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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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소물리에 김현호 대표(기쁨의집)가 추천하는 가을 책 모음
    공동의 번영을 위한 아름다움의 비전 컬처 케어 마코토 후지무라 지음/백지윤 역/IVP 기독교의 오랜 사역으로 ‘영혼 돌봄’이 있고, 환경을 돌보는 ‘창조 세계 돌봄’ 운동개념이 곳곳에서 발아되어 꿈틀거리고 있듯, 문화적 창조를 전문으로 부름 받은 이들, 분화적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이해와 화해, 치유를 위해 마코토 후지무라 작가는 문화돌봄(culture care)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갈망한다면 절대로 ‘그렇다’이다.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원천이시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실재는 우리가 교회안에서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모든 모든 인간의 창조성안에 이미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도 말한다. 교회가 어두운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저 주일신앙을 지키면서 마치 그리스도께서 일주일의 나머지 시간에는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수는 없다. 우리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께 숨기고 싶은 영역에서도 은혜의 임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음악가, 화가, 건축가들은 ‘아름다움’이라는 ‘쓸모없음’이 뜻밖에도 실용성을 강조하는 우리의 삶을 살아 있게 만드는 생명력임을 알 것이다. 회의와 도발, 전위의 현대 미술 한복판에서, 마코토 후지무라는 화가로서 아름다움의 순수성을 선명하게 증명하고자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문화가 생성적 현장이 되도록 ‘돌보아야’ 하는 청지기적 소명을 인식하고, ‘돌봄’을 위한 실천적 대안을 망설임 없이 제안한다. 신앙과 작업, 예술의 현장에서 ‘영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책은 생각을 자극하는 기댈 언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의 예술이 교회로부터 ‘아름다움’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때에, 한 그리스도인 예술가가 던진 ‘예술’과 ‘아름다움’이라는 주제가 참으로 반갑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라는 말씀을 폭력적으로만 해석하여 모든 사물을 정복하고 착취해 온 역사에, 새로운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다스리라’로 번역된 히브리 동사 ‘라다’에는 ‘돌보다’라는 목자적 의미가 있다. 이 다스림은 착취나 정복이 아니라 샬롬의 세계를 향한 돌봄(Care)인 것이다. 문화를 돌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이제 문화는 경쟁과 전쟁이 아니라 공동체의 영혼을 가꾸는 즐거운 정원으로 바뀐다. 우리는 이 책에서 에밀리 디킨슨과 빈센트 반 고흐가 예시하는 주변부와 소수자 문화의 중요성을 만나기도 한다. 꽃으로 시작하여 꽃으로 마무리하는 20개의 이야기, 상처 많은 이 시대에 삶의 균열을 돌보고 치료해 줄 아름답고 친절한 책이다. 기독교가 걸어온 길 앞으로 걸어갈 길 세계화 시대의 그리스도교 배덕만 지음/홍성사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우한에서 시작되어 두 달이 되기 전에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가듯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는 거대하고 극적인 변화를 일으켜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전파된 복음 은 20세기를 거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왔고 이제는 탈 서양화시대를 맞고 있다. 이 책에서 배덕만 교수는 20세기에 기독교는 어떤 모습으로 부흥과 변화를 경험해왔는지를 한국 역사신학자의 눈으로 평가하고 그 특징들을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라도 알기 쉽게 정리하였다. 18세기 계몽주의를 거치고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의 팽창과 정치적 이념의 급속한 생성기간에 기독교에도 엄청난 영향이 미쳤고 제국주의 확산이 선교의 부흥을 가져왔지만 명암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 20세기의 기독교역사를 통해 금세기 기독교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을 역설한다. 근대 선교는 미국의 주도하에 제3세계를 중심으로 역동적으로 확장되어 마침내 세계종교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고, 이런 변화는 오순절운동을 중심으로 한 성령운동과 복음주의 선교사들의 헌신적 사역, 운송 및 통신시설의 발달과 확장,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과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고 진단한다. 유럽 교회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는 19세기 선교활동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토대로, ‘하나님 선교’라는 새로운 선교 개념을 도입했다. 또한 현재 오순절운동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역동적으로 성장, 변모하는 그리스도교운동이 되었는데 선교통계학자 데이비드 바렛과 토드 존슨에 따르면, 1970년 오순절 신자들은 6,700만 명이었으나 2010년 6억 1,400만 명으로 증가했고, 2025년에는 8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중심축이 유럽에서 제3세계로 이동하면서 오순절운동의 중심무대도 같은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20세기 특징 중 하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끝없는 반전과 변화의 기록이다. 자유주의 등장과 19세기에 출현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하에 반교회주의, 반성직주의 운동이 거세지면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가톨릭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한 내적 변화와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그동안 서방 중심의 다른 그리스도교들로부터 분리된 채 고립되어 왔던 동방 정교회가 세계교회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환경에 편입되어온 과정도 잘 설명해준다. 아울러 현대에 선을 넘는 종교적 실험들이 다양한 형태의 분파주의 형태로 발흥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이런 현상에 대한 평가와 전망도 아우르고 있다. 배덕만 교수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전임연구원이며 백향나무교회 담임목사이다. 우리는 ‘오늘’로 부름받았다! 오늘을 사는 이유 카르페 디엠, 시간의 의미를 기억하라 오스 기니스 지음/IVP 카르페 디엠, ‘오늘 여기서 행복하기를 바란다’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사용한 문장이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을 최소한만 믿고’ 한번뿐인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루를 충실히 살려고 노력한다. 우리 삶은 연속적인듯 하지만 근시안적이라서 과거를 잊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지도 못하고, 아울러 현재 자신들이 부여 받은 소명을 단단히 붙잡지도 못한다.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 참여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그분의 나라에 충성하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이 땅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다. 유일한, 의미심장한, 특별한 그것이 나에게 언약적 시간이 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인생은 짧지만,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인생을 최대한 선용하고, 하루하루를 붙잡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가 시간과 역사를 바라보는 성경의 관점을 따른다면, 인생은 의미를 제공하고 그 의미심장함이 인생의 짧음을 훨씬 능가하는 미래를 열어 준다. 시간은 순환적인 것 이상이고, 그 직선적 진행이 구성하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중요하고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가 가장원하지만 가장 엉성하게 쓰는 것이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거류 외국인”이다. 망명자라는 인식을 늘 품고 우리의 궁극적 본향을 갈망하는 마음은 세속화에 대한 면역력의 중요한 부분이고, 앞으로 전진하는 소망과 함께 그리스도인다운 독특성과 신실함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책은 오늘하루를 생생하게 누리며 시간의 순례자로 걸어가는 희망찬 여정으로 독자들을 안내해 준다.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공동체에서 길을 찾다!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 천종호 지음/두란노 법이 정의가 되고 정의가 사랑이 되는 공동체를 꿈꾸는 호통판사 천종호. 우리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잘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기를 내어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성품이 사회구성원들에게 뿌리 내리는 것이 중요다. 