권세를 부리는 자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존재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렸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위에 사실 상 유배를 오셨다. 낮은 신분으로 유배오셨다. 하지만 그 유배 기간 동안 우리 왕이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셨다. 그리고 돌보셨다. 자기 백성을 먹이고 입히고 고치셨다. 권세를 부리며 세금을 거둬가는 로마의 왕이나 헤롯 왕과는 달랐다. 친히 자기 백성의 고충을 경험하고 그 아픔을 끌어안으며 동고동락한 왕이었다. 참된 왕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영화 말미에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종적을 감추었다는 자막이 흐른다. 세조의 어명을 어기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것은 그의 사랑이자 자신의 왕이었던 분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천한 신분으로 왕을 보살피고 왕과 함께 했으며 그 은덕을 얻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흥도는 국법 대신 하늘의 법을 따랐다.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테베의 왕이었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왕이었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오열한다. 운명의 장난을 견딜 수 없었던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빼 버린채 방랑길에 오른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다 둘 다 죽는다. 어부지리로 왕이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는 치러 주지만, 폴리네이케스는 외국의 군대를 끌어온 반역죄를 물어 사체를 들판에 버리게 했다. 하지만 이들의 동생이었던 안티고네가 몰래 폴리네이케스의 사체를 거둬 장례를 치른다. 국법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히고 사형을 언도 받은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제게는 왕의 명령보다 하늘의 명령이 더 소중합니다. 인륜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왕도 하늘의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고, 그 하늘의 명령은 백성을 잘 돌보는 것이다. 그 왕과 함께 사는 백성도 행복할 것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우리 시대에 정치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또 교회의 리더로써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경종을 울린다. 왕의 의자에서 내려와 백성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갈 때 왕은 왕이 되고, 그런 왕을 섬기는 백성 역시 행복하다. 우리왕이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왕과 함께 사는 사람으로써 이런 왕국을 만들어가는 인생이 되면 참 좋겠다.
    • 문화
    • 영화
    2026-02-27
  • [기독교인문학]성경적인 세상을 만드는 힘
    기독교 세계관이 필요한 이유 “성경적 세계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더더욱 어렵다.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이 성경적인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고, 세계화되고 있는 현대문화가 성경적인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통 신앙으로는 일관성 있게 성경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 김길구 세계는 지금 불확실성으로 인해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서 왔고, 어디에 서 있으며,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위해 이 책이 그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다룰 책은 손봉호교수의 《쉽게 풀어쓴 세계관 특강》으로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과 함께 데이브드 노글이 지은 <세계관 그 개념의 역사>도 함께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김현호 저자인 손봉호 교수는 ‘기독교학술교육동역회’와 ‘기독교학문연구소’가 2009년 사단법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로 통합된 뒤 10년 동안 이사장을 역임할 정도로 기독교 세계관운동에 진심입니다. 이제는 700명에 가까운 교수를 포함 천 명에 가까운 회원을 가진 국내 최대의 학술단체로 성장하였고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된 학술지 <신앙과 학문>와 격월간지 <신앙과 삶>을 발행하고 있으며, 이 책을 출판한 CUP란 출판사도 운영 중입니다.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 대학원과 연계 프로그램도 활발합니다. 류지원 이 책은 저자가 교회에서 특강한 내용을 엮어 15년 전에 출간한 <생각을 담아 세상을 보라>를 2023년에 전면 수정 보강한 책으로, 신학과 철학 등을 아우르는 무거운 담론을 석학 답게 쉽고 명쾌한 논리로 설명하여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세계관의 필요성 김길구 저자는 다종교사회인 우리나라가 종교적 갈등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여 온 이유를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한국적이란 공통분모가 기독교 세계관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어요.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인데 실재 삶에서는 교인답지 못한 세속적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교인이 많다는 의미겠죠. 김현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적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관된 ‘틀’이 필요합니다. 이 틀을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류지원 그런 의미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과 기독교윤리학을 가르친 영향력 있는 교육가요, 대중운동가로서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하는 신앙인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이번 책은 우리에게 기독교 세계관으로 인도하는 훌륭한 길라잡이입니다. 카이퍼와 월터스 김길구 세계관(worldview)이라는 용어는 칸트에 의해 ‘우주와 인간의 위치를 통합적으로 보는 관점’을 표현하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말인데, 기독교 세계관이 국네에 소개된 것은 알버트 월터스의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오고 나서지요. 성경의 핵심 키워드를 제목으로 쓴 이 개념은 오랜 세월의 산물로 19세기 아브라함 카이퍼가 창조-타락-구속을 사회·정치·문화의 분석 틀로 삼아 ‘영역주권’을 주창한 것인데, 하나님은 교회뿐 아니라 사회, 국가, 교육, 문화,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주권적인 통치를 행사하신다는 이론으로 세계관 운동의 실질적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류지원 알버트 월터스의 번역본이 나왔을 때 시기가 묘했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한국교회의 갱신과 사회 변혁이라는 큰 과제에 직면한 교계에 개혁주의적 대안과 그 성경적 기초를 제시해 줌으로써 많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김현호 카이퍼는 같은 네덜란드인 바빙크와 미국의 워필드와 함께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지요. 신학자이면서 교회담을 넘어 사회개혁을 위해 정치권 진출하여 네덜란드의 수상을 역임한 걸출한 인물입니다. 신 칼뱅주의가 그에 의해 시작되고,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를 설립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세속적, 무신론적 근대혁명사상에 맞서 하나님의 주권과 기독교적 사회질서를 지키려고 기독교 정당인 반 혁명당을 창당하였습니다. 세계관 운동은 교회개혁과 사회참여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세계관의 세 축 : 창조-타락-구속 류지원 기독교 세계관의 첫 번째 축은 창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무로부터 선하게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역사적 창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은 인간은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에 따른 책임져야 하는 존재이지요. 자연과 사회는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이 아름답고 멋지고 조화로운 세상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두 번째 축이죠.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그 결과 모든 피조물이 고통과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개인과 사회 경제 문화 전체가 왜곡되었고, 자기중심적인 탐욕으로 불의와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김현호 세 번째는 구속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그 악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부활을 통해 회복과 개혁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속사적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독교는 미래지향적입니다. 구속이 단순히 개인의 영혼 구원이 아니라 창조세계의 전 영역에 미치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분별하여, 대안적 공동체로서 사회개혁의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계관 운동의 흐름과 과제 김길구 서구 유럽으로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1960년대 현대문화를 비판한 프란시스 쉐퍼의 ‘라브라 공동체 운동’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사고의 틀’의 개념을 정립한 시기를 1세대 운동으로 구분하고, 제임스 사이어의, 찰스 콜슨, 낸시 피어시의 공공신학·문화변혁을 대학 캠퍼스 운동(IVF, CCC)을 통해 확산한 1980년부터의 기독교 변증과 사회참여가 결합한 확장기를 2세대로 나누며, 1990년대 손봉호, 김영한 등이 중심이 되어 한국에서 활동한 시기를 3세대 성숙기로 분류하고 포스트모던 시기로 이어지는데 끝으로 이 운동의 과제를 알아보죠. 