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송시섭 교수.jpg

한 지역 작가의 글 속에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고 싶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말 하고 싶은 일로 인생을 채우고 싶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말을 듣는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는 ‘인생을 내 맘대로 살 수 있나’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시겠지만,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겐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라’는 조언은 꼭 필요한 잠언(箴言)이다. 공식적인 직장생활이 10년밖에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된 무렵, 난 조용히 자신에게 다짐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참으로 써보고 싶은 글을 쓰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서인지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이, 그리고 사건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그간 읽었던 자료들이, 사 모아두었던 책들이 하나의 주제로 나를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 동안의 경험들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를 ‘이끄는’ 느낌, 아니 내가 ‘끌려가는’ 느낌을 갖게 되는 요즘이다. (이 주제를 옆에 있는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무튼 이 나이쯤 되어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라’는 주문이다. 전도서(Ecclesiastes)에도 큰 전제가 있긴 하지만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지 않은가. 어릴 때 이런 삶을 갖지 못한 젊은이는 늘 누군가의 지도와 인도가 없이는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설정된 방향마저도 제 힘으로 내딛지 못하고, 자신만의 걸음을 걷지 못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마음 가득한 기쁨을 안고, 마음에 원하는 길들을 행했던 이들은 참으로 행복한 자들이리라. 여기서 말하는 ‘기쁨’과 ‘원함’이 ‘방탕’과 ‘탐욕’은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주업(主業)으로 하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주된 관심은 ‘누가 공부를 잘 하는가’이다. 여기서 공부(工夫)란 단지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일평생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하고 이를 정리해보고자 하는 자세를 말한다. 달리 말하자면 인생 전체가 무언가에 ‘끌림’이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다. 그들과 나눈 대화에선 꼭 무언가는 배운다. 반면 참으로 안타까운 학생들도 있다. 끊임없이 무언가에 ‘쏠려’ 다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방법이 좋다고 하는 말에 혹해서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왔던 노력을 하루아침에 내팽개치고 이 사람의 조언, 저 사람의 방법론을 기웃거리며 살아간다. 이른바 ‘늘 대세를 따르는’ ‘쏠림’의 사람을 만나면 이내 대화가 끊어지고, 무미건조한 세상이야기만 잔뜩 하게 된다. 니체가 그랬다던가. ‘만인이 좋아하는 책에서는 언제나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인공지능이 판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꼭 필요한 인재는 누구일까. 끊임없는 호기심을 갖고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비록 큰돈을 벌지 못해도, 크게 성공한 기업을 일구지 못했다 하더라도 늘 미소와 땀으로 얼굴을 채우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에겐 금메달은 ‘끌려서’ 도달한 끝 지점에 놓여있는 작은 선물에 불과하지, 결코 그들의 삶의 목표이자, 전부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겐 대통령이란 자리도 이웃의 삶을 위한 헌신의 ‘즐거움’의 끝자락에 걸려있는 흰 줄이지,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위세와 세력이 아니다. 자신의 삶 근처를 환히 비추는 사람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지역을 어제보다 좀 더 아름답게 만들었던 사람들, 그들이 우리의 금메달리스트요, 우리의 대통령이다. 삼수(三修), 사수(四修)를 해서라도 대통령이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정치인들, 돈이 된다면 어떤 형태의 장사도 마다하지 않는 문어발식 기업가들을 만날 때, 난 그런 사람들에게 끌리지 않는다. 점점 더 나만의 끌림이 없고, 점점 더 그들의 쏠림만 있는 세상, 늘 이웃과 동고동락했던 친근한 동장님, 동네의 작은 사랑방이 되었던 빵가게가 사라져 버린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끌림이 있을지 의문이다. 정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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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 교수]끌림과 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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