오랫동안 소년범들을 재판해온 저자는 소년범을 설득하고 갱생할 수 있도록 새로운 대안을 실천해온 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약자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한다는 것은 인간을 그의 능력과 역량에 관계없이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대우의 방식은 바로 존중과 배려다. 존중이란 인간을 그 능력이나 역량에 관계없이 그 존엄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배려란 인간마다 능력과 역량에서 차이를 보이므로 능력과 역량의 부족이나 결여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배려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 실현에 부족함이 없게 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신뢰와 정직이라는 정의는 우리사회의 자본이라고 말한다. 판사초임시절 부부관계인 A가 B를 고소했고 이유는 B가 C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위자료 청구를 했다는 것. 천 판사는 그들을 각각 소환하여 신문한 뒤 부정행위의 증거가 없다고 다독였다. 그날 귀가하는 늦은 밤 전철역 근처에서 두 사람이 팔짱을 끽고 걸어 가더라나...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나 신뢰와 정직지수를 높여 주는 것이 판사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성품(덕)으로서의 정의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실현할 수 있는 내면의 성품 상태라고 할 것이다. 존중과 배려를 기반으로 하는 정의는 자기희생과 용서를 통해 완성되는 사랑의 출발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의의 공동체’에 발을 붙이고,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생활방식은 어떠했을까? 회복력 있는 신앙 제럴드 L.싯처 지음/성서유니온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신앙이 가능할까? 코로나 이후에 과연 지금까지의 역동적인 교회모습이 가능할까? 신자들이 복음의 능력을 발휘해서 코로나 뒷수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와 민족에게 희망과 대안을 갖고 제대로 섬기는 모습을 보일 것인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스태디셀러 반열에 오른 책 ‘하나님의 뜻’을 쓴 제랄드 싯처 교수의 최근작이다. 영성 작가인 동시에 탁월한 역사학자로서 저자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고립(유대교)과 순응(로마 종교)이라는 양극단에서 ‘제3의 길’을 택하여, 로마제국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 우주를 총괄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구현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것, 그러나 주후 313년 이전 로마 시대의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은 다시 기독교가 세상의 주류 문화와 정신으로부터 이격되어 버린 탈기독교 시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새 한국사회에서 기독교는 기득권 종교가 되었고 큰소리치고 영향을 극대화하려고 몸부림치는 기득권 종교가 되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서구교회들을 연구하여 다시금 회복 있는 신앙을 요청하지만 정작 한국교회가 초대교회가 보여 준 이 역설의 원리를 다시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그리스도인과 로마인의 대조가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키프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돌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편 사람들만 필요한 사랑의 관심을 받는다면 놀라울 게 없다. 선으로 악을 갚고 신과 같은 관용을 베풀며 원수를 사랑하는 것처럼, 세리나 이교도보다는 낫게 행동할 때에야 비로소 사람은 완벽해질 수 있다”라고 선언했다. 이 책에 나오는 초기 기독교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신앙이 우리와 세상과 극명한 실천적 차이를 통해 진짜 제자들의 모습을 증명하는 신앙이 필요하다. 마을목회를 통해 세상을 살리는 교회 마을을일구는 농촌교회들 강기원 외 28인 공저/동연 우리나라의 농촌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것 중에 하나는 동네마다 마을을 품고 있는 듯한 교회모습이다. 어린 시절 농촌을 경험한 사람들은 시골교회와 애틋한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농촌교회들이 텅 비어가고 노인들만 교회를 지켜가고 있는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이 교회들을 지켜나가는 헌신된 목회자들이 있다. 이들은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만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마을을 품어내는 목회를 지향한다. 이들은 마을을 교회로, 주민을 교우들로 여긴다. 마을과 교회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들교회의 섬김의 사역을 통해 마을이 되살아나는 현장에는 새로운 희망의 싹들이 뜨고 이미 열매가 무성하기도 하다. 이 책속에는 마을목회의 사례 스물여덟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각 마을의 형편에 맞는 다양한 목회는 생명농업, 문화지킴이, 노인복지, 역사와 전통을 지켜가는 부분까지 다양하다. 대 자본들이 마을을 잠식하는 것을 막아내고 마을 도서관, 고통받는 이웃들을 부둥켜 앉는 자리까지 함께 한다. 그야말로 마을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복원하고, 복지를 세워가는 현장에 목회사역이 빛나고 있다. 마을목회이야기를 통해 농촌목회현장에서 기도하며 씨름하는 목회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만나 보자. 사랑의 모조품들을 버리고 사고를 회복하는 참 모델 생각,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CUP 우리가 믿는 복음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뿐 아니라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회복하는 과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린 사람은 자신이 쓸모없다는 느낌, 낮은 자존감, 막연한 죄책감, 원한과 적개심, 의존 상태등 이런 부정적 생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쉼을 누릴 수 있다. 제닝스 박사는 레지던트 2차년도에 만난 그녀 때문에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아주 슬프고 외로워 보였고 얼굴이 시름에 겨워 초췌했던 47세의 그녀는 자살방지를 위해 정신과 직원이 배치된 병동에 갇혀 지냈는데 보수적 기독교가정에서 자라오면서 성폭행과 강요된 회개를 종용받으며 불안과 욱하는 성질과 분노로 고통하고 있었다. 더 괴로운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그녀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힘들어 했었다고 한다. 내가 학대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이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며 정신과 교수에게 보고하곤 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이 교수는 이 사례는 정신과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는 것, 원목을 만나게 해주어도 회복되지 않는 그녀를 돕고 싶어 답을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고 이 책은 그 연구의 산물이다. 이 책의 집필과정에 다양한 예화들이 등장하는데 모두 실화이다. 이름과 상황을 약간 섞거나 바꾸었을 뿐 실제 치료한 환자들의 사례를 담았기에 신뢰할 만하며, 성경과 정신의학과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의 치열한 연구로 일구어진 열정의 열매다.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도 설계하셨다고 믿는다. 이미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과 <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로 널리 알려진 저자의 명저를 통해 사고와 뇌와 마음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새롭게 만나는 성경속 여성들의 히스토리 교회 밖 인문학 수업 구미정 지음/옥당 우리 사회는 센 언니들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나라를 빛내고 사회를 당당히 이끌어 오는 여성들의 파워는 요즘 정치계에서도 돋보인다. 그러나 아직 기독교계에서는 발아에서 성장까지 긴 여정의 과정속에 머물고 있다. 이 책은 고대 성경속에 담긴 여성들의 흔적을 찾아 책속에서 끄집어내어 화려하게 부활시킨 구미정 선생의 역작이다. 신화에서 역사 속으로 걸어 나온 여인들, 대개의 역사 기술이 그렇듯, 성경 역시 남성 중심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여성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 묻혀 있다. 이 때문에 성경 속 여성들은 감춰지고, 왜곡되고, 사라졌다. 저자는 가부장제 사회 문화 아래의 편파적인 역사 속에 감춰지고 왜곡되고 사라진 여성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현대의 시선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성경 속 여성들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다. 억압적인 현실 앞에서 때론 복종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고 불의에 침묵하지도 않았다. 거리에서 몸을 파는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살려준 라합, 모압 출신의 가난한 이주노동자였으나 다윗의 조상이 된 룻, 가나안에서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사사 드보라, 한낱 고아 소녀에 불과했으나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가 되어 자기 민족을 구했던 에스더 등이 그들이다. 