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전영헌 목사(N).jpg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세 가지로 정리해 보자.”하며 주제를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비슷하다. ‘가족, 친구, 돈’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간혹 의외의 답이 나오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이 많은 G였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시험을 보고 우리 학교에 입학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공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 것이다.

“첫째는 여친(여자 친구)이고, 둘째는 자존심이고, 셋째는…… 교회입니다.”

“인마, 아부하지 마라. 교회는 무슨…….”

“목사님, 아닌데요. 정말 교회 맞는데요.”

“어째서 그러냐?”“먼저, 지금 제게는 여자 친구가 제일 소중합니다. 제가 지켜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남자입니다. 남자의 뽀대(자존심)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소중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소중한 이유인데요. 저는 교회에 이제 세 번 가 봤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갔을 때 이상하게도 누군가 내 말을 들어 주는 것 같았고, 교회에서는 나를 이상한 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겹게 자꾸만 웃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또 교회 샘들이 나를 볼 때마다 등을 쓸어 주면서 이것저것 챙겨 주시는 모습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이름은 주로 ‘인마’ 아니면 ‘어이’나 ‘야, 새끼야’였는데 이름도 제대로 불러 주시고 말이지요. 그래서 지금은 교회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왠지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요.”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나 역시 웃었다. 물론 G는 교회에 꾸준히 출석한 것은 아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만 교회를 찾곤 했다. 하지만 고비의 순간마다(술이 취했든 맨 정신이든)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그에게 따뜻함을 주었던 것이다.

G는 이제 군 제대를 앞두고 있다. 지난 12월에도 연락도 없이 음료수 한 통을 들고 학교를 찾았다. 나는 반가워서 꼭 안아 주었다. 그런데 녀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며 휑하니 가 버리는 것이다.

“목사님 생각나서 그냥 들렀습니다. 저 이제 부대로 복귀하는 길입니다. 얼굴 뵈었으니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G의 뒷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은 큰 것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감동할 줄 알고 귀하게 여기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사람이 소중하다고 하면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며 상대방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온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며 판단해 버린다.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제 위치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1~2년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하나님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데, 우리는 너무 쉽게 아이들을 포기하고 판단해 버리는 잘못을 하고 있다.

동일한 질문을 내게도 해 보았다. 학교에 근무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중에 하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다음세대 칼럼]기다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