류지원 80~90년대 기도하면 된다는 영적 체험 중심의 반지성적 분위기 속에 지성적 신앙 모델을 제시하고, 청년세대에게 신앙의 ‘이유’를 주었으며, 문화·정치·사회 문제 등 공공윤리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을 갖게 하여 한국개신교의 지적자산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는 긍정적인 면이겠지요. 김현호 부정적인 면은 지나친 단순화로 정치·이념과 쉽게 결탁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칫 세계관이 ‘복음’이 아니라 ‘정치 진영 논리’를 옹호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과유불급이라고 반문화적 세계관과 결합된 극단적 사고와 과잉 지성주의도 문제입니다. 신앙이 실제 삶의 변화나 공동체적 실천과 동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이 처한 맥락을 도외시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에 그치는 경향도 문제가 될 수 있겠죠. 김길구 그 대안으로 세계관 운동이 머리 중심의 이론이 아닌 습관, 예배, 몸, 사랑의 운동으로, 그리고 교회공동체의 삶과 이야기 중심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충고도 새겨들어야 하고, 기독교 세계관은 유용하지만 지나친 단순화와 정치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에도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본론보다는 곁가지에 집중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손 봉 호 < 쉽게 풀어쓴세계관 특강 > 다종교사회인 우리나라가 그동안 종교적 갈등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여 온 이유를 한국적이란 공통분모가 기독교 세계관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저자는 신앙생활은 기독교적으로 하고 생활은 한국식으로 한다고 뭐가 나쁜가?를 반문하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그네이므로, 소금의 맛을 잃지 않으려면 이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초월하여 창조, 타락, 구속의 세 가지 프리즘을 통하여 세상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분별하여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믿는 자에게 기독교 세계관은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교회의 갱신과 사회 변혁을 바라며 이 땅에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 저자소개 □ 손 봉 호∥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고신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창립하고 이사장(10년)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명예이사장이다. 사회활동도 활발하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외 다양한 NGO 활동을 통해 교회와 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고통받는 인간》, 《어떻게 살 것 인가》, 《하나님을 사랑한 철학자9인》,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세계관, 그 개념의 역사》 데이비드 노글 / 비아토르 / 2002 《니고데모의 안경》 신국원 / IVP / 2022 《코끼리 이름짓기》 제임스 사이어 / IVP / 2007 《하나님 나라와 기독교 세계관》 김덕종 / 좋은씨앗 /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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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26-01-30
  • [김양현목사의 영화이야기]아바타 3 불과 재
    감독 : 제임스 카메룬 주연 : 샘 워딩턴(제이크 설리), 조 샐다나(네이티리), 시고니 위버(키리), 스티븐 랭(마일즈 쿼리치), 우나 채플린(바랑), 브리튼 돌턴(로악), 잭 챔피언(마일스 스파이더) 2009년 사람들은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스크린에 펼쳐놓은 마법 같은 세상에 감탄했다. 영화 제작의 신기원을 이룬 아바타 때문이었다. 아바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감독이 그려낸 판도라 행성의 모습에 감탄을 연발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했다고 하지만 너무나 화려하고 입체적이고 신비적이었다. 판도라 행성의 공중의 떠 있는 산, 판도라 행성의 각종 동물들에 대한 묘사, 그리고 에이와라 불리는 신과 신성한 나무의 모습들은 우리를 눈부시게 했다. 스토리 또한 신선한 충격이다. 황폐해 져 가는 지구를 떠나 인류는 판도라로 불리는 행성을 발견했다. 이 행성은 지구와 아주 흡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생명체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것이 지구와 흡사했고, 나비 족으로 불리는 종족이 존재했으며, 풍성한 광물이 존재한다. 인류는 우선 판도라 행성의 풍부한 광물을 이용하기 원하고, 이어 이주를 행성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이주를 위해서는 한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판도라 행성의 대기가 지구와 다르기 때문에 인류는 산소 마스크 없이 숨을 쉴 수가 없다. 유일한 방법은 판도라 행성에 거주하는 나비족과 같은 신체를 갖는 일이다. 이를 위한 노력이 아바타 프로젝트다. 나비족과 동일한 구조의 신체를 만들고 이에 인간의 정신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가 차출된다. 제이크 설리의 형이 아바타 프로젝트의 연구원이었고 그의 DNA를 복제해서 아바타를 만들었으나 판도라 출발 직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근접한 DNA를 가진 동생이 선발되었다. 제이크 설리는 판도라 행성에 도착하여 아바타의 몸과 연결하여 나비족의 거주지로 이동한다. 원래 목적은 나비족의 언어와 관습을 배우고, 그들의 환심을 사서 나비족을 이주시키고 그들의 주 거주지인 나무의 뿌리 밑 광물을 캐는 일을 위한 투입이었다. 하지만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 족장의 딸인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졌고 점차 나비족의 일원이 된다. 판도라 행성의 기업 관계자는 나비족을 몰아내고 광물 채취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강제 진압에 나선다. 엄청난 군사 무기들과 용병들을 앞세워 나비족을 향한 총공세에 들어갔다. 제이크 설리는 이 작전의 끔찍함을 인지하고 나비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나비족 뿐 아니라 타 종족까지 불러 모아 인간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결국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그리고 나비족은 판도라 행성의 에이와 신의 도움으로 인류를 몰아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기업은 다시 판도라로 향한다. 이번에는 더욱 가공할 무기와 물량 공세로 판도라 행성을 공격해 간다. 지난 공격에 실패한 마일스 쿼리치 대령은 이번에는 판도라 행성의 망콴족의 리더 바랑과 연합작전을 펼친다. 망콴족은 판도라 행성의 주변부의 황무지에 거주한다. 그들로서는 나비족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중심지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욕망과 인간의 목적이 동맹을 맺게 했다. 이 연합 공격에 제이크 설리는 다시 맞서 싸운다.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신화가 우리 삶의 일상에서 형성되지만 일상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신화는 삶의 반영이자 삶의 추동이다. 신화가 삶을 이끌어 간다. 오늘날은 영화가 그 역할을 한다. 영화는 우리 삶의 현실을 반영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삶의 방향도 만들어 낸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시도한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감독은 지구의 환경 파괴라는 현실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판도라라는 행성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현실에서 지구와 흡사한 다른 은하계로의 행성 간 이동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으로 묘사한다. 감독이 묘사한 이런 설정이 몇 십년 혹 몇 백년 뒤에 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오래 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21세기 오디세이라는 영화에서 달 여행을 상정했는데 지금 가능한 시점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바타는 현재 인류가 연구중인 피지컬 AI 기술과 흡사하다. 멀지 않아 인류는 로봇의 몸에 인공지능을 탑재한 피지컬 AI를 만들어 낼 것이다. 또한 인류와 아주 흡사한 존재도 가능해 질 것 같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스크린에서 펼쳐 낸 아바타와 같은 존재가 현실에서도 가능할지 모른다. 이렇게 영화는 우리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가야 할 현실로 이끈다. 이 쯤에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영화의 메시지를 생각해 보자. 감독은 두 가지 차원의 메시지를 영화에 녹여낸다. 우선 그는 과거 유럽인들의 신대륙 침략을 회상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바타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의 우주 버전이다. 과거 백인들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착했다. 그 과정에 원주민을 몰아내고 몰살하기도 했다. 자연을 파괴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했다. 감독이 그려낸 스크린은 우주 공간 판도라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것은 신대륙 정착의 새로운 버전이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우주로의 여행, 화성으로의 여행, 소위 테라포밍이 추구하는 것 역시 과거 신대륙의 발견에 다름 아니다. 감독은 이런 침략과 정착 이면에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 행위를 다룬다. 아바타에서 인류는 판도라 행성의 동식물을 무분별하게 불태우고 개발한다. 그런 과정에서 생태계가 신음한다. 판도라 행성의 나무와 식물, 동물 등은 인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하나로 묶여 있다. 나비족은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잠시 빌려와 쓰다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가르친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과 별개로 여기며 대상화하고 타자화해서 파괴한다. 생태계의 파괴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 이제 성경적 묵상으로 연결해 보자.