전통 신학에서는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담의 종속물 내지는 아담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더하여 어리석음으로 선악과 사건을 일으켜 원죄를 짓게 한 지탄의 대상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이브는 오랜 동안 아담에게 예속된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존재, 다음에는 아담을 꼬여낸 죄인의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이브는 정말 순종적이고 겸손한 부창부수(夫唱婦隨),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기원일까? 그리고 이브는 정말 아담을 꼬여낸 죄인일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바탕한 남성 중심의 신학에서, 아담의 갈비뼈는 오랫동안 여성을 아담에게 봉사하도록 지어진 부수적인 존재로 해석하게 만든 근원 재료였다. 그러나 저자는 갈비뼈를 주었다는 것만으로 곧 아담이 이브 생명의 기원은 아니며, 따라서 그의 종속물이어야 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브 역시 하나님의 신비로 지어졌고, 갈비뼈는 오히려 아담과 이브 간의 연대성과 동등성을 의미하는 재료로 볼 수 있다고 새롭게 해석한다. 이 책속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으면서도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던, 평범한 할머니, 어머니, 아주머니, 언니들, 다시 말해 ‘우리’의 이야기이며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책읽기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친절한 안내서 서양 고전 읽기 특강 안정진 지음/좋은씨앗 현대인들은 ‘사색’은 하지 않고 ‘검색’하는 인종들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젠 생각하는 것까지도 컴퓨터에 맡기고 있다. 사고력 결핍은 고스란히 공동체의 질을 저하시키는 심각한 원인이 된다. 효율성이나 유용성이나 실용성만 강조하는 세상은 깊은 대화를 상실하고 비인간화를 가속시킬 뿐이며 이런 미래는 상상하기도 싫어진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문학 읽기가 살아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인문학은의 핵심은 고전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시대에 필요한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문제들의 상당수는 과거의 역사속에서 배울 지혜를 전수받지 못할 결과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학교나 기독모임들에서 인문학의 부흥을 기대한다.` 이 책은 그동안 기독대안학교와 홈 스쿨 코업 등에서 어린이들과 청소년에게 서양의 인문 고전을 가르쳐 왔던 저자가 서양고전을 기독교세계관으로 읽어내고자 시도한 책이다. 길가메쉬 서사시, 함무라비 법전, 오뒷세이아등 고대 문서들과 맥베스, 신곡, 반지의 제왕, C.S.루이스의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비교적 근대 작품까지 14편을 다룬다. 이미 청소년 공부방에서 나눠 본 경험 속에서 태어난 이 글들은 훌륭한 과거의 유산을 통해 광대한 숲에서 불어오는 진녹색의 공기를 마시도록 가슴을 열어준다. 실용서에 밀려 서양인문고전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이 책의 안내를 받으며 서툴고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독서를 시작할 수 있다. 독서는 해석하는 능력을 통해 깊어지는 것. 새해엔 고전읽기를 시작해보자. 불혹의 나이를 지나는 아담과 하와를 위로 하는 시 너를 보듬고 나를 보듬고 서성환 지음/홍림 제주 시인 서성환 목사가 시집 한권을 들고 세상살이 흔들리는 현장으로 찾아왔다. 치열한 사회와 교회 안에서 중추적인 책임이 지워졌으나 어디서도 변변한 위로나 격려를 받지 못한 채 그저 버텨내는 중년 남자들, 나이 들어가면서 껍데기만 남고 헛헛한 허깨비 아담들에게 시인은 수퍼맨의 비애를 위무하고 호주머니도 없었던 그분을 따라 자유를 만끽하자고 한다. 아울러 같은 상처, 같은 외로움에 놓인 이 시대 불혹과 지천명의 하와들에게 상상사랑에 설레이기 보다 조금씩 행복에 익숙해지자고 낮은 목소리로 위무한다. 승패가 불분명한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아릿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문득, 항상 거기 있어 말을 거는 산처럼 어느새 나의 마음 만져 다독이시는 그분의 손을 건네준다. 온갖 요구서만 가득한 중년에 뜻을 이루긴 고사하고 상처와 외로움을 공감해 주는 목자가 있다니 참 다행이다. “오로지 하나 뿐인 단 한 번뿐인/너도 너를 보듬고/나도 나를 보듬고/마침내 서로를 모두 보듬는/흥그러운 아름다운 세상으로...” 서상환 목사를 만나면 그 특유한 낮고 느린 어투 속에 시어를 함유한 마법의 언어들에 빨려들어 간다. 손안에 가득한 열쇠꾸러미는 있지만 앞만 보고 여기가지 달려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 진다면, 나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지만 진짜 하와이고 싶은 때가 지금이라면 시인을 만나보시라. 나는 믿고 있다. 시가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것을 현재 제주시에서 ‘사랑하는교회’를 담임하는 시인은 그동안 두 권의 시집과 유럽선교사로 파송되었을 시기에 유럽영성공동체를 탐방하며 쓴 탐방기‘사랑이 피워낸 꽃’과 CCM가수인 강명식의 앨범에 수록된 ‘승리’등 여러 곡의 작시가 있다. 신앙언어, 바르게 사용함으로 교양을 높이자 의미는 알고나 사용합시다 최성수 지음/예영커뮤니케이션 언어는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생각과 행동의 패턴이 달라지기도 한다. SNS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잘못된 언어 사용으로 인해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하고 평판에 치명적인 오점이 되기도 한다. 공동체마다 통용되는 특별한 언어가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교인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를 ‘신앙 언어’로 규정했다. 하지만 신앙언어가 지닌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습관에 기대 사용하는 이들이 많다. 본래 뜻과 다르게 사용할 때도 있다. 바른 신앙언어는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첩경이다. 이 책에는 본질에 충실한 언어선택을 위해 60개의 신앙언어를 표본으로 삼아 바른 언어사용으로 안내한다. 흔히 교회 안에서 표어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나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저자는 태클을 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현실로 나타나는 곳이다. 사람의 힘으로 확장할 수도 없고 또 세울 수도 없다. 혹여 하나님 나라를 빌미로 인간의 나라를 공고히 하려는 욕망은 아닐까? 교회 구성과 운영에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키려는 숨은 의도는 없을까? 제국주의적인 신앙관이 우리 신앙에 침투한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관용적인 표현이라고만 여길 수 없다. 신학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많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욕망을 드러내는 언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을 주문한다. ‘예배는 드리는 걸까, 하는 걸까’같은 질문이 줄을 잇는다. ‘예배를 디자인하고 기획한다’는 언어에도 제동을 걸었다. “디자인하다 혹은 기획한다는 말을 (예배에) 사용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행위 안에 (예배를)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당일까, 성전일까’란 질문에 대한 해답도 이렇다. “만일 교회당을 성전이라 말하고 믿는다면 이는 오해에서 비롯한 결과다. 교회당과 성전을 동일시하면 교회당에서의 일만 거룩하고 그 밖에서의 일은 세속적이라 간주하게 된다. 또 목회자의 권위가 부당하게 커진다”고 우려를 했다. 하나님도 근심하는가? 왜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가? 인공지능 혹은 초지능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가?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예수님의 어머니인가? 등등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공부해봄직한 주제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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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6
