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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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 언어로 “까도남”이라고 있다. ‘까칠한 도시 남자’를 줄여 이르는 말로, 성격이 까다롭고 쌀쌀맞은 분위기의 세련된 젊은 남자를 말한다.

사람들은 까칠한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데 원만하고 성질 좋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무능하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똑똑하면서도 따뜻한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좋지만 그렇게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 드물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기보다는 뱀같이 간사하고 비둘기같이 멍청하기가 쉽다.

일을 할 때마다 까칠을 떨고 예민하게 굴면 자신의 마음도 불편해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까칠함은 디테일이었고 예민한 것은 철두철미한 것으로 해석을 하게 되었다.

온유의 뜻은 거칠게 날뛰는 야생마가 길들여져서 명마, 준마가 된 상태라고 한다.

사역 현장,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대충대충, 얼렁뚱땅,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 당장은 원만하지만 일은 되는 게 없다. 그래서 스케일과 디테일, 철저함과 따뜻함,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면서 까칠하고 도도한 사람이 더 신뢰가 된다.

신앙 세계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다. 도도하고 까칠하고 시건방진 사람이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한다.

오늘은 도도한 크리스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윗물은 더러워도 네가 샘의 근원이 되면 된다.

일을 못하는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원망, 핑계, 변명, 이유가 많다는 것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연장을 나무라는 법이다. 아담 이후로 사람들은 남을 탓하고, 희생양을 찾고, 변명 거리를 찾아서 이유를 갖다 붙였다.

아브라함은 아빠 찬스를 쓸 게 없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윗물은 더러워도 조상 탓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되었다.

윗물은 더러워도 네가 깊은 산속 옹달샘이 되면 물 근원이 되어서 물길따라, 꽃길따라 실개천이 도랑이 되고 시내를 이루고 천을 이루고 강을 이루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되는 것이다. 샘은 자정능력이 있다. 흙탕물도 흘려보내며 이파리도 떠내려 보내고 맑아진다. 흘러가면서 주변의 산천초목을 유익하게 한다.

아브라함 한 사람이 강의 뿌리가 되고 원천이 되고 근원이 되었다. 일꾼은 어떤 경우에서도 환경, 배경, 조건을 탓해서는 안된다. 부흥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주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아브라함은 75세 영감님 때에 익숙한 곳, 정든 곳인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주께서 지시하신 약속의 땅으로 떠났다. 멋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계획한 것보다도 뜻밖에 주께서 강권적으로 인도하신 것이 좋게 되었다. 아브라함에게는 나이에 상관없이 개척정신, 도전정신, 모험정신, 창의정신이 충만했다. 그것이 청춘이다. 사업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하는 모험이다. 위기가 기회이다. 부담이 안되는 것은 사명도 아니다. 막연한 미래가 두서도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주께서 이루실 기이한 축복으로 인한 설레임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어도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

사람들은 안전 위주의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은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바라고 나아가면 실제 상황이 된다. 인생은 안전판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도전하는 것이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뻥이 심하다. 당장 보기에는 헛소리하는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면 꿈꾼대로, 소원대로, 말한대로, 심은대로, 믿음대로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꿈이라도 빵실하게 기도라도 거창하게 소원이라도 앗사라게 가져야 된다. 꿈은 이루어지고 말이 씨가 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목자들이 다툴 때에 롯은 눈에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고 마침내 타락하고 망했다. 아브라함은 선택권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권이 중요했기에 좌우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것이 최고이기에 조카에게 양보할 수 있었다. 조카 롯이 떠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주겠다 하고 종과 횡을 행하여 보라 네 발로 밟는 곳을 다 주겠다며 그야말로 사통팔달의 복을 주었다.

기도는 길어도 응답은 순간이다.

아브라함 집안은 기도 응답이 늦기로 유명하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약속을 받고 100세에 아들을 낳았다.

100세가 되도록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전에 죽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환갑이라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아들을 낳았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처가살이만 20년을 살며 칠년을 수일같이 보냈다.

하나님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돌아간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찬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고, 기다리고, 감사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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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도도한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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