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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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 그린 남북 갈등의 현대사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2015)에 이어 남북 간의 갈등을 역사 속 사건을 통해 새롭게 조명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베를린>이 남북 첩보원들의 충돌과 인간애를 액션을 통해 그려냈다면, 최신작 <모가디슈>는 남북갈등은 시대적 배경으로 전개시켜 놓은 채 소말리아 반군의 혁명 속에서 함께 탈출하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하는 남북외교관의 모습을 다루었다. 즉 <베를린>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적대적 관계로 등장한다면 이번에는 외부의 총을 피해 협력해야 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모가디슈>에서 발견하는 한민족의 상황은 한마디로 웃프다(겉으로는 웃기지만 속으로는 슬픈 처지라는 신조어). 동서독을 나누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어서 남북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되어버렸을 때의 상황을 읽을 수 있다.

 

 1991년 남과 북은 유엔가입을 앞두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유엔 회의장에서는 잘살든 못살든 한 국가당 한 표의 투표권이 주어지는 까닭에 아프리카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시급했다. 소말리아주재 한국 대사관의 한신성(김윤석) 대사는 안기부 출신의 정보 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이 가져온 선물 보따리를 들고 소말리아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에 무장강도를 고용한 북한 대사관의 방해 작전에 피해를 받고 만다. 강대진은 이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듯 북한의 총기가 소말리아 반군의 손에 들어간다는 언론 플레이를 벌여 어떻게든 소말리아 정부와 북한 간의 관계를 떨어뜨려 놓으려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반군은 수도 모가디슈에 진입하게 되고 남북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들은 수도를 탈출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지명(地名)’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전 작품의 도시 베를린은 동서독 분단을 상징하는 도시여서 남북 정보원들의 생사를 넘나든 작전이 전개되는 상황은 충분히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은 이제 분단이 아닌 통일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 누구도 합칠 수 없을 만큼 골이 깊어진 이념과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고 한순간에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남북분단의 상황에서 왜 우리만 과거 냉전 시대의 대결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일으켰다.

 

 이제 류승완 감독은 ‘모가디슈’를 들고 나왔다. 우리에게 소말리아는 국제 수송선들 납치하여 몸값을 받는 ‘소말리아 해적’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2001>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1993년 소말리아에 파견된 유엔평화유지군으로서의 미군 특수부대와 유엔의 구호식량을 착취하는 소말리아 민병대와의 시가전이 압권인 영화였다. 그런데 소말리아와 모가디슈는 이게 전부였다. 부정과 혼돈의 도시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그 속의 남북은 부조리한 상황 가운데서 살기위해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는 점에서 모가디슈는 통일 이전에 개별적 생존을 상징하는 도시로 남게 될 전망이다. 한국의 영화 관객들은 이제 낯선 소말리아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모가디슈에서 드러난 한국인의 민족성

영화는 평소 인식하지 못했던 인간 무의식의 통로 역할을 한다. 특히 사람들이 주목하고 인기 있는 영화들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을 보여준다. 칼 융(Carl G. Jung)이 언급한 집단 무의식은 개인이 갖는 무의식과는 달리 사회 구성원들이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 가운데 갖게 되는 무의식으로 보통은 신화나 설화 그리고 전래동화를 통해 드러난다.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도 그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은연중 나타나는 것이 있다면 집단 무의식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 적용하자면 집단 무의식은 대중성을 통해 나타난다. 한국의 오랫동안 사랑받는 상업영화나 시간을 뛰어넘어 인기 있는 가요 안에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모가디슈>에는 세 가지의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민족성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경쟁(競爭)의 무의식이다. 그 먼 아프리카에서조차 남과 북은 갈라져서 서로에 대한 비방과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말이 좋아서 외교전이지 실상은 거짓과 술수 그리고 폭력이 난무한다. 그런데 이 같은 갈등은 소말리아에 주재하는 남북외교관들이 아프리카에까지 오게 하는 원동력이며 그들은 경쟁 가운데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는 성과를 거둔다.

