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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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제기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은 6월 21일 복음병원 설립 7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70년의 역사!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6월 21일은 복음병원 설립일이 아니다. 설립일이 아닌데도 어떻게 이 날을 설립일로 계속 지키고 있을까? 이미 이와 관련된 글을 몇몇 언론에 기고했으나 일부 미비한 부분들을 수정하고, 추가로 확인된 새로운 자료들을 수정보완하여 다시 기고한다.

아시다시피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은 고신대학, 고려신학대원과 함께 고신교단의 중추기관이다. 이 ‘복음병원’(1961. 8. 7)의 전신은 ‘복음의원’(1951.12.23)이었고 그 복음의원의 전신은 ‘복음진료소’(1951. 1. 15)였다. 그렇다면 ‘복음진료소’는 누가 언제 설립했을까?

당연히 전영창 선생이 1951. 1.15일 차봉덕 의사를 초빙, 제 3영도교회 별관(창고)에서 설립했다. 미국서 모금해 준 5,000불(seed money)로 대한기독교 '경남구제회'(복지구호단체)와 '복음진료소'(의료기관)를 동시에 설립 개원했다.

그러나 연혁이나 각종 기록에는 전영창 대신 장기려 박사를 설립자로, 초대원장으로 기록하고 있고 대부분 사람들도 장기려 박사를 복음병원 설립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장기려 본인은 복음병원은 자신이 설립하지 않았으며 설립자는 전영창 선생이라고 몇 번이나 밝혔었다. 그런데도 고신이나 복음병원은 이 사실을 애써 모른 체 하고 있다. 장기려 박사가 설립자가 되고 초대원장이 되면 정체성이나 병원 선전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잘못된 역사를 그냥 덮고 지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다 복음병원의 역사가 이같이 왜곡되었을까? 어쩌다 설립자 전영창과 초대원장 차봉덕이 복음병원 역사에서 지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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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복음병원

 

연구 동기

 

필자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생활의 순결을 모토로 하는 고신교단의 목사인 것을 늘 자랑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신학은 좋은데 생활은 왜 부족한가라는 문제의식을 늘 가지고 목회현장에 있다가, 복지목회로 전환하여 섬기던 중 교단 내 사회복지 활성화를 위해 손종기, 김세중 목사와 함께 ‘고신전국사회복지협의회’(2012. 4.30)를 조직,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출범하였다.

고신전국사회복지협의회는 기존 교단총회 상설기구인 사회복지위원회 소속 전문위원들로 활동하면서 몇 차례 모임을 가지다가 교단 내 사회복지시설장 및 직원들, 담임목사들에 대한 기독교사회복지 전반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제1회 고신기독교사회복지세미나'(2014. 4.28~29, 경주 코오롱호텔)를 개최했다.

이때 필자는 2년 동안 고신총회 사회복지위원회 전문위원장으로서 교단 내 사회복지 역사 및 현황에 대한 연구조사를 한 후 ‘고신교단의 사회복지역사 소고’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이때 조사연구한 결과 평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고신은 결코 사회복지사역에 무관심했거나 소홀했던 교단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초창기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생활이 잘 조화된 교단이었다. ‘손양원 목사의 애양원’, ‘이약신 목사의 희망의집’, ‘조수옥 전도사의 인애원’, ‘전영창 선생의 복음진료소’(복음병원)...............그런데 여기에서 뭔가 이상했고, 막혔다.

이미 수많은 기록들에서 '전영창'이 지워지고 ‘장기려 박사의 복음병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복음병원 연혁에서부터 각종 저서들, 기록들에서 복음병원은 장기려 박사가 설립했고 초대원장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왜 전영창 선생은 복음병원을 설립하고 고신을 떠나야만 했을까? 본 고는 바로 이 불편한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기 간 조사연구 한 결과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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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바로알기]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설립자, 장기려인가 전영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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