  • [영화] 세상은 목회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돈과 신앙 사이에서의 갈등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강동헌 감독의 <기도하는 남자>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금전적 어려움과 이에 따른 파격적인 상상과 행동을 보여주는 바람에 화제를 모은 영화다. 금년 2월에는 극장 개봉에 성공했지만 1,661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친 것은 당초 기대에 어긋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한국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노출되었던 까닭에 적은 관객이 본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다만 6월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재조명 받으며 개척교회 목회자의 현실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은 그나마 의미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기독교 영화로서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든지 아니면 일반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대중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영화 같으면서도 뭔가 아닌 것 같고, 일반 영화라 하기에는 교회를 배경으로 목회자의 신앙관이 영화의 줄기를 형성하는 까닭에 기독교인이 봐야 하는 영화처럼 느껴져서 교회와 세상 가운데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아리송하기만 한 까닭이다. 기독교 영화라면 어떤 갈등 속에서도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의 가치관이 드러나야 하지만 이 영화는 갈수록 우리가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신앙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가는 바람에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적 관점을 제기하여 회개와 회복을 촉구했던 신연식 감독의 <로마서 8:37>과 같은 부류의 영화에 속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기도하는 남자>는 장모의 수술비를 마련하려는 목적이지만 돈에 집착한 개척교회 목회자가 일으킨 파국과 왜곡된 욕망을 그린 일반 영화로 볼 수 밖에 없다. 즉 이 영화는 목사 대신 다른 어떤 종류의 직업에 속한 사람을 대입해도 비숫한 그림이 나올 수 있는 영화란 사실이다. 태욱(박혁권)은 주일 예배 출석 성도가 5명에 불과한 개척교회 목사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을 기도로 감당하며 하루 하루 견뎌내지만 밀린 월세에다 장모(남기애)의 간이식 수술비용이 당장 필요한 현실은 그를 대리운전 기사로 내몰았다. 5천만 원에 이르는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밤새 대리운전을 하고 교회에 와서 잠깐 눈을 붙이는 생활을 반복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 정인(류현경) 또한 어떻게든 자신의 간을 어머니께 이식하는 수술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지만 5천만 원은 고사하고 당장 2백만 원이 드는 검사비가 부담스러운 현실이다. 여기까지는 드라마의 전개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독교 영화 쪽으로 방향을 돌려 개척교회 목회자가 겪을 수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의 현실을 조망하고 신앙과의 갈등을 묘사하며 이것이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목회철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방향으로 설정된다면 훌륭한 기독교 영화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와 목회에 대한 이해의 부족 강동헌 감독은 두 가지의 치명적인 부족함을 안고 있다. 하나는 기독교 신앙 및 교회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없는 점이다. 그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어릴 때 여름성경학교에 몇 번 가본 게 교회 경험의 전부임을 밝혔고, 다만 영화감독의 삶이 개척교회 목사의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대형교회가 아닌 개척교회 목회자와 영화감독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만을 갖고 돈에 대한 유혹과 갈등을 다루었던 셈이다. 그래도 영화에 나타난 개척교회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신앙의 정황에 대한 이해는 신학대학 출신의 제작부장의 도움을 받았음을 언급했다. 이것은 개척교회 목회자라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돈과 신앙 사이의 갈등을 목회에 대한 소명 가운데서 깊이 다루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한 가지의 부족함은 처음 장편영화를 제작하는 데서 오는 창작에 대한 부담감이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의 가치를 비켜가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처음 극장용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관객들이 많이 찾는 영화를 만들어서 대중성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한편으로 영화의 메시지나 완결성에서 비평가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에 작품에 대한 욕심을 내게 마련이다. 이때 초보 감독이 저지르는 실수는 여기저기 여러 영화의 인상 깊은 장면이나 이야기를 가져다 뒤섞는 일이다. <기도하는 남자>의 전반부는 이미 전윤수 감독의 <베사메무초>(2001)에서 본듯한 장면들이 전개되었다.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을 날리게 될 처지가 된 남편(전광열)은 개인 투자자의 아내로부터 성적 유혹을 받는 한편, 1억을 빌리는 조건으로 아내(이미숙)는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대학 선배로부터 잠자리를 요구받았었다. 아이들이 줄줄이 있는 가정에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가정의 부부라면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음이 분명하다. <기도하는 남자>의 감독은 5천만 원을 구하기 위해 성적 유혹을 받는 대상을 목사의 아내로 설정한 대신 목사는 유혹을 넘어 범죄를 도모하는 악인의 캐릭터로 자신만의 영화적 독창성을 구현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돈 때문에 성직자가 얼마나 야비하고 비인간적인 범죄자로 변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돈과 성에 사로잡힌 목회자의 정체성 <기도하는 남자>의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태욱이 대리운전을 하다 술 취한 커플을 태우게 되는데 그들이 다름 아닌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신학교 후배와 그의 내연녀였던 것. 아버지로부터 대형교회를 물려받은 후배 목사 동현은 태욱을 알아보고 애들 과자라도 사주라며 돈을 더 얹어주지만 손과 달리 입은 신학교 때 잘나가고 존경스러웠던 선배가 겨우 개척교회나 하면서 대리운전이나 하고 있느냐는 모멸감 섞인 말을 내뱉는 바람에 태욱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불륜의 현장을 들킨 동현은 거액의 현금을 제안하고 태욱은 상한 자존감과 장모의 수술비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멋을 부린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태욱은 캠코더로 동현의 불륜현장을 담아 장모 수술비에 필요한 5천만 원과 맞바꾸려다 동현이 고용한 일당들에게 납치되어 얻어맞고는 속옷 차림으로 인적이 드문 길에 버려진다. 태욱은 나중에 동현에게 자신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되돌려주는 한편으로 지금까지 문제의 발단이 된 장모를 청부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실행 직전까지 가게 된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줄거리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를 스포일러( spoiler)라 한다. 스포일러는 무단 복제 만큼이나 영화의 세계에서는 금지된 사항이다. 영화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려서 관람을 회피하게 만드는 까닭에 예비관객이나 제작자에게 손해를 입힐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스포일러는 오히려 한국의 기독교인과 목회자들에게 어떤 영화인지를 보고 싶게 만드는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개척교회 목사로서 숨기고 살았던 감정을 토해내는 한편으로 못마땅한 일이 많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도 못한 채 억지 웃음을 지으며 살았던 평소 볼 수 없었던 목회자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목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 기독교 영화도 아니고 작품성 높은 세상 영화도 아닌데 굳이 <기도하는 남자>에 대한 글을 지면에 실은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영화 속의 목회자들의 이미지는 세상이 기독교 성직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사회의 믿음을 져버리고 방역을 소홀히 여기다 확진자를 배출시킨 몇몇 교회와 목회자의 모습이 영화 중간중간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바탕을 둔 상상력이며, 영화적 상상력은 개연성, 즉 그럴듯하다고 여겨질 때 관객의 이해를 기대할 수 있다. 즉 <기도하는 남자>에 등장한 두 목회자의 이미지는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이라는 바탕 위에서 창작된 인물이다. 이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목사는 부자교회의 목사와 가난한 교회의 목사로 양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교회 목사는 아버지를 잘 만난 덕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지만, 가난한 교회의 목사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남의 차를 운전하는 대리기사를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라 생각한다. 마치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큰 결점인 양극화 현상을 교회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는 큰 교회 목사와 작은 교회 목사 모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점이다. 대형교회 목사 동현은 성적으로 타락했고 개척교회 목사 태욱은 돈 때문에 범죄 저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동현은 선배 목사인 태욱에게 “나는 형을 동경했다”며 타락한 자신과 달리 이상적인 성직자가 한 사람쯤은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속 목회자는 세상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잘못된 목회자를 등장시킨 영화는 극장 밖을 나오면 잊어버릴 수나 있지만, 코로나 19의 전염지가 되어버린 교회와 세상의 걱정거리로 남은 목회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어쩌란 말인가! 한국교회는 과거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말하며 전도하는 일이 앞으로 가능하기나 할까? 영화를 보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멸망을 앞에 둔 ‘소돔과 고모라’와 같다는 생각을 한 건 지나친 비약일까? 성경이 말하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유는 의인 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창18:32).