 

 삼국시대에 민족 안에서 분열했던 신라와 고구려 백제의 모습으로부터 조선시대의 당파싸움과 현대 사회에서 여야로 나누어져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하는 모습은 때로는 국민들을 절망시키고 위기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이는 에너지를 고양시키고 적절한 안내를 통해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살아온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이 국가들과 경쟁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는 동정(同情)의 무의식이다.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동정은 인간의 본능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리 미워하고 못된 사람이라도 잘못되고 위기에 빠졌을 때 모르는 척 넘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인들로서는 모른 척 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도와달라고 사정하는데 이를 어찌 무시할 수 있냐는 생각이 한국인들의 마음에는 있는 듯하다.

 

 북한 대사관이 소말리아 반군에 의해 피습당하고, 믿었던 중국대사관마저 폭도들에 의해 강탈당하는 모습을 보며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가 택한 곳은 한국 대사관이었다. 총알이 빗발치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림용수 대사는 한국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한다. 한국 대사관 안에서는 고민이 흐르고 마침내 문을 열어준다. 이들을 망명으로 보고하여 실적을 올리려는 외교적 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맞이하는 한국 대사관 안에는 난장판 속에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옳다는 기류가 흐른다.

 

 셋째는 문기(文氣)의 무의식이다. 책을 좋아하고 배움을 가치 있게 여기는 무의식이 한국인에게 있다. 남북의 외교관과 가족들은 승용차에 나눠 타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류승완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찍은 액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도로마다 반군이 장악한 상황에서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이들은 어떻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임용수 북한 대사는 한국 대사관에 있던 책들을 모아 승용차의 외부에 붙여서 방호벽을 만든다. 끈과 테이프로 책들을 승용차 위와 겉면에 부착시켜서 총알이 뚫고 오지 못하도록 일종의 방탄복 역할을 하게 함을 볼 수 있다. 책으로 총을 막는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책으로 총을 막는다’라는 말도 유행시켜야 할 듯하다. 관객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지만 이것은 문기(文氣)에 대한 한국인의 무의식을 상징화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계에서 금속활자를 가장 먼저 만든 민족일 뿐만 아니라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먼저 들어온 선교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아니한가? 지금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경을 많이 출판하는 나라다.

 

모가디슈의 그리스도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한신성(김윤석) 대사의 부인 김명희(김소진)의 이미지에 깊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명희는 매우 신실한, 교회 밖의 사람들이 본다면 극성스러울 정도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대사 부인 역할을 맡은 김소진 배우는 <마약왕>에서도 범죄의 길에 빠진 남편(송강호)을 구하고 가정을 지키는 그리스도인 현모양처의 역할로 주목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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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 김소진 배우
 

대사관 밖의 어려움을 감지한 김명희는 여직원과 직원 부인을 모아 기도회를 연다. 교회도 다니지 않고 심지어 불교 신자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청산유수로 주기도문을 외울 줄도 안다. 기독교 영화가 아닌 일반 상업영화 속에서 기독교인이 보여준 신앙의 모습은 대개 긴박하고 무거운 상황을 잠시 쉬어가게 만드는 코믹한 설정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후에 나타난 대사 부인의 행실은 감동적이며 긍정적인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대사부인 김명희는 저만 살려고 애쓰며 이기적인 존재가 되기 쉬운 전장의 상황에서 부상당한 현지인 운전사를 치료해주고 대사관을 가득 채운 북한 대사관 가족들에게 아낌없이 식사를 대접하는 면모를 보인다. 남북의 위기 속에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을 거부했던 류승완 감독도 이 장면만큼은 뺄 수 없었다. 바로 남북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절인 깻잎을 집기 쉽도록 젓가락으로 잡아주는 장면이다. 이 주인공은 소말리아의 그리스도인 김명희였다. 모가디슈의 남북이 마음을 여는 순간이다.

 

 이것이 실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류승완 감독의 머릿속에는 남북이 위기 속에서 마음을 열고 함께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을 찾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역할은 그리스도인인 대사부인에게로 돌아갔다. 이것은 세상이 생각하고 수용할 수 있는, 혹은 마땅히 그렇다고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상업영화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세상의 생각과 판단을 담고 있다. 영화는 세밀한 작업이며 의미 없는 장면이란 영화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또한 반대로 영화 속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관객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잘 알기 때문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언뜻 나타나는 이미지, 특히 매스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새롭게 하기도 하고 기존의 생각을 강화시켜 나가기도 한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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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모가디슈’의 한국인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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