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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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에 묻힐 묘지 게임에서 누가 웃을까? 기독교 유독 개신교 기자로서 살아온 한 평생을 뒤돌아 볼 때 후회가 없다면 거짓이고 그저 살다 보니까 79세 거의 희년까지 살아 왔다. 아홉수가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2022년 흑범이라는 임인년은 매사에 언행을 조심하라는 각오를 다짐할 수밖에 없다.

교계기자는 무엇으로 기사를 써 왔는가?

FM대로 말하면 기자는 ’사실‘을 근거로 쓰는 직업이다. 그러나 때로는 사실이 진실이 아닐 때도 있고 진실이 다 옳은 것이 아닐 때도 있더라. 그래도 기자는 사실에 충실하게 글을 써야 한다. 얼마 전 교계 한 지인이 하늘 나라에 갔다. 평소 매우 친한 교계 어른이고 교단과 교회에서도 존경을 받으며 90세 장수한 어른이다. 이 어른 교회였던 A씨와 다른 교단 B씨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전 한 교회 집사와 다른 교회 직분자와의 관계에서 동업을 했다. 동업에 투자한 지인은 그때 돈 5천만원을 투자했다. 얼마 못 가서 동업 계약은 깨어져 헤어질 때 투자한 지인에게 이것 저것 다 공제하고 3300만원을 주는 대신 부산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의 S공원 묘지 가장 좋은 위치의 묘지 1000평을 돌려 받기로 약속하는 조건으로 두 분 사이는 끝이 났다. 그런데 묘지를 소지한 측은 집사가 다니던 교회 장로이고 그 장로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분인데 갑자기 30년 전에 자필로 쓰고 인감 도장을 찍은 서류가 발견되어 알았던 사실이다. 투자 했던 그 지인한테 주기로 한 묘지 1000평도 안주고 양도증에 날인한 약속은 아예 무시하여 투자한 지인은 당국에 고소한다고 하니까 묘지를 소유한 장로는 같은 교회 집사, 즉 동업했던 집사가 묘지 소지한 장로에게 4000평을 사 주면서 3000만원을 교회에 묘지 값으로 지불했다는 것이다.

시일이 지나서 동업한 지인이 “왜 묘지 1000평을 주지 않느냐”고 독촉하니 “묘지 10평만 받으라” 사정 사정해서 또다시 약속하는 양도증 문서를 남겼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하늘로 가신 장로님으로부터 두분(교회에 묘지 4000평 사서 3000만원 준 집사와 동업하여 5000만원 준 지인) 모두에게 하나도 이행하지도 않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것이 서류가 말하는 ‘사실’내용이다. 일생을 기자로 일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기자에게는 ‘사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3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보니 그것이 허위이고 날조고 거짓이었다. 이제 와서 소천한 분은 재산을 다 자녀에게 넘겨 한 푼도 없는 빈털털이 신용 불량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면 두분 모두가 다 소천한 장로에게 고의든 아니든 거짓에 넘어간 순수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팩트라는 결과만 보도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터득했다. 모든 ‘결과’에 ‘과정’이 있듯이 사실이 반드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에 와서는 그 당시 양도증에 찍힌 도장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 실제 투자 금액이 5천만원이 아니고 겨우 4백만원이라고 우기는 집사가 3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장로로 은퇴하여 있는 그 당시 집사(지금은 은퇴장로)는 완전 오리발 내밀면서 소천한 장로의 자녀를 상대로 소송해서 자기의 지분을 찾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누구 말이 진실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양심에 비추어 보고는 하늘 나라에 가기 전에 죄책 고백을 하고 용서를 구해 떳떳하게 하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계시는 보좌 근처라도 앉을 수 있지 않겠는가? 기자는 육감으로 기사 쓸 때가 많다. 육감은 논리적이지 않다. 실제 옳은 기자는 경험이 많은 기자가 진실을 쓸 때가 많다. 그것은 이른바 취재 소스로 이루어 진다. 그 인맥은 신뢰로 지켜지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기사는 정의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연륜에 따라 인맥과 경험과 육감으로 탄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거의 반 평생을 오직 한 길만 걸어 오면서 누가 사실이고 진실로 말하는지 육감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위의 하나의 실제 팩트를 예로 들면서 글을 쓰는데 이행하지 못하고 하늘 나라에 간 장로는 하늘 나라에서 심판 받겠지만 두 분의 남은 장로는 살아 생전에 양심 고백을 할 과제가 남았다. 투자한 장로 지인 장로는 마음을 비우고 살고 있지만 나머지 한 분은 자녀를 상대로 묘지를 찾겠다고 세상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고 자기가 가지고 갈 몫이 돌아 올런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진실과 허위 이 두가지는 오징어 게임보다 더 실감나는 실존하고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 그야말로 마지막 자기가 땅으로 와서 땅으로 돌아가 묻힐 묘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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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계 언론인으로서 한 길만 걸어온 한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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