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인류를 향해 하늘에서 온 사람들로 묘사한다. 그들이 보기에 우주선을 타고 판도라 행성에 도착했기에 인간은 하늘에서 온 존재다. 제이크 설리는 하늘의 사람으로 판도라 땅에 정착한다. 그는 아바타의 몸으로 나비족으로 들어가며 그들과 거주하며 결국은 그들의 메시야로 세워진다. 예수는 하늘에서 땅으로 온 존재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과 같이 되셨다. 사람의 몸을 잠시 입으시고 이땅에 태어나고 거주하셨다. 이 땅에 거주하는 동안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고, 외로운 자, 병든 자, 가난한 자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그들을 고치셨다. 그리고 로마 제국에 맞서 싸우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제이크 설리와 오버랩된다. 아니 제이크 설리는 영화에서 그려낸 예수, 메시야와 다름 아니다. 아바타가 기독교인에게 던져진 숙제가 있다. 곧 우리를 둘러싼 자연, 환경은 타자가 아니라 우리와 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상화하고 구별화해서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자연도 하나님의 창조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 단계에 있어서 인간과 연결선상에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며 또한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 세상을 돌보고 가꾸라는 명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우셨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최소한의 사용을 해야 하며, 지구라는 환경을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로 여겨 잘 가꾸어야 한다. 영화 아바타가 던지는 주제들과 질문들에 응답하는 책임있는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문화
    • 영화
    2026-01-09
  • [김양현목사의 영화이야기]마리아, 마더 오브 지저스(2024)
    감독 : D.J. 카루소 주연 : 노아 코헨(마리아), 이도 타코(요셉), 안소니 홉킨스(헤롯) 성탄, 거룩한 분의 탄생이다. 2천여년전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 신학적으로 성육신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이 것에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 즉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아지셨다. 가장 낮아지심으로 낮은 자를 구원하신다. 아타나시우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사람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셨다. ” 하나님의 아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어두울 때 오셨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즈음 세상은 로마라는 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분열된 로마를 통일했다. 원로원은 그를 신적 존재로 칭송했고, 제국의 시민들은 그를 숭배했다. 아우구스투스는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의 평화를 선언했다. 다시는 전쟁이 없는 상태, 평화의 제국이 세워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로마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팍스 로마나는 헛된 말에 불과했다.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정복 지역을 통치했고,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강제 부역에도 동원했다. 혹여 로마에 반기를 들면 가차없이 처벌했다. 로마의 지배 하에 살아갔던 피정복국의 사람들은 암흑 그 자체였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 황제의 호의를 받은 헤롯이 통치했다. 헤롯은 포악한 왕이었다. 그는 권력에 눈이 멀었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들조차 처형할 정도로 잔인했다. 헤롯은 성전을 재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자신의 왕궁을 건축했다. 당연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갖 부역에 동원되었고 높은 세금을 내야 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어둠이자 절망 그 자체였다. 바로 이런 시기에 한 줄기 빛이 비취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한 일을 하셨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를 보내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와 사뭇 달랐다. 하나님은 화려한 왕궁에 속한 자가 아닌, 이름 없는 한 여인을 선택하셨다. 그것도 결혼하지도 않는 처녀를 선택하시고 그녀의 몸을 통해 인류의 구원자가 잉태되고 탄생하게 하셨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D.J. 카루소 감독은 이런 부분을 스크린으로 풀어냈다. 그가 만든 ‘마리아, 마더 오브 지저스’는 마리아라는 여인에게 집중한다. 감독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지만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보완한다. 마리아의 어린 시절을 복원해 낸다. 유년시절의 마리아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성전에 갔다가 배고파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는 지나치지 않고 빵을 나누어준다. 이런 행동은 감독의 재구성이지만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녀의 이런 삶, 즉 하나님을 향한 깊은 기도와 사람을 향한 사랑이 그녀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도록 선택받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녀의 사랑과 자비,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신 것이다. 이어 영화는 마리아의 순종에 주목한다. 생각해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선언한 계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성이 아이를 갖게 된다니, 어떻게 이런 일을 믿을 수 있겠으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한 마리아가 살던 시대에는 처녀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갖게 되면 즉시 마을 공동체 앞에 끌려나가 심판받을 가능성이 컸다. 마리아가 살던 갈릴리 지역은 씨족 공동체가 모여 살던 곳이므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갈 것이다. 즉 그녀는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순종했다.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천사의 말에 순종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고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을 예수라 하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즉시 순종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순종이 세상을 바꾸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신앙 고백을 통해 잉태되었고, 탄생하게 되었다. 이어 영화는 순종의 여인 마리아를 집중해서 보여준다.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는 것에도 전적으로 순종하고, 헤롯의 학살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는 일에도 순종한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긴다. 이후에 어린 예수님을 키우는 일에도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이어 예수께서 공사역을 하시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실 때도 그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아니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순종한다. 이런 순종은 그녀가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그 뜻에 헌신함을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그녀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는 통로가 되었다. 그래서 신학은 전통적으로 그녀를 ‘신을 잉태한 자’(Theotokos)로 존중해 왔다. 이 영화는 마리아 뿐 아니라, 마리아의 부모들, 마리아의 남편 요셉, 그리고 무엇보다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사랑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다. 즉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을 넘어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삶은 순종 그 자체셨다. 그 분은 십자가를 지셔야 할 상황 앞에서도 이렇게 기도하셨다. “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예수님의 이런 순종은 누구에게 배웠을까? 물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나님에게 순종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 살아가셨던 예수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이러한 순종의 삶을 배우셨음에 틀림없다. 역사적으로 가장 암흑의 시기에 순종의 여인을 통해 구원자가 오셨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믿음으로 반응한 여인을 통해 세상에 구원이 이루어졌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순종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2천년전처럼 오늘 우리 사회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소망이 점점 사라지고 분열과 대립이 가득하다. 교회는 그 어느때보다 세상으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하기에 오늘 마리아와 같은 순종의 사람이 필요하다. 어둠을 다시 비출 사람, 세상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사람, 그 한 사람 순종의 사람이 바로 나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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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9
  • [기독교인문학]“작은 교회가 아름답다!”