    • 문화
    • 영화
    2020-09-15
  • 박경철 집사 출간
    ‘말씀묵상(QT)’은 읽기, 관찰과 해석, 묵상, 적용, 기록, 나눔으로 구분한다. 성경을 읽으며 본문을 관찰하고 이를 해석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깊이 있는 묵상의 자리로 나아간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부족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아가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돕기 위해 박경철 장립집사(사직동교회)는 신간 <말씀묵상(QT/관찰) 성경읽기>를 출간했다. <말씀묵상(QT/관찰) 성경읽기>(푸른별출판사)는 전체의 줄거리와 성경 흐름(관찰)을 연대별로 대제목 소제목별로 분류, QT를 할 때 앞 본문과 뒷 본문을 연결하고, 성경을 읽을 때는 줄거리를 먼저 읽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박경철 집사는 “믿음의 성도들과 큐티 이론과 나눔을 함께 하며 개인적으로 말씀을 관찰하고 묵상했다. 이 과정은 나 스스로의 부족을 끝없이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면서 “이 책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삶과 성경 읽기를 하시는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소원한다”고 말했다.
    • 문화
    • 도서
    2020-08-18
  • [영화] 영화 ‘반도’와 좀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한국영화계를 살리는 좀비 연상호 감독의 영화 <반도>가 개봉 일주일 만에 2백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코로나19가 전국을 휩쓴 이후로 2백만 명의 스코어를 기록한 영화는 <반도>가 처음이다. 평소 같았다면 여름방학용 특수를 노린 블록버스터 영화 정도로 여겨졌을 법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한국영화계가 심각한 침체 상태를 겪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라 극장가는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은 듯 영화산업의 회생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20년 상반기 전체 관객 수가 지난해 대비 무려 70.3%나 감소한 데다 그나마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기 전 영화들이 거둔 성적이 대부분이라서 <반도>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두 가지 면에서 한국의 극장가는 <반도>를 주목하고 있다. 첫째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극장 내에서의 전염에 대한 관객의 두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는가에 일차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의 예방책으로 ‘밀집, 밀접, 밀폐’ 등 ‘3밀’ 환경을 피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는 상황에서 일반 영화관들은 바로 ‘3밀’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극장을 매개로 한 집단감염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지 않지만 블록버스터 영화에 관객이 몰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도>는 앞으로 코로나 시대에도 천만 관객 동원이 가능한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스트리밍 서비스(OTT)로 몰려간 관객의 입맛을 극장으로 되돌릴 수 있는지 여부가 <반도>에 달려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만 갇혀 있던 영화 관객들을 위로한 것은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이었다.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토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왓챠만 하더라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용 온라인 상영관을 개설하여 9천여 건의 유료결제 티켓을 판매함으로써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관을 찾지 못한 영화제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국제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관객들이 과연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극장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 여부가 <반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좀비와 액션의 결합체, ‘반도’ <반도>는 연상호 감독이 만든 <부산행>(2016)과 <서울역>(2016)에 이어 좀비를 소재로 삼은 세 번째 영화다. <부산행>이 1157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형 좀비라 일컬어지는 K-좀비를 탄생시킨 중심에 서 있다면, <서울역>은 애니메이션으로 <부산행>에 앞선 시점을 보여주는 프리퀄(Prequel)이 되고, <반도>는 <부산행>의 4년 뒤 모습을 보여주는 속편으로 시퀄(sequel)이 되는 셈이다. <반도>는 좀비의 세상으로 변한 서울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과 욕망을 담았다. 한반도가 좀비로 뒤덮이는 것을 피해서 홍콩으로 도피했던 정석(강동원)은 일행과 함께 달러가 잔뜩 들어있는 트럭을 회수하기 위해 서울에 잠입하게 된다. 그러나 정석 일행은 조직화 된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는 631부대를 이끄는 서 대위(구교환)와 황중사(김민재) 일행과 부딪히게 되면서 좀비와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집단 양쪽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마침 두 딸의 어머니이자 좀비는 물론 야만적 생존자들과도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여전사 민정(이정현)의 가족들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반도>는 인간과 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다룬 종말적 세상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 좀비를 내세워 이목을 집중시켰던 <부산행>과는 달리 <반도>는 강동원을 내세워 액션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점도 다르다. <반도>를 보며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다룬 이전 영화들인 <매드맥스-분노의 도로>(2015)나 <일라이>(2010)를 비롯한 많은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리우드가 만들어 낸 미래의 종말적 이미지로 부터 벗어나 독창적인 상상을 하기 보다는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안전한 장르의 특성에 기대는 모습이다. 이미 K-좀비를 통해 한국형 좀비영화의 특징을 세상에 보여준 만큼 이번에는 세계화를 겨냥하여 사람들이 예측 가능한 종말적 세상의 모습들을 그림으로써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세계인들을 이해시키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반도>가 개봉 전에 이미 185개국에 선판매되었고 개봉 당일 대만과 싱가폴, 베트남 등 아시아 주요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좀비가 등장하는 액션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반영한 까닭이다. 코로나 시대와 닮은 좀비 영화 <반도>는 코로나19로 인해 웃을 수 있는 영화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좀비는 비슷한 면이 적지 않은 까닭에 관객의 현실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는 좀비의 집단적 공격성과 빠르게 전파되는 특성은 코로나19의 전염력을 닮아 공포감을 현실화 시킨다. 한 두 명의 좀비가 아니라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7월의 경우 신규 확진자가 하루 23만 명을 넘는 등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영화나 좀비가 처음 물어뜯은 대상은 가족과 이웃들이다. 늘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은 가슴 아픈 일인 동시에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시킨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경로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위기의 상황에서 위로와 힘이 되어줄 존재가 언제든 가장 무서운 존재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종말적 상황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둘째는 코로나19에 희생당하는 사람들과 권력자들의 면모는 좀비 영화에서처럼 극단적 대비를 이룬다. 넷플렉스를 통해 K-좀비 신드롬을 불러일킨 영화 <킹덤>시리즈에서 좀비가 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인육을 먹다가 역병에 걸린 사람 가난한 양민들이다. 