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홍석진 목사.jpg

 지난 11월 중순 아테네에서 하수도 공사 중 거리 표지석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헤르메스 신의 조각상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언론들은 이를 두고 “땅만 파면 나오네”라는 재미있는 기사 제목을 붙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어디 아테네뿐이겠습니까? 최근 몇 년 동안 로마도 그렇고 성경에도 나오는 데살로니가에서도 지하철 공사 중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서양의 전유물만도 아닙니다. 최근 경주에서 다시 한 번 신라 시대 유물들이 잇달아 발굴되었지요. 불과 몇일 간격으로 ‘쪽샘 L17호’라 불리는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에서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제작되어 신라에 수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허리띠 장식과 마구, 투구, 토기 등이 발견되었고, 황룡사지 서회랑 서편 터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다른 유물들과 함께 금동봉황장식 자물쇠 몇 점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오래 전 경주에서 나타난 기이한 유물이 떠올랐습니다.

 1956년, 경주 불국사를 대대적으로 보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정말 기이한 유물이 출토된 것입니다. 바로 ‘돌십자가’와 ‘마리아’로 보이는 상이었습니다.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인 751년에 건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상이라니, 그렇다면 이는 고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신라와 동시대인 발해의 고토에서는 이미 기독교 유물이 여러 점 발견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발해의 솔빈부 아브리코스 절터에서 십자가가 출토되고, 한때 수도였던 동경 용원부(현 훈춘)에서는 삼존불의 왼쪽 협시보살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는 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26년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인접한 중국 만주지방의 안산(鞍山) 부근에서 요대(遼代) 성종 때(11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로 만든 7점의 십자가가 출토되고,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도를 방불케 하는 암각화도 발견된 바가 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에 유럽에서는 아시아에 프레즈비터 또는 프레스터 존이라 불리는 기독교 주교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로마 교황은 그를 찾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했고, 수년 후에는 프랑스의 루이 9세도 사절단을 파견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의 분파라고도 할 수 있는 ‘네스토리우스파’를 발견했는데, 이 사실은 프레스터 존이 동양 어느 곳에 실재한다는 신념을 굳혀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5세기에 이르러 페드로 코빌람이라는 포르투칼의 탐험가가 홍해에서 그리 멀지 않는 아비시네스(아비시니아, 에디오피아를 말함)에 크리스트교를 믿는 왕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 국왕이야말로 진정한 프레스터 존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그곳을 찾아가 네구스(왕의 칭호)라고 부르는 왕의 궁정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토마스 불린치, The age of fable).

 한편 근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티베트에 부임한 기독교 선교사들은 아시아의 오지에 로마 가톨릭교회와 유사한 주교의 궁정과 그 밖의 여러 사원들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에는 승려와 여승의 수도원이 있었으며, 화려한 종교적 행렬과 의식이 있었으므로, 여러 선교사들은 라마교를 타락한 기독교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기독교로부터 종교적인 제례나 양식들을 수입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복음이 인도를 건너 티베트에, 그리고 중국으로 전파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서유럽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은 네스토리우스교는 동진하여 중국에 도착해서 활발한 포교 활동을 벌였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세계 제일의 제국으로 국제적 문화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네스토리우스교는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경교”로 토착화된 후 상당한 세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동시대 신라에서 발굴된 돌십자가는 바로 이러한 복음 전파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사방으로 땅 끝을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행 8:1). 그 중에는 미지의 동방세계를 향해 떠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했는지 우리는 아주 일부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가운데 그들이 전한 복음은 마침내는 대륙의 끝인 우리나라에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야 말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어둠을 뚫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온 누리에 빛의 자국을 남깁니다. 오래 전 경주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그 빛을 묵묵하게 받아내었던 이들을 생각하며, 어수선한 시대에 다시 한 번 복음의 그 밝은 빛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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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파기만 하면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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