    재편, 건강한 작은 교회의 꿈! “교회 대형화에 따른 신학적, 윤리적 타락의 반작용으로 건강한 교회 회복을 위해 가정교회, 이머징처치, 미셔널처치 등 새로운 교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꿈꾸는 건강한 작은 교회의 핵심가치는 성경적 공동체, 일상의 제자도, 민주적 운영, 공공의 공공성, 거룩한 공교회성의 회복이다.” ■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김길구 「강북제일교회」 (이상대 목사)는 아파트 단지 내 교회로 250여 명까지 늘었던 교회가 내부 문제로 목사가 갑작스레 사임하고 후임인 이 목사가 부임하고 보니 남은 교인은 30여 명에 불과하고, 교회의 재건을 위해 특정 개인의 생각, 경험, 비전에 좌우되지 않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죠. 류지원 교회의 사유화, 세습, 교회매매 등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공동체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을 위한 정관을 만들고, 교인이 120명이 넘으면 분립개척을 준비하고 150명이 되면 실행토록 하고, 관행처럼 이어온 선거 잡음이 없도록 임직 헌금, 선거운동, 결과에 불복하는 3무 캠페인 을 실시했어요. 김현호 사람을 늘이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없애고 성경공부를 통한 전도와 선교적 삶을 일상에서 실천케 했다고 해요. 어려운 일이죠. 우리는 너무나 쉽게 큰 교회도 건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 뒤에는 큰 교회를 지향하는 우리들의 욕망이 숨어 있어요. ■ 상처 입은, 다시 배우는, 다시 써 내려가는 류지원 「그십자가교회」 (손영국 목사) 위 슬로건은 부교역자 시절 교회의 내분을 거치며 겪은 아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교회란 건물이 아닌 사람 중심의 교회공동체로 선교적교회 모델을 따르게 된 과정을 표현한 것 같아요. 김현호 전통적 예배모임과 헌금제도를 성경적으로 바꾸고 가족이 교회 되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세대 통합예배를 드리며, 젊은 세대에 맞는 경배와 찬양, 개인적 영성을 세우고 나누는 큐티푸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김길구 특이한 것은 마을 이장으로서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 예배당이자 도서관인 작은 도서관을 개설하여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열린 공간으로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어요. 지역의 단체들과 함께 활발한 사회적 활동과 교회갱신을 위한 작은교회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어요. ■ 알콩달콩 으랏차차 김길구 「나무교회」(홍선경 목사)는 여성이죠. 클래식 음악 전문 잡지 ‘음악춘추’에 근무한 이력답게 감성이 풍부한 목회자입니다. 남성의 가부장적 리더십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섬세하고 수평적이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나무를 주제로 50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목회 얘기를 풀어내는 글솜씨와 목회현장에서 일어나는 애환을 ‘알콩달콩 으랏차차’ 단 두 단어로 표현하는 감정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리더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현호 그 예로 ‘나무에게 부탁했네, 하나님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그러자 나무는 꽃을 피웠네’-타고르. … 쉼이 필요한 그대, 숨 쉬고 싶은 그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소개합니다.- 타고르의 시를 인용한 나무교회의 전도지 문구들입니다. 여성 특유의 감성이 목회 전반에 촉촉이 배어있는 감성 목회를 해서 교계의 가부장적 문화와 확실히 차별화돼요. 류지원 주중에 1명, 혹은 2명, 많으면 4명이 목회자와 함께 주중 모임을 갖는데 직장 때문에 주일 예배를 못 드리는 교우를 위한 것이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작은 교회의 장점이겠죠. 책과 영화, 특강 등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시대를 만나는 시간도 가져 다양한 접촉점을 통해 소통을 이어 간다고 합니다. ■ 말씀이면 충분한 김현호 「말씀의빛교회」(윤용 목사)는 학원을 운영하다 전임목사가 된 경우예요. 2002년 ‘교회개혁실천연대’ 출범시 집행위원으로 정관 갖기 운동과 성직자 과세운동 등에 관심이 많던 그는 목회현장에 적용, 운영위원회 5명 중 여성 2명을 두는 등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오산시 한 지붕 두 목회자’로 한 건물에 두 교회가 사이좋게 지내는 기사가 언론을 타기도 했어요. 류지원 슬로건 답게 성경을 교인들이 스스로 읽고 이해하고 실천하게 하는데 중점을 줘요. 6년 동안 성경 전체를 묵상할 수 있는 성서유니온의 <매일성서>를 채택, 주일예배 설교는 물론 주일예배 후의 소그룹 모임, 주중 기도회와 심방 설교에서도 활용함으로써 말씀의 흐름을 일관성 있게 유지합니다. 김길구 봉사도 전문사역단체와 연대 전문화하되 단순화해요.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과 어른 멘토를 1:1로 연결하는 멘토링 사역을 17년간 펼친 (사)러빙핸즈와 협력하여 ‘초록리본도서관’을 개관하고, 도서관을 준비하면서 또 다른 단체인 ‘청소년부모지원 킹메이커’와 청소년시절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건강한 작은교회를 꿈꾸며 김길구 「세나무교회」(이진오 목사) ‘나는 작은 교회를 주장하지 않고, 건강한 작은 교회를 지향한다’며 프랜차이즈화된 한국교회를 건강한 작은 교회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으로 알려진 그는 기윤실의 사무처장을 등 기독교NGO 출신으로 현재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김현호 쉼과 환대가 있는 공동체를 이루고, 스스로 성경을 읽고 따르는 신자가 이웃과 함께하는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것이 비전입니다. 교회보다 도서관을 먼저 만들고, 청장년 3백명이 넘지 않도록 하여 교회가 커지면 분립하는 규약을 만들어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류지원 교회의 민주적 운영도 돋보입니다.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회’(CAICAM)에 교회 등록을 한 뒤 교인들의 주도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 설립한 교회임에도 자신이 먼저 교회규칙대로 선임 절차를 밟고 초빙된 후 업무협약을 통하여 6년 임기를 시작함으로써 교회 운영의 투명성을 높혔습니다. ■ 노인대학이던 교회이야기 김길구 「청운교회」(임병열 목사)는 전임목사가 교인들의 약속헌금을 믿고 건축을 진행하는 가운데 부담을 느낀 교인들이 하나 둘 떠나고 마지막에는 30여 명만 남는 먹먹한 얘기와 완공 후 남는 공간의 활용을 고민하다 30여 교인들이 자원봉사자가 되어 2백 명의 노인대학 어르신을 섬기는 얘기, 매리츠와 코로나 사태 때의 좌절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하여 느끼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의 감동이 이 책에 담겨있어요. 류지원 책 말미에 노인대학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는 부분이 있어요. 노인대학은 한국교회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이제는 일반화 되었고, 어르신에 대한 고립감을 해소하고 세대를 통합시키며, 교회의 지역 섬김과 사회적 신뢰 형성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점차 정부주도의 사회복지가 보편화 되면서 비중도 줄어드는 추세로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재정적 요인도 부담이 되겠죠. 김현호 대형교회의 식당 운영도 자원봉사자가 적어 폐지하는 곳도 생기고 있는데, 본문에 ‘노인대학은 남은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서 하는 일이고 남겨둘 힘 따위는 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결기가 느껴지기도 해요. 서로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겠죠. ■ 함께하는 교회 이야기 류지원 「함께하는 교회」(박창렬 목사)를 만들려면 성도 간의 원활한 소통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소외가 없도록 민주적이고 투명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계급장 떼고 목회자 외에는 호칭에 ‘씨’를 붙이게 하고 재정은 카카오 모임통장을 개설 공개토록 했어요. 김길구 이 교회는 간판도 전용공간도 없이 주일만 학원을 빌려 예배를 드려요. 전용공간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재정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공간이 필수라는 생각은 아니라고 해요. 또 하나의 특징은 한 달에 한 번씩 성찬식을 하고, 통합교단인데 개역개정 대신 읽기 편한 새번역성경을 쓴다고 해요. 김현호 박목사는 20대부터 신장이 안 좋아 이식수술을 받은 내부장기 장애인이라고 해요. 그런 연유인지 소외된 이들을 혐오하거나 포장하여 보는 것 모두를 차별이라 생각하고 예수처럼 배제 없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리 김길구】 이상대 목사 외 6인 《 건작동 7교회 이야기 》 올 6월 돌아가신 신학자 월터브루그만의 대표작 ‘예언자의 상상력’이 절실한 이때 그 해법이 ‘건강한 작은교회’라고 주장하는 7교회의 알콩달콩한 목회 얘기를 담은 본서는 그동안 더 크고 높고 많은 것을 쫓던 한국 교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위기의 시기에 언감생심 개척이라니~ 이 책은 크지 못해 작은 교회가 아닌 지향성의 차이에서 오는 성경적 공동체, 일상의 제자도, 민주적 운영, 공의의 공공성, 거룩한 공교회성의 핵심적 가치를 공유하는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건작동)’ 멤버들의 7인 7색의 육필 개척교회 체험기이다. 급변하는 이때 저 멀리 떨어진 섬 갈라파고스처럼 점차 고립되어 가는 한국교회에 이 작은 교회 운동이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유쾌한 반란에 격려를 보낸다. ◇ 저자소개 건작동 이상대 목사외 6인 공저∥ 이 책은 건작동 소속 7인의 목사들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줄여서 전작동) 소속 멤버들이다. 이 책은 그 흔한 저자들의 학력이나 경력에 대한 프로필이 없다. 찾아보면 한 사람 한 사람 다 한 가닥 하는 분들인데~ 그들에겐 아름다운 건강한 작은 교회를 꿈꾸며 기도와 고심 끝에 지었을 사랑하는 교회 이름과 사역자 이름 석자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다. 경기도 양주-강북제일교회(이상대 목사), 경기도 광주-그십자가교회(손연국 목사), 서울 태능-나무교회(홍선경 목사), 경기도 오산-말씀의빛교회(윤용 목사), 인천 논현동-세나무 교회(이진오 목사), 부산 덕천-청운교회(임병열 목사), 대구 범어동-함께하는교회(박창렬 목사)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재편》 이진오 / 비아토르 / 2017 《작은교회운동》 양민철외 30인 지음 / 동연 / 2024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크만 / 복있는 사람 / 2015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5-11-21