이들을 돌보고 이끌어야 할 권력자들은 도망을 가거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양민들을 사지로 내몰아 버린다. <킹덤>을 쓴 김은희 작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굶주림에 사체를 먹기 시작한 백성들을 이야기 전면에 세워 권력층의 부조리를 넘어 계급적 폐해를 그리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셋째는 좀비는 퇴치되지 못한 채 함께 생존해야 하는 코로나19의 현실과 닯았다. 코로나19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은 좀비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절망적인 모습으로 끝을 맺는 좀비 영화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좀비 영화도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일은 없다. <반도>의 사람들은 좀비와 싸우거나 좀비를 피해 달아날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좀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좀비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를 형상화한 이미지란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현실 세계에서 좀비는 존재하지 않지만, 좀비같이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잔혹한 자본의 논리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좀비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이며, 돈에 눈이 먼 인간은 다른 인간들을 물어뜯고 자신처럼 돈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한국 최초의 좀비 관련 석사학위 논문인 이희수의 ‘현대사회의 초상으로서의 좀비’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집착하고 돈을 끊임없이 소비함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란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뜯어 먹고,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 좀비에 비유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인 탐욕이 무서운 것은 영화 속 좀비처럼 그들의 속성을 지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는 점에 있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똑 같은 좀비가 되어 인육을 찾아 나선다. 전파와 감염이 주는 공포는 좀비가 은유하는 인간 탐욕의 결과가 결국에는 인간 세상을 파괴할 수 있다는 종말에 대한 이해로 발전시키고 있다. 좀비로 가득찬 세상을 향해 성경 말씀을 들려주는 일은 또 다른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좀비가 상징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탐욕과 소비 그리고 그 속에서 불안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는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이 죄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으며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불안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음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종말적 상황을 다룬 영화 <일라이>(2010)에서처럼 성경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문명개화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먼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탐욕스런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자족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때 좀비 같은 행태로부터 멀어지는 비결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자족이란 개인의 만족만을 의미하는 것이 하니라 내 인생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탁하는데서 오는 영적 위로를 동반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평안에 거하는 삶은 좀비가 판치는 세상으로부터 불안감을 불식시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영화 속에서 좀비는 어둠에 거하다가 빛과 소리에 공격적 반응을 보이며 언제 어디서든 부지불식간에 나타난다. 진리의 빛과 복음의 소리가 들리면 사정없이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무신론이 팽배한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일은 두려울 수 밖 없는 인생인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릴 때 나타나는 현상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 좀비로부터 도망다니거나 아니면 좀비가 될 수밖에 없는 영화 같은 세상에서의 참 평안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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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기독교인문학] 이웃을 거부하는 제국의 신들인가?
    월터 브루그만의 《하나님, 이웃, 제국》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동선 창조 교양 있는 그리스도인의 서재에 한 권쯤 꽂혀 있을 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기독교명저 100선에 오른 《예언자적 상상력》의 저자 월터 브루그만의 풀러신학교 초청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평생 성경본문을 붙들고 씨름한 저명한 노 성서학자이자 설교가인 저자의 신학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무한경쟁의 소비사회에서 번영신학에 물든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고대 중동사막의 먼지바람 속에서 외치는 예언자들의 거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예언자적 상상력에서 시적 상상력과 애통의 파토스로, 무감각한 이 세대에 희망을 선포한 그는, 이 책에서 신실한 하나님과 관계맺음으로 구약을 관통하는 정의, 은혜, 율법이 어떻게 하나 되는지를 보여준다. 현 시대를 향한 예언자의 예리한 통찰이 녹아있다. ◈ 저자소개 ∥월터 브루그만 Walter Brueggemann: 1933년 미국에서 출생, 엘머스트대학을 졸업하고 에덴신학교와 유니언신학교에서 신학박사, 세인트루이스대학교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세계적인 구약신학자이자, 탁월한 설교가. 에덴신학교와 컬럼비아신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쳤고, 지금은 은퇴하여 명예교수로 활발한 언론활동과 반 바로협회를 통해 미국사회에 만연한 소비주의문화에 저항하는 기독교사회운동에도 열심인 행동하는 지성이다. 성서유니온 간 / 2020. 4. / 1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하나님 편에 서라》 / 짐 월리스 지음 / IVP 《칼뱅과 공공선》 / 송요원 / 2020 / IVP 《공공선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컨맨 웡, 스콧 래 공저 / 2020 / 아비서원 이웃을 거부하는 제국의 신들인가? 해방과 언약의 하나님인가?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끊임없이 들으라, 지키라“이웃을 거부하는 제국의 신들인가, 해방과 언약의 하나님인가? 우리는 그들의 추종자요 착취와 상품화 이데올로기의 하수인인가 아니면 이웃의 위상을 복원하는 하나님께 속한 자유인인가?” 김길구 무례한 기독교란 말들이 이 땅에 회자될 때 시작한 본 시리즈 ‘기독교교양읽기’의 코너 이름을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기독교인문학으로 바꿨습니다. 오늘은 예고한대로 월터 브루그만의 「하나님, 이웃, 제국」입니다. 읽으신 소감이 어땠어요?김형기 저자가 33년생이니 올해로 87살이 되었네요. 그 연세에 여전히 거인다운 풍모를 잃지 않아 좋았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들이 접하기에는 이 책이 다소 지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김현호 풀러신학교에서 행한 브루그만을 위한 맞춤형 초청강연의 주제라 그럴 거예요. 요즘처럼 강단에서 거시담론이 사라진 때에, 모래바람 이는 고대 중동지역의 광야에서 들음직한 말씀의 생생함이 있잖아요.김형기 브루그만의 매력은 고대 중동을 연구하면서 그 말씀의 적용을 화석화된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21세기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삶의 영역에서 기독교적 대안을 모색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은퇴 뒤에도 반 바로협회란 조직에서 기독운동체로서 사회적 액션(social action)을 쉬지 않는 노익장이죠. 대표작 《예언자적 상상력》김길구 브루그만 하면 떠오르는 것이 1978년 출판되어 크리스천 투데이에서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기독교도서 100선에 오른 대표작 「예언자적 상상력」일 것입니다. 이 책은 이례적으로 2000년 개정판을 내어 달라진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는데, 우선 이 책부터 얘기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김형기 저자는 미국의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교회가 순응하게 된 원인을 성서의 예언자 신앙전통을 저버린 결과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려면 지배문화의 의식과 인식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의식을 끌어내고 키우고 발전시키는 예언자적 목회를 제안했는데 그 대안의식이 바로 예언자적 상상력의 롤 모델로 모세의 대항공동체와 특히 예언자 예레미야 등의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김현호 이 이유가 근원적 비판을 넘어 창조적인 희망을 선포하였기 때문이예요. 