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전영헌 목사(N).jpg

수업 시간마다 굉장히 독특한 반응을 하는 H가 있었다. 말하는 것도 삐딱하고, 친구들에게 비아냥거리고, 어쨌든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아이였다. 그래서 ‘참 묘한 녀석이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은 수업 시간에 ‘나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학급의 친구들에게 자신을 오픈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퍼즐 조각을 맞추듯 조화를 이루는 학급이 되도록 하자고 하는 것이 그날 주제였다.

여러 학생이 자신의 강점으로 ‘끈기, 운동 잘하는 것, 말 잘하는 것, 아무 곳에서나 잘 자는 것, 수학, 영어 말하기, 리더십, 긍정적인 생각 등’ 다양한 답을 했다. 자신의 약점으로는 ‘끈기 부족, 집중력, 성적, 가정환경, 외모, 키 등’으로 대답을 했다. 그런데 H는 ‘나의 약점은 오른손인데요’라고 대답을 했다.

“H야 넌 왜 오른손이 너의 약점이니?” 하고 물으니, 뒤쪽에 같은 중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픽픽하고 웃었다.

“H야 왜 오른손이 너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니?” 재차 물었다.

H가 책상 밑에 있던 오른손을 올리더니 “나는 내 오른손이 저주받은 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때 이 손에 카트 칼을 들고 친구를 찌르려고 했던 손입니다. 나는 이 손이 저주스럽습니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우~~~”하고 야유 섞인 소리를 내었다. 진정시키고 수업을 마친 후 H를 교목실에 불렀다.

“너 중학교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안 좋은 일이 있었니?”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친구들이 자꾸 놀렸습니다. 저는 외모 콤플렉스도 있고, 목소리도 이상해서 늘 움츠리고 있는데 그날도 계속 친구들이 나에게 찌질하다고 놀리는데 너무 화가 나서 가방에 있던 칼을 꺼내 휘둘렀습니다. 목사님 그런데요 그날부터 나는 화만 나면 칼을 찾습니다. 오늘도 교복 호주머니에 칼을 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내가 너무 싫습니다. 안 그래야지 하는데 또 그러고 있습니다. 한 번은 제 오른손이 너무 싫어서 칼로 제 오른손을 그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나를 더 피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제가 싫습니다.”

외모도 투박하고, 목소리도 독특하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어서 안 그래도 친구들의 타겟이 되기 쉬운 아이였는데 중학교 때 일이 계속 H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목사님이 네 손을 잡고 기도해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네”

“하나님, H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 원합니다. H의 답답한 마음의 소리를 들어 주시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오래전의 일이 H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상처 있는 손이 사람을 살리는 손으로 바뀔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H의 손이 외로워하는 친구에게 위로의 손이 되게 하시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킬 수 있는 소망의 손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이 H의 손을 붙잡아 주십시오.”

녀석은 기도하는 내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윽~윽”소리를 내며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나보다 덩치가 큰 녀석을 안아주었다. 물론 H의 상처가 바로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졸업하기 전에도 학교에서 한 번 소동이 일어났던 적도 있다. 지금 나는 H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른다. 소식이 닿지를 않는다. 그런데 문득문득 기억나는 제자 중 하나이다. 그냥 가슴 한켠에 아픔으로 남아있는 아이이다.

빠른 시간에 반응하고 바뀌는 아이들도 있지만 긴 시간이 지나서야 바뀌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H가 20대를 지나가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더 이상 자신의 손을 저주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었던 오른손이 자신의 가장 강점이 되는 손이 되길 축복하며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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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헌 목사] 이 맘때면 생각나는 제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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