  • [영화]얼굴(2025)
    감독 : 연상호 출연 : 박정민(임동환), 권해효(임영규), 신현빈(정영희), 한지현(김수진)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착각 혹은 착시가 있다. 바로 예수님의 얼굴이다. 성화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얼굴은 다 가짜다. 16세기 이후 유럽인들이 르네상스 시대에 자신들의 이상향을 그린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태어나시고 자라셨다. 게다가 그 분은 목수의 일을 하셨다. 그러니 얼굴은 검게 그을렸을 테고 손은 고된 노동으로 거칠었을 것이다. 오죽 하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논쟁하던 중 "네가 오십이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냐?"고 했겠는가? 이사야서는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 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볼 품이 없으셨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외면 당하셨다. 사람들이 그 분을 외면한 이유는 자신들보다 더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아름답고 우람하다. 로마의 황제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황제를 숭배하고 따랐던 이유는 자신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 분은 욕망하고 따를 외모가 아니셨다. 예수님은 올바른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드러내셨다. 위선을 드러내셨다. 사람들이 교묘하게 감추고 있던 마음 속 깊은 욕망을 폭로하셨다. 사람들은 부끄러워 하고 회개하는 대신 폭로자를 제거하려 했다. 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 분이 가르친 내용은 본능과 상반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외면 당하셨다. 연상호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얼굴 뒤에 감추고 산다. 사람들은 잘 생긴 얼굴을 추앙하고 권력이 있는 자들을 욕망한다. 자신들이 되고 싶은 바를 그들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 얼굴 너머에 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겉모습이다. 자신들의 욕망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영규의 독백이 흐른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데 앞을 못 보는 사람도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어." 시각장애인인 영규는 평생 도장을 새겼다. 도장 전각의 장인이 되었다. 그가 입버릇 처럼 말하듯 자신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작품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는 손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영규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외면 당하지만 그 조차 자신의 욕망에는 인정 받고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오래전에 실종된 아내 영희는 얼굴이 없다. 40년 만에 아파트 공사장에서 유골로 나타난 영희는 얼굴이 없다. 장례식을 치르지만 영정 사진이 없다. 그녀는 얼굴이 없다. 영희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증언한다. "너무 못 생겼었어." "추했지. 정말 그렇게 생긴 사람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희는 못난 존재다. 자신들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다. 적어도 영희보다는 나은 존재라는 자기 만족을 줄 수 있는 존재였다. 영규가 영희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규를 무시했지만 영희는 그를 인정해 주었다. 영규는 영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우위에 있다. 영희 앞에서는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다. 영규가 생각할 때에 영희는 자신보다 더 못난 존재였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여자였다. 문제가 생겼다. 영희는 진실을 말하는 여자라는 점이다. 자신이 본 것을 감출 수 없는 사람 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 아버지가 다른 여자랑 한 방에서 바람 피우는 것을 목격했다. 어린 영희가 볼 때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사실을 말했지만 그녀에게 돌아 온 것은 침묵 강요와 아버지의 매질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후 피복 공장에 작업보조로 취직했다. 공장 사람들은 모두 영희를 우습게 여기고 놀려댔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사장이 재단사 여성을 성추행하는 일이 벌어진다. 영희는 이 사실을 항의하러 사장 방에 들린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침묵 강요와 해고 협박이었다. 영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장의 불륜을 폭로한다. 그 대가는? 오히려 성폭행 당한 당사자인 재단사가 영희의 뺨을 때리며 분노를 퍼붓는다. "네가 뭔데? 네 까짓게 뭔데?" 그렇게 영희는 사람들에게서, 공장에서 추방당한다. 추방 당할 뿐 아니라 멸시 받고 제거당 한다. 피해자들이 기분 나빴던 이유는 영희가 진실을 말할 때 자신들보다 영희가 더 돋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무 말 하지 못하는데 나보다 못난 영희는 용기있게 진실을 말한다. 그게 더 기분 나빴다. 나보다 못나야 하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데 그녀가 진실을 말한다. 그래서 더 미움받았다. 유일하게 자신이 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남편 영규에게도 그녀는 버림 받는다. 시각 장애인 영규는 분노하며 말한다. "내가 모를 줄 알아? 너가 못 났다는 것을 모를 줄 알아? 알지만 결혼한거야. 그러니 조용히 지내라고. 응?" 영규가 폭발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희는 나보다 더 못난 존재여야 하고 아무 말 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여야 한다. 그런데 그녀가 진실 앞에서 용기를 가진다. 영규의 분노가 치미는 지점이다. 영화는 욕망의 민낯을 폭로한다. 소위 잘 난 사람들, 돈 있는 사람들, 권력있는 사람들의 위선을 폭로한다. 아니 그들을 욕망하는 못 난 사람들의 위선도 말이다. 오로지 영희만이 진실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로 보는 존재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예수님이 오버랩되었다. 예수님이 버림 받은 이유는 그들의 욕망에 어긋났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과 기대를 이루고자 했다. 그 욕망과 기대가 허물어지자 모두 버려두고 도망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작품들에 유로지비를 등장시킨다. 못난 사람, 천대받는 사람,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사람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진실을 가지고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로 하여금 진실을 마주하게 한 소냐처럼. 백치의 미쉬킨 처럼. 이제 우리의 민낯을 마주할 때다. 번지르한 얼굴 뒤의 진실을 마주할 차례다. 우리의 욕망을 투사한 예수가 아니라 실제의 예수를 마주할 때다. 나의 얼굴은 누구인가? 누구를 드러 내는가? 욕망을 내려놓고 진짜 예수님의 얼굴을 본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 분처럼 진실을 폭로함으로 버림 받을 용기가 있는가? 그 분 앞에서 당신의 얼굴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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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4
  • [기독교인문학]"차별과 혐오의 시대,「환대의 신학」절실”
    환대(philoxenia)= 사랑 + 나그네의 합성어 “나그네에 대한 사랑 즉 환대는 지난 2,000여 년 동안 기독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어였습니다. 복음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환대가 없었다면 교회는 새로운 종교를 경계하던 이방 땅에서 뿌리내리기 힘들었을 겁니다. 교회는 낯설다 못해 때론 적대적이기까지 했던 환경에서 오히려 타자를 환대하며 교회됨의 의미를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왜 지금 《환대의 신학》인가? 김길구 최근 서울 도심가에서 한류의 붐을 타고 방문한 중국 여행객들을 상대로 혐중 시위가 고조되고 있어 모처럼 되살아나던 한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어 당국이 단속에 나선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미국 조지아 주에 짓고 있는 현대와 LG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450명 불법노동자 중 300여 명이 체포, 구금, 귀국한 굴욕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구촌 시대 상호 배려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이번 호에는 김진혁의 《환대의 신학》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타인에 대한 환대의 신학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김현호 우리는 기독교의 정수교리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알고 있지요. 