그 희망의 정점에 예수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김길구 ‘예언자적 상상력?’ 브루그만 다운 표현입니다. 예수 사역의 핵심은 기존질서의 단순한 해체가 아니라 절망의 세상 속에서 온전히 이루시는 새로운 하나님나라의 희망으로 오늘의 주제인 「하나님, 이웃, 제국」도 이 책의 예언자적 상상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정의, 은혜, 율법김형기 브루크만은 이 책에서 정의, 은혜, 율법이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논쟁적 주제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정의는 애굽의 바로와 같이 위로부터의 제국의 왕으로 상징되는 정의와, 모세와 같이 통제와 독점, 폭력에 맞서 하나님의 결단과 인간의 행함이 연대하는 이웃을 향한 해방공동체인 아래로부터의 정의가 있는데 물론 브루그만은 후자를 참 정의라고 주장합니다.김현호 은혜에 있어서도 당시 고대 중동의 만연한 인과응보의 ‘공통신학’처럼.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가혹한 언약을 넘어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신 사랑의 은혜의 윤리가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였다는 것입니다.김길구 이런 점은 구약의 율법에 있어서도 드러나는데 제국의 법은 절대적이라 고칠 수 없고, 철회할 수 없으나, 야웨의 법은 자신이 세운 법마저도 긍휼과 환대라는 회복적 정의로 법을 너머서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을 향해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순간 이웃의 외침에 귀기우려야 하며, 그들과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신학적 급진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김현호 저자는 분배의 맥락에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안전과 존엄과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보장한다는 뜻으로 정의justice를 정의하면서 “공동선은 사라지고 마거릿 대처가 촉발한 공동체 해체는 점점 만연해지며, 민영화라는 전염병이 우리 주위에 창궐한다”며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시킴으로 한계에 이른 신자유주의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김형기 우리사회도 이런 극심한 소득의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의 양극화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정의란, 한 사회에서 구성원 전체가 기본재화인 의료, 교육, 주거 등에 소외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오늘 우리사회의 문제를 성찰해 봐야겠지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김길구 지금도 방송과 반바로협회 활동 등을 통하여 미국사회의 소비문화에 대하여 예언자적 상상력을 가지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기독교대항운동을 펼치는 그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의 불평등과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에 대하여 일갈한다면 어떤 주장을 할까 궁금합니다. 아마 싱가포르처럼 고세율정책이나, 토지공개념개념 같은 주장을 펼칠지 모르겠네요? 김형기 재미있는 것은 그의 책 예언자적 상상력의 실천 후기편에 “예언자적 상상력”을 한낯 “멋진 생각”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며, “예언적 상상력은 애통과 희망이 지배문화의 굴레를 깨뜨린다는 확신을 지닌 참된 신앙인들이 행하는 구체적인 실천이다”이라고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김현호 그러한 사례로 도시가정상담목회, 음식과 숙박을 제공하면서 예배와 돌봄을 함께 베푸는 교회, 지미카터의 퇴임 후 사랑의 집짓기운동 등의 여러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여 한 때 많은 목회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그의 상상력이, 성장이 멈춰버린 한국교계의 사역자들에게 다시금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김길구 마지막으로 각자가 느낀 인상적이었던 대목들을 소개해 주시죠? 저는 서론에 있는 “구약성경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제국의 한 가운데서 옛 이스라엘을 위한 ‘대항 텍스트’countertext가 되었다”란 대목인데, 신앙적 고민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경쟁을 부추기며 이웃을 배제하는 우리의 소비문화와 구약을 단지 물질적 축복의 책으로 호도하는 요즘 세태에 경종을 주는 대목 같아 좋았습니다.김현호 혐오와 배제가 일상화된 우리를 돌아볼 때 “이제 구약 저 너머를 바라보자 우리는 교회가 베드로의 환상체험과 바울의 증언에 자극받아 이방인들을 향해 과감히 문을 연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가 스스로를 ‘타자화’othering한 가장 극적인 사례다”라는 대목인데 좀 더 열린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김형기 저는 “이스라엘에서 율법은 곧 대화다. 은혜와 정의의 하나님이 사람과 나누시는 대화다. 이 대화가 이끌어 내는 순종에는 청신함과 기쁨과 자유가 충만하게 깃든다”는 구절이 마음에 들어요. 율법을 굴레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죠. 김길구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장마철에 무거운 얘기로 독서를 하신다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학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구약의 본문이 성큼 우리에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음 호에는 여름 휴가철이라 여러분들의 독서부담을 덜어드리고자 문학평론가이신 남송우 前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모시고 2회에 걸쳐 고진아 시인의 시세계를 중심으로 기독교시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20-07-14
  • [영화] 우리에게는 좋은 이웃이 필요하다
    공영방송에서 복음을 전하는 법 교회와 매스미디어는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스미디어가 현실세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복음전파를 위한 활용가치 또한 높지만, 아울러 기독교 신앙에 부합하는 면모를 보여 주고 있지는 못한다고 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 오늘날 매스미디어는 상업주의에 물드는 바람에 선정성과 폭력성뿐만 아니라 미움과 복수가 사랑과 정의로 위장한 모습 등은 기독교의 가치관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매스미디어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문화명령(창1:28)과 선교명령(마28:19-20)에 따라서 어떻게든 매스미디어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시도를 멈춘 적은 없었다. 때에 따라서는 기독교 방송과 같은 대안문화를 개발하는 한편으로 미디어비평과 시청자운동 그리고 훌륭한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한 그리스도인들을 매스미디어 세계 속으로 보내 제작의 영역에서도 변화를 도모하기를 쉬지 않았다. 세속적 사회에서 매스미디어를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공영방송에서 복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예를 들어 KBS와 같은 공영방송에서 목회자가 나와서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전도성 발언을 내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적으로 보장받고 있지만 다종교 사회에서 다른 종교와의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기 쉬운 까닭이다. 성탄절과 같은 기독교의 절기를 제외한다면 공영방송에서 기독교 신앙을 증거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설교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단지 보여 주는 일이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대로 성령의 열매 9가지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5:22)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나타나는 결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비기독교인들이라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인간적 가치로 이해될 수 있다. 아무리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진 시청자라도 TV에서 늘 마주하는 인물로부터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지켜볼 수 있다면 그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록 그가 하나님이나 십자가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왜 좋은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톰 행크스 주연의 최신작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는 미국의 공영방송 PBS의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프레드 로저스(Fred Rogers) 목사의 인간미 넘치는 삶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는 1968년부터 2001년까지 자신의 진행하는 TV쇼 <로저스 아저씨의 이웃>(Mister Roger's Neighborhood)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어린이들에게 음악과 인형극 그리고 놀이로 가르친 사람이었다. 