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8-07(금)
 

송시섭 교수.JPG

 의학전문저술가인 존 퀘이조(Jon Queijo)가 쓴「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메디치미디어, 2012)를 읽다보면, 재미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200가지의 콜레라균은 대양성 박테리아(ocean-loving bacteria)의 큰 군집에 속하고 그 군집의 대부분은 무해한데, 단 두 종류의 독특한 유전자 결합이 사람의 장(腸)에 침범하여 나쁜 독소를 생산하고, 인간숙주가 죽을 때까지 세포가 기계적으로 다량의 수분을 배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종의 콜레라균은 주로 강어귀 해수에 사는데 비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2가지 콜레라균은 인간 거주지 근처 오염된 물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놀라운 사실에 대한 해답을 질문형태로 우리 자신에게 던지고 있다. “누가 누구를 오염시키는가?”라고.

 현재 모든 세계를 단숨에 멈추게 하는 강력한 코로나 19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우리 인류가 생태계환경을 망치면서 진행해온 산업화,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끊임없는 세계화로 인해 발생한 기후변화가 불러온 문명의 저주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한편 코로나 위기의 원인을 ‘숲의 파괴’에서 찾는 입장도 있다. 인간이 숲을 없애자 거기에 서식하던 야생동물을 숙주로 삼았던 바이러스가 인간 세계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지구온난화로 빙하에 갇혀있던 질병이 인간세상을 덮쳤다고 까지 이야기한다. 어디까지 과학적인 증거로 입증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콜레라의 유행에서 발견된 인간과 자연간의 묘한 악연(惡緣)이라는 우연의 일치가 코로나에서도 불길하게 겹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단기간에 증명되기 힘든 코로나의 원인에 대하여 인간이 자연을 침범한 결과가 아닐까 하고 바라보는 관점은, 현재 우리가 당한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다소 넓혀주는 것은 사실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은 단지 우리의 미래가 백신의 개발에만 있지 않음을 보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희소식이 백신의 개발뿐이라면 인류의 미래 생존 이야기는 의학이나 약학의 발전과 동일시될 것이다. 하지만 백신개발만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깨닫게 되면, 우린 백신개발이라는 해결을 넘어선 더 높은 차원의 접근법을 만나게 된다.

 정말 ‘화학백신’ 개발이외에 우리가 취할 해결책은 존재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한국 현대사회의 석학으로 불리는 이들이 코로나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살아갈 인류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설파한「코로나 사피엔스」(최재천외 5인 공저, 인플루엔셜, 2020)에서,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홍기빈 소장은 새롭고도 선명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의 이정표에는, 시장근본주의의 극복, 포용적이고 효율적인 민주주의 구축,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방역, 욕망에 대한 질서부여, 인간서식지 무한 확대의 방지, 도시적 공간집약화 해소라는 것들이 제안되는데, 이는 최재천 교수가 ‘생태백신’이라 이름붙인 거시적인 해결방법들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야의 제공은 마치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여성신학자 샐리 맥훼이그(Sallie MacFague)가 제창한 ‘전지구적 안녕’(planetary well-being)을 향한 생태적 공동체 구축을 위한 온 인류의 ‘우주적 회개’와 흡사하다.

 다시 콜레라로 돌아가 보자. 19세기 중반 영국시민들을 끔찍한 죽음을 몰고 온 재앙을 겪어내며, 존 스노우(John Snow)라는 의사는 ‘근대 역학의 아버지’가 되었고, 애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이라는 변호사는 ‘근대 공중위생의 창안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으며, 인류는 ‘공중보건’이라는 혁명을 일궈냈다. 그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코로나라는 새로운 위기를 통하여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의료’가 자리 잡고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는 교회들에서 ‘생태신학’이 꽃피며, 종교와 과학이 환경보전이라는 중간지대에서 함께 손잡는 거룩한 입맞춤이 이어진다면 오래지 않아 우리는 가까운 서점에서「코로나는 어떻게 인류를 구했나」라는 새로운 베스트셀러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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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 교수] 누가 누구를 오염시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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