저자는 랍비 조너선 색스의 말을 인용. 히브리 성경에 보면 ‘이웃 사랑’을 단 한 번 언급하는데 비해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말은 서른여섯 번이나 명령했다며 헬라어로 나그네(χenos)와 사랑(philia)의 합성어인 ‘환대(philoxenia)’가 기독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어라고 주장합니다. 류지원 신명기 26:5에 보면은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 떠돌며 사는 나그네였다고 술회합니다. 구약을 이러한 ‘나그네들이’ 한 국가를 만들어 가는 여정의 기록으로 본다면 나그네란 의미는 히브리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개념임이 분명합니다. 환대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 김길구 저자는 다문화 주의, 이주민 정착, 난민 수용, 빈자 구제 문제 등에 대해 각국이 법과 제도는 정교해지는 반면 우리가 체감하는 사회적 갈등과 폭력이 우려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환대’ 라는 개념의 프리즘을 통하여 신학적 모색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됩니다. 류지원 들어가기에 앞서 세계의 첨예화 된 이념의 블록화와 더불어 트럼프 2기의 출범과 함께 최근 미국의 지도자 찰리 커크의 암살로 이 문제가 더욱 격화되고 있어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많아요. 이 책에서 말하는 환대의 개념이 이웃 사랑의 실천 같은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죠. 김현호 이 책 뒤 각주에 있는 ‘환대’와 다른 입장 차이를 요약한 글이 있는데 저자가 말하는 환대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환대는 타인이 머물고 자신을 드러낼 공간을 마련해 주기에 배제, 차별과 다르다. 주체가 아니라 타자를 우선시하는 만큼 동화, 관용과도 구별된다. 상대를 포용하면서도 나와 너 모두가 변화할 가능성에 열려 있기에 인정과도 차이가 있다” 삼위일체로서의 환대 김길구 저자가 주장하는 환대신학이 기존 환대와 다른 점은 환대가 사회적 명령이거나 윤리의 실천이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 성령의 위격이 서로 구별 되지만 완전히 하나로 계신다는 삼위일체의 신비의 관계의 ‘페리코레시스’-상호 내주 즉 서로 받아들이고 내어주는 궁극적 환대의 모습으로 하나님 존재 자체가 환대라는 것으로 성부 하나님은 사랑과 교제에서 흘러나오는 본질적인 신학적 행위로 나그네 된 우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김현호 성자이신 예수의 환대는 죄인, 세리,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며 기존 사회•종교적 경계를 허무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으로 원수까지 품어주는 환대의 극치를 보이셨다는 것이죠. 류지원 바울과 초대교회의 환대는 가정교회 식탁에서의 평등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지향이 환대의 실천으로 나타났으며, 이같이 성령은 지금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이 환대의 능력을 확장시킨다는 것입니다. 환대는 수단이 아닌 복음의 본질로 교회의 본질도 환대의 모습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환대의 한계와 경계 김길구 환대가 중요하기는 한데 막상 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사역을 수행할 사역자들, 타인을 영접하고 대접할 공간의 문제, 운영할 재정적 한계, 그리고 물리적 자원의 부족 등을 들 수 있겠지요. 김현호 말씀 선포와 환대 사이의 긴장도 문제가 돼죠. 교회의 기능을 말씀 선포와 성도의 교제 등으로 좁게 보는 교회는 환대 자체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환대의 공동체라는 견해에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도 간과해선 안 돼요. 물론 이 문제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지만… 류지원 그 외에도 교회의 불법 이민자 지원의 사례로 본 국가의 법과 교회의 환대 사이의 갈등, 행15:16-17에 나오는 구약 율법의 급진적 재해석으로 본 말씀과 말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초대교회 사례 등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어요. 본문 속으로~ 김길구 저자의 생생한 주장을 본문을 통해 들어보죠. (환대의 한계와 경계 中에서) 교회를 “복음이 올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올바로 집례되는 성도의 교제”로 정의하는 종교개혁 신학에 따르면 환대를 설교처럼 본질적 사명이라고 간주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환대 자체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환대의 공동체이며, 이웃사랑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명령입니다. <206p> 김현호 (타인을 향한 무한한 책임 中에서) 타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일어나는 궁극적 근원은 성경의 계명도 아니고, 타자의 얼굴도 아니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자기를 버리는 사랑으로 인하여…무죄성을 벗어던지고 인간의 죄 속으로 들어와 친히 그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죄 있는 자’가 되셨다면, ‘죄 용서 받은’ 그리스도인도 타인을 위한 무한한 책임을 지려는 ‘죄 있는 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본회퍼의 윤리학을 인용하면서-<227p> 류지원 (비관주의와 이상주의 사이에서) 종말에 이르기 전까지는 폭력의 질서와 환대의 질서가 세상에 공존하며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는 환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단번에 ‘날리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은 불확실함과 긴장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는 환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단번에 ‘날리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은 불확실함과 긴장 가운데서 우리가 ‘슬픔 대신 기쁨’을 누리고 ‘근심 대신 찬송’을 하도록 희망을 일구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242p> 김길구 독서의 계절 가을입니다. 그 뜨겁던 한 여름의 뙤약볕도 자연의 순리를 마냥 거슬릴 수 없는 모양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타인에 대한 환대를 하다가 상처 입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은 많은 위로를 줍니다. 이 가을,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혐오와 배제의 종교로 여겨지는 최근의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에 던지는 사랑의 메시지인 김진혁의 《환대의 신학》을 통하여 교회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희망을 노래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김 진 혁 의 《 환대의 신학 》 히브리 성경을 보면 나그네에 대한 사랑이 이웃 사랑보다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저자는 이웃을 사랑하기도 벅찬 우리들에게 떠돌이를 사랑-즉 환대하라고 말한다. 환대는 도덕적 행위 이상의 의미로 기독교의 본질이 환대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론에 기반한 ‘환대 신학’은 성부 하나님은 사랑과 교제에서 비롯된 환대가 본질이며, 성자 예수는 죄인, 세리, 이방인과 함께 차별 없이 사회·종교적 경계를 허물고 십자가를 통하여 환대의 극치를 보여 주었고, 바울과 초대교회는 가정교회 식탁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없는 평등한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잔치를 미리 맛보는 환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구촌이 하나가 될 것이라는 허상이 깨어진 지금, 각자생존을 위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와 교회에 던지는 사랑의 메시지. ◇ 저자소개 김진혁 ∥ 현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철학,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에큐메니칼 연구소 연구원 및 영국 런던 대학교 헤이스롭 칼리지 박사 후 연구원과 C.S. 루이스 연구소 상주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기도의 신학, 미학적 신학 등 종교와 문학, 현대 신학과 정치신학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갔고 강연과 저술 활동으로 대중과 소통 중이다. ◇ 저 서 ∥ 《순전한 그리스도》(IVP), 《신학의 영토》(비아), 《질문하는 신학》,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와 《예술신학 톺아보기》(공저) 등 다수가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공정한 환대》 레티. M. 러셀 / 대한기독교서회 / 2012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 문학과 지성사 / 2015 《환대와 구원》 조슈아 W. 집/ 새물결플러스 / 2019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5-09-26
  • [영화]좀비딸(2025)
