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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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이 무슨 날이었는지 제대로 알고 계신 분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일이기도 했던 이 날은 오십 세 번째 맞이하는 <지구의 날>이었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전국 소등 행사’였습니다. “저녁 8시부터 불을 끄고 지구를 밝혀주세요”라는 문구로 환경부가 주관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알지도 못한 채 관심 있는 소수들만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하기야 역사상 명멸했던 수많은 운동들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지금이야 당연하게 여기는 권리 즉 인종, 계층, 재산에 관계없이 일정 연령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보통선거권 역시 초창기에는 극소수 사람들이 주도하는 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실망하는 대신, 이제 몇 걸음 못 왔다가 아니라 벌써 이만큼 걸어왔다 생각하고 힘을 내야 할 일입니다.

<지구의 날>을 알게 되었다면, 이번 기회에 환경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환경’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했던 1962년,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이라는 여성이 인류 역사를 바꾸는 책을 한권 출간했는데 그게 바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었습니다. 삼백 페이지 분량이지만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이 책에 한 번 도전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당시 신제품으로 개발되면서 각종 병충해를 제거하고 농사나 위생에 혁혁한 성과를 자랑하던 디디티(DDT) 같은 제품의 위험성을 고발한 작품입니다. 이 책이 발표되고 난 지 10년 만에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유엔 주관 인류환경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20년 뒤 브라질의 리우에서 국제연합환경개발회의가 열렸고, 이후 각종 환경 관련 회의와 선언과 기구와 단체들이 발족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학술지는 조금 부담스럽다면, 고전으로 평가받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은행나무, 2011)을 추천합니다.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김한민 씨가 쓴『아무튼, 비건』(위고, 2018), 제레미 리프킨이 쓴 『육식의 종말』(시공사, 2008)을 추천해 드립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다들 정신없는 틈을 타서, 일찍이 유래가 없을 만큼 엄청난 분량의 일회용 쓰레기가 배출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인류 전체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리라고 봅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심해 바닥에서 탐사단의 시야에 처음으로 들어온 물체가 플라스틱 쓰레기였다는 기사를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이런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다면 『플라스틱 바다』(미지북스, 2019)를 소개해 드립니다. 어떤 책을 보시던, 신선한 충격을 받으실 테고 환경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지시리라 확신합니다.

이제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독서와 진지한 토론이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인 실천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기는 합니다. 어제 했던 <전국 소등 행사>도 그런 흐름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별 것 아닌 듯 보여도 개인적인 작은 실천 하나 하나가 모여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항상 거론되는 이야기지만 많은 음료를 소비하는 추세에 맞추어 실제로 개인용 물병이나 음료용기를 모두 다 들고 다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플라스틱 방앗간>이나 <제로웨이스트카페> 같은 환경지향성 가게나 기업들을 돌아보는 일도 의미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인용 혹은 단체로 세상을 향해 작지만 큰 목소리를 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결국 기업이나 정부를 움직이는 힘은 환경 여론이기 때문입니다. 내년 이맘때면 잊지 말고 10분간 불끄기에 동참해 봅시다. 물통을 들고 다니는 환경 운동가가 되어 봅시다.

그리스도인은 더 그래야 합니다. 왜일까요? 최근 요하임 라트카우(Joachim Radkau)가 『생태의 시대』(열린책들, 2022)라는 환경역사서를 내놓았는데, 여기서 그는 환경운동의 역사가 일천하다고 보았습니다. 아닙니다. 일찍부터 환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간은 물론 동식물까지 배려하는 책이 존재했습니다. 성경입니다(출 22:30, 23:5, 19; 레 22:27, 28, 신 22:6 등). 하기야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인데 어련하겠습니까? 예수께서도 하늘의 새와 땅의 풀과 양과 소까지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마 6:26-30; 12:11; 눅 13:15). 신약성경에는 더 분명한 환경 보호 선언들이 존재합니다(롬 8:21-22; 엡 1:23; 골 1:20 등). 리용의 교부 이레니우스(Irenaeus)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엡 1:10)을 근거로 <총괄갱신(Recapitulation)>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개발과 이윤을 이유로 환경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만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보시다시피 피조 세계를 존중하고 아끼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중대한 책무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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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지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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