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8-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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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우리는 연일 매스컴을 통해 '정의연(정의기억연대)'에 대한 보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장 큰 이슈는 '주객의 전도' 와 '도덕적 해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치욕스런 일제강점기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하겠다는 목적에서 정신대와 위안부로 끌려가서 짓밟힌 어르신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겠다고 나선 모임이 바로 이 정의연이 아니던가!

 그런데 거의 절규에 가까운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과 연일 보도되는 의혹들은 이 정의연의 원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들의 절규 속에는, 어느 코미디언의 '그것은 그들을 두 번 죽이는 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본래 출발할 때 가졌던 그 마음들이 변해서는 안 되고, 주된 목적과 목표를 놓치고 엉뚱한 데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게다가 어린 아이들로부터 시작하여 어르신들에게 이르기까지,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의 피땀이 섞인 모금들, 국가의 세금으로 지원받은 것이 어떻게 정확하게 집행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애매한 기록들은 우리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물론 그들이 의도적으로 악한 모습을 행하였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숙함과 소홀함은 도덕적인 해이까지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들을 보면서 그것을 비난하는데 이 글의 방향으로 삼고 싶지 않다. 다만 이런 사회적인 이슈를 보면서,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고, 또 문제점이 있다면 뼈를 깎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세워지도록 해야 한다. 이 문제로 남을 탓하기 전에 필자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고 고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을 마음에 새겨본다.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예배하고, 세상 속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회를 목양하도록 세움받은 자로서, 오직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마음을 다해야 하는 목사로서, 이런저런 감투에 휘둘리는 모습은 주객이 전도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주된 사역이 아닌 것들에 집중하다가, 정말 잘 감당해야 할 사명을 놓치는 부끄러운 목사로 사는 모습에 깊은 한숨과 통회가 이어진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주를 위하여 살겠다고 고백하며 출발하였지만, 이런저런 물질의 노예처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어느 신실한 집사의 입에서 나온 자연스런 한 마디는 슬프게 한다. '목사님은 대접을 받으셔야 하는 분인데, 어떻게 대접을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이 말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만약 영원히 대접을 받아야 하는 분이 있다면 우리 주님이 아니던가? 이미 목사로서 필자는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섬기고 또 섬겼던 주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7:3-4)'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앞에서, 필자는 이미 '타산지석의 교훈' 이 아니라, 이미 그들보다 더 추악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자신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왜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그런 목적은 아니었을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된 것이 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스도인이 어찌 의도적으로 악을 행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서 주와 동행하는 모습이 식어지면, 멀찍이 주를 따르던 베드로가 주를 모른다 저주맹세했듯이, 지금 우리도 주님을 멀찍이 따르는 연유로 우리의 삶도 변질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르신 소명, 그 진실한 소명에 대해 주객이 전도된 모습, 주의 은해에 대해 배은망덕의 도덕적 해이를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깰 수 있을 때 완전히 깨고, 팔 수 있을 때 완전히 파서, 고칠 것을 고치고 새롭게 할 것은 새롭게 해서 바르게 세워야 할 것이다. 주님의 부름에 합당하게 그 목적과 목표를 바로잡고, 입술과 심령에 감사로 채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도록 다시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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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목사] '타산지석(他山之石)' 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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