    감독 : 필감성 출연 : 조정석(이정환), 최유리(이수아), 이정은(김밤순), 조여정(신연화), 윤경호(조동배)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정환은 어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아침밥을 차리고 자고 있는 딸 수아를 깨운다. 수아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출근을 하려는데 거실 창에 옆집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괴상한 몸짓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급기야 유리창을 깨고 집에 들어오려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텔레비전을 트니 속보가 뜬다. ‘서울에 좀비 바이러스가 출몰해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정환은 딸 수아와 같이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작전을 감행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이미 정환의 아파트는 좀비들로 가득하고 그들은 정상인을 물어뜯기 위해 접근해 온다. 방법은 한 가지 뿐, 정환은 수아를 기둥 뒤에 숨어 있게 하고 요리조리 피해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수아에게 가까스로 접근한 정환은 얼른 타라고 하고는 구사일생으로 아파트 촌을 벗어난다. 이제 안심이다. 한 숨 돌리는 순간 옆 좌석에 타고 있는 딸 수아의 표정이 이상하다. 얼굴에 핏줄이 서 있고, 눈은 충혈되어 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른다. 큰 일이다. 수아도 좀비에게 물린 것이다. 정환은 우선 갓길에 차를 정차하고 안전벨트로 수아의 몸을 단단히 묶었다. 머리에는 옷을 휘감아 공격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환은 혼동에 사로잡힌다. 딸을 살려두자니 자신도 위험하고, 그렇다고 딸을 버리고 죽일수도 없다. 우선 정환은 어머니가 사는 한적한 시골 마을로 좀비딸이 되어버린 수아와 대피를 한다. 어머니 집에 숨어 지내던 정환은 두 가지 소식을 듣게 된다. 우선 국가 계엄령이 내려서 좀비가 된 자들을 모두 사살하고 있다는 끔찍한 소식이다. 또한 좀비를 숨겨주거나 신고하지 않는 자들도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한적한 시골이지만 결국은 들키고 말텐데 정환의 걱정이 커진다. 반면 반가운 소식도 듣는다. 어릴 적 동네 친구인 동배는 약사인데 미국에서 좀비 바이러스를 물리칠 백신을 개발중인데, 자신은 그 제약회사의 주식을 산다고 한다. 정환에게 희소식이다. 어쨌든 백신 개발 때까지만 수아를 감추고 있으면 된다. 좀비가 되어버린 딸 수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존재가 또 있다. 바로 정환의 어머니이자 수아의 할머니 밤순이다. 할머니는 손녀가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도 개의치 않는다. 여전히 할머니에게는 귀여운 내 새끼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정환과 밤순이 수아를 길들여 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다. 동물원에서 사자를 사육하는 일을 했던 정환이기에 좀비가 되어있는 수아를 맹수 조련하듯이 길들여 간다. 그런데 이게 제법 성공적으로 먹힌다. 그러던 중 정환은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좀비가 되어가는 사람이 기억력을 가지게 되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정환은 수아의 기억력을 살리기 위해 온갖 일을 한다. 우선 수아가 좋아했던 추러스를 사 온다. 하지만 실패. 그런데 할머니가 막창구이를 해 주니 수아가 걸신처럼 먹어댄다. 어릴 적 할머니가 해 준 그 맛을 본능적으로 기억해 낸 것이다. 정환은 수아가 좀비가 되기 전 보아의 노래를 좋아하고 보아의 춤을 따라했던 것이 생각 났다. 그래서일까. 정환은 수아를 의자에 묶어 놓고 그 앞에서 보아의 춤을 시현한다. 보아의 노래를 틀어 놓고 보아의 춤을 춰서 수아의 기억력이 되살아 나게 하려는 시도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 보아의 음악에 수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반응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생각지 못한 복병이 등장한다. 정환의 첫사랑 연화다. 연화는 선생님이 되었는데 고향 학교로 전근을 왔다. 마침 정환이 딸과 함께 고향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찾아온다. 정환은 수아를 적극적으로 감추려 하지만, 결국 연화에게 좀비가 된 수아의 존재를 들키게 된다. 연화는 당장 수아를 내쫓으로 한다. 만약 신고하지 않으면 자신이 신고할 것이라 협박한다. 연화가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남편이 좀비로 변했고, 좀비가 된 남편은 자신을 물어 뜯으려 했다. 그 순간 연화는 좀비가 되어 버린 남편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좀비는 인간이 아니기에 없애버려야 한다고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래서 정환의 딸 수아도 사람이 아니라 좀비에 불과하다며 내 쫓던지 없애든지 하라고 몰아붙인다.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신학적 사유를 하게 되었다. 우선 좀비 바이러스의 출현과 그에 감염된 상황인데, 죄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가 오버랩되었다. 그렇다. 태초에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벽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아담은 하와를 향해 “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 이라 고백한다. 하지만 죄라는 바이러스가 하와에게 들어왔고, 이내 아담도 동참하게 된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금단의 열매를 먹고 죄가 하와와 아담에게 들어왔다. 그 순간 죄 바이러스는 아담과 하와를 변질시켰고, 그들은 서로를 수치심으로 보게 된다.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는 아들들을 낳았다. 하지만 첫째 아들 가인은 둘째이자 동생인 아벨을 질투해서 죽인다. 죄가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얼마 후 라멕이라는 자는 오히려 죄를 칭송한다. “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 라멕은 죄에 대해 뻔뻔스럽게 행동하며 자신의 살인을 자랑한다. 그리고 노아의 시대가 되자 죄 바이러스는 온 세상을 휩쓸었다. 하나님은 죄를 다루시기로 하셨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끔 시도하신다. 노아의 홍수 이후 언약의 징표로 무지개를 주시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언약을 기억하여 죄를 짓지 않게 하시려 했다. 하지만 죄 바이러스는 더욱 퍼져나갔고 급기야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의 자리에 도전하려 했다. 이후의 역사는 두 가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선 영화에서 아버지 정환이 좀비딸 수아를 포기하지 않듯이, 하나님 아버지도 자신의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자녀들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을 반역해도, 그 형상을 스스로 버리고 잊어버려도 그 분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끈질긴 사랑과 인내로 자녀들을 회복시키신다. 집 떠난 탕자가 거지 차람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달려나가 끌어안고 입맞춤을 한다.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이 죄 바이러스에 걸려 변해 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죄 바이러스에 걸려 갈팡질팡하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은혜라는 백신이다. 마침내 독생자가 오셨고, 그분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영원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대속적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단번에 드려진 희생제물이셨다. 이후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게 되었다.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것을 ‘주입된 은총’이라 명했다. 우리 외부에서 은혜가 우리 안에 주입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은혜가 우리 안에 작동하여 죄와 맞서 싸운다. 결국은 은혜가 승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회복된다. 죄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리를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은혜라는 백신이다. 은혜의 백신이 주입되면 우리는 성령에 의해 은혜의 사람으로 차츰 변해간다. 이것이 성화다. 영화 좀비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좀비 바이러스에 걸렸지만 딸 됨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리고 언젠가 백신을 통해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우리도 그렇다. 죄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죄인의 행태를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궁극적인 소망이 있다. 이미 은혜의 백신이 우리 안에 주입되었고, 우리 안에서 선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우뚝 설 것이다. 우리도 그런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자. 아버지의 마음으로 대하자. 쉽게 포기하지 말고 용납하는 법을 배우자. 러시아의 대문화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음을 우리도 가지면 좋겠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장차 예수님의 은혜로 변화될 모습으로 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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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5
  • [기독교인문학]성경은 다양한 장르의 문학 모음집
    바른 성경읽기의 첫 단계 “성경 안에 나름대로의 관점을 지닌 서로 다른 장르의 문학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과거에 많은 독자들이 성경 안에서 경험했던 혼동이나 난해함이나 충돌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읽고 있는가? 김길구 성경은 세계문학의 위대한 고전 중에 하나죠. 여러 계층의 영감을 받은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계시의 기록뿐만 아니라 문학적 걸작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거예요. 반면에 성경만큼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책도 없어요. 오해의 원인은 성경이 기록된 200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과 그에 따른 문화적 간격이 아닐까 요. 오늘 우리의 관점으로 성경을 다 이해하기는 불가능하죠. 김현호 성경은 진공된 상태에서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대로 받아쓴 책이 아니라, ‘당시의 문화를 들어 마신 후 그것을 다른 형태로 내쉰 것’이라고 성경을 호흡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버나드 램 같은 분은 성경시대와 독자시대 사이의 간격인 언어, 역사, 문화, 지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순 없겠죠? 류지원 저자는 성경이 인식 가능하고 잘 보존된 고대세계의 문학 장르로 –지혜 문학, 의식서, 준 역사자료, 예언 문학, 법과 행동 수칙 모음집, 묵시 문학, 편지, 복음서- 구성되어 있는데, 66권 각각의 성경 문학의 장르와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때 비로써 본문의 의도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왜곡 없이 읽을 수 있다며, 그동안 학계에 머물던 해석 도구로서의 문학 유형 분류체계를 성경에 적용하여 평신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그리고 좀 더 깊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 정의, 심판, 민족의 멸망- 예언 문학 김길구 구약시대의 빛나는 전통 중에 하나는 히브리 예언가들의 활약입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서양문명을 이끌어온 3대 주류로 그리스의 이성과 철학, 로마의 법과 질서와 더불어 히브리 예언가들의 사회정의를 높이 평가했어요. 예언 문학에서 예언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거대한 역사와 국제적인 사건들을 해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해석가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류지원 이 책에서는 아모스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를 소개하고 있는데, 예언자의 개념부터 얘기해 보죠. 우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를 점쟁이로 혼돈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그런 기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한자의 미리 안다를 뜻하는 예(豫) 보다는 맡길 예(預)자가 히브리어 ‘나비’의 본래의 뜻에 가까워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과 사명을 맡아 전하는 사람’을 뜻하니까요. 김현호 구약의 예언과 그리스의 신탁을 비교해 보면 구약이 하나님의 언약과 도덕적 책임에 기초하며, 회개와 순종의 인간의 반응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윤리적·관계적 성격을 가지는 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탁은 주어진 운명을 알리는 결정론적·점술적 성격이 강하다고 해요. 예언 문학은 역사적 위기의 순간에 정의와 심판,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성경을 단지 삶의 지침서로만 읽는 이들은 자기 마음에 와닿는 구절에 집착하여 본문 전체의 맥락을 고려치 않아 본문의 뜻이 왜곡될 수 있기에 예언자들이 활동한 시기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1차 독자의 입장에서 본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자는 특히 신약의 시각으로 구약을 봄으로써 본래의 뜻이 왜곡될 소지가 많다며 여러 사례를 들고 있어요. ■ 법모음집 김길구 사회 공동체 안에서 인간생활을 규제하는 일은 인간 역사에서 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지요. B.C. 18C경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이 가장 오래된 법으로 알려져 있고, 구약에서는 이보다 늦은 여러 가지 법조문, 지침서, 기타 규율 모음집이 있지만 그중 중요한 것이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타나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사용했던 규범들도 마태복음과 목회서신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김현호 구분해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출20:1-17, 신5:6-21)의 경우 처벌규정이 없어 법조문의 기능이라기 보다 하나의 원리 규범으로 기능하였고, 그 중심에 토라(오경)가 자리하고 있어요. 각각의 계명들이 창세기의 내러티브들에 소급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 준수계명은 창세기 2:3-3의 안식일 규정과 연결된 것처럼. 류지원 언약 법전은 모세의 언약 체결 이야기를 구성하는 내러티브 안에 있는데 윤리적 규범과 제의적 규범이 병렬되어 있어요. 고대 이스라엘보다 빠른 함무라비 법전과 비교해 보면 둘 다 고대 근동 사회의 법체계로, 사회 질서 유지와 정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조건법 형식 -“만일 … 하면 … 한다”-이 있으며, 재산권, 폭력 범죄, 가족법 등 폭넓은 사회 영역 다룬다는 점에는 공통점이 보이나, 구약 법전은 절대법인 종교적 기반과 언약적 성격이 강하며, 법 준수는 신앙 행위의 일부인 반면, 함무라비 법전은 세속 통치 이념에 기반, 계급에 따른 법 적용 차별이 존재한다는 차이를 보입니다. 김현호 신명기는 가나안 땅 진출을 눈앞에 두고 요단강 저편 모압 평지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모세의 연설로 나타나지만, 그 핵심은 신명기 12-26장의 신명기 법전입니다. 주전 622년-621년에 요시아 왕이 단행한 종교개혁의 시기와 맞물려있지요.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역사적 서사의 편집과정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은 그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케 합니다. 특별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과부와 고아에 대한 관심을 보인 인도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동물과 식물의 보호, 토양에 대한 배려 등은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류지원 레위기 17-26장은 성결법전으로 하나님이 거룩하심과 백성의 성결을 강조한 성결법전도 중요하지요. 제의적 요구와 처벌, 제사장 규례, 절기와 안식일, 희년(레25장) 등 제의적 관신 가운데 가장 숭고한 윤리적 원칙이 등장합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9:18). 그러나 성경의 법 모음집은 현대에 와서 큰 과제를 주고 있어요. 성경이 제시한 대부분의 법을 실제로 따르지 않고 있으며-동물제사 등, 동성애, 교회 안에서의 여성지도력, 이혼 문제 등으로 신약성경의 진술의 의미와 유효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죠. ■ 저자가 제안하는 성경독서법 김길구 마셜 D. 존슨이 제안하는 성경 읽기 방법을 소개하면 ① 먼저 본문의 장르를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펼치면, 그 부분이 지혜문학, 예언 문학, 법전, 역사서, 시편, 묵시문학, 복음서, 서신서 중 어디에 속하는지 먼저 구분하라고 합니다. 그렇지않을 경우, 각 장르는 표현 방식, 목적, 독자층이 다른데 동일한 해석 틀을 적용하면 왜곡될 위험이 크다는 거예요. 김현호 ② 당시 청중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읽을 때는 본문이 기록될 당시의 역사적 상황, 사회 구조, 종교적 환경을 고려하고, 그 당시의 1차 독자가 어떻게 이해했을지를 상상하며 읽으면 더 효과적이겠지요. 예를 들면 예언서는 나라가 정치·군사적 위기 속에서 선포되었고, 법전은 광야의 텐트 생활 속에서의 공동체 생활 규범이었다는 것을 상상하며 읽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③ 문학적 기법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시, 은유, 상징, 반복, 구조적 패턴(평행법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되 직역보다는 문학 장르에 맞는 해석을 우선하라는 거예요. 류지원 ④ 본문의 신학적 메시지를 오늘로 연결하라. 장르와 당시 의미를 먼저 이해한 후, 오늘날의 삶과 신앙에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의미를 무시한 현대적 적용은 위험하지만, 본래 의미 위에서의 적용은 말씀에 생명력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⑤ 장르 혼합에 주의하라 입니다. 한 책 안에 여러 장르가 섞여 있을 수 있으므로, 본문 단위로 세밀하게 구분하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복음서 안에는 역사적 내러티브, 비유, 설교, 묵시적 예언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정리 김길구】 마셜 존슨의 《 고대문학의 렌즈로 보는 성경 》 우리가 성경을 읽는 독서법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본서는 성경 66권이 각기 다른 장르의 문학 작품-지혜 문학, 예전 의식서, 역사 이야기, 예언 문학, 법 모음집, 묵시문학, 편지, 복음서-으로 구성된 문학 모음집이라며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장르를 구별하고 그 특성을 이해한 뒤 기록될 당시의 상황에서 독자의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는 새로운 성경 독서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성경을 문학의 한 형태로서, 그리고 고대의 역사·문화적 산물로서 존중하며 읽는 것이 바른 성경 해석의 출발점으로, 장르를 파악하고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며 문학적 장치를 인식하고 그 위에 신앙적 적용을 하라고 가르친다. ◇ 저자소개 마셜 존슨 ∥ 포트레스 출판사의 편집장이다. 수 십 년 동안 성경학을 연구하고 관련 책을 출간했다.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성경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노르웨이의 베르겐대학교에서 가르쳤다. ◇ 저 서 ∥ 《The Apostles’ Creed》, 《The Purpose of the Biblical Genealogies》, 《Psalms Through the Year》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고대 근동 문헌과 구약성경》 크리스토퍼 B. 헤이즈 / CLC / 2018 《성경의 탄생》 존 드레인 / 옥당 / 2011 《구약성경문학탐구》 찌포라 탈쉬르 / 한국이스라엘학회 역 / 《오리게네스 성경해석학 서사기-해석, 상징, 드라마》 곽계일 / 다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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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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