로고스서원의 김기현 목사는 프레드 로저스 목사에 대해 “로저스 아저씨는 TV에서 한 번도 복음을 말한 적이 없었지만 한번도 복음을 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한 것은 정말 그에 대한 탁월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상담가 프레드 로저스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외부 시선을 통해 보여 주며, 그 외부인마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감동과 변화의 경험을 겪게 된다는 할리우드식 위인전의 형식을 갖고 있다. 에스콰이어 잡지사의 폭로기사 전문기자 로이드 보겔(매튜 리즈)은 회사로부터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한 프레드 로저스에 대한 취재지시를 받는다. 아무리 유명인이라도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겔은 냉소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이번에도 적용하려고 하지만 왠지 이 사람 만큼은 다른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현실의 로저스는 구분이 안 될 만큼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인터뷰의 회수를 늘려갈 때마다 보겔은 로저스가 바라보는 세계관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이 변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독교 문화관으로 보자면 좋은 영화는 선한 변화를 추구한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요2장) 문제의 인간이 온전한 삶으로 회복되는 모습이 기독교의 가치가 반영된 영화의 특징이다.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폭로전문기자 보겔은 어릴 적 가족을 두고 집을 나간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인물이다. 보겔의 아버지 제리(크리스 쿠퍼)는 자식들이 어렸을 때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고, 어린 보겔과 누이는 아버지가 없는 가운데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해서 젖먹이를 둔 보겔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 군자 같은 모습의 로저스를 만난 것이다. 물론 결과는 우리가 예상했듯이 보겔은 아버지 제리와 화해한다. 말기 암에 걸린 아버지는 죽음을 앞둔 침상에서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보겔은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하고 진부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독교가 고난과 상처받은 인생에 대해서 갖는 독특한 관점이 내재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거부하고 성경이 고난과 인생에 대해서 갖는 감사의 심리가 일으킨 회복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보겔의 인생에 적용하자면 너무 간단하고 명확한 것처럼 보인다. 보겔이 사람과 사회를 대할 때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무의식적으로 말투가 거친 것은 과거 아버지로부터 배반당하고 버려진 상처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까닭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저스는 보겔이 겪은 고난과 상처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자신이 망가진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보겔에 대해서 로저스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당신이 망가진 인생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신념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옳은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죠. 아버지와의 관계가 당신이 그렇게 성장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걸 기억해봐요. 지금 당신이 있도록 당신을 도와준거에요.” 이것은 고난 가운데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온 말이며, 과거 트라우마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심리학의 일부를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어깨 위에 앉았다는 평판을 받은 심리학자 아들러는 자신의 스승인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뒤엎고 오늘날 긍정심리학의 출발이 된 개인심리학을 일으킨 사람이다.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불행을 일으킨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경험(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이 결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들러 심리학의 전부를 기독교 학문 안에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가 제시한 과거 경험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그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훌륭한 기독교 상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이웃의 조건 영화 속에 나타난 프레드 로저스는 상처 입은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들어 온 사람들을 향해 한사람 한사람 모두에게 집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보겔이 로저스와의 첫 전화통화에서 놀란 것은 그가 전화하는 동안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본인은 딴 짓하면서 전화를 받지만 로저스는 전화 한통화에도 상대방에게 집중하며 말 한마디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또한 보겔이 로저스의 스튜디어 촬영현장에서 본 것은 스탭들이 모두 기다리는 가운데서도 장애아동 앞에서 30분 씩이나 그와 마주하며 그의 느린 대답을 기다려주는 일이었다. 또한 그는 보겔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프로그램 안에서 어린이들에게 죽음과 이혼 그리고 전쟁도 다룬다는 점을 언급한다. 어린이니까 고통의 문제를 회피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일으키는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오히려 감정을 긍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대단히 뛰어난 기독교 교육자이며 상담가의 자질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기독교인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부연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 보겔의 삶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된 명장면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로저스는 식당에서 보겔과 마주하며 1분 동안 지금 자신이 있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준 모든 사람을 떠올려 볼 것을 요청한다. 영화는 1분 동안 적막에 휩싸인 식당 내부와 마치 식당 안의 손님 모두가 로저스의 제안에 동참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보겔은 미소를 짓는다. 치유가 일어나고 감사가 마음을 채우며 기쁨이 온 몸을 휘감는 순간이다. 보겔은 좋은 이웃을 만났다. 로저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를 미워하며 과거의 상처에 매달려 분노 속에서 일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누가 이웃인지에 대해서(눅10:29-36) 말씀하셨다. 상처입은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이웃. 누구든 프레드 로저스 목사를 이웃으로 마주한다면 그날은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 문화
    • 영화
    2020-06-24
  • 교회성장연구소 출간
    교회성장연구소는 신간 <신천지 진단과 교회 매뉴얼>을 1일 출간했다고 밝혔다. 신천지는 1984년에 시작된 꽤 오래된 이단이다. 크리스천이면 그 존재에 대해 모를 수가 없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신천지 OUT’이라는 포스터를 입구에 붙여 두고 있었고 신천지 추수꾼에게 교회가 넘어간 사례, 신천지에 빠져 가출한 자녀들을 돌려 달라는 부모들의 시위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로 인해 신천지는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세상 사람들에게도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동안 특정 전문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던 신천지는 모든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뿌리 뽑아야 할 한국 교회 최대 과제가 되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는 신천지의 허상을 깨닫고 돌아오는 ‘회심자’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 목표는 신천지의 몰락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회심자들의 끝없는 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제 다소 추상적이었던 대책 방안을 실제적이며 현실성 있게, 구체적으로 세워 모든 교회가 공유해야 할 때다. 본서는 신천지의 실체와 그들의 교육 커리큘럼에 대해서 다루면서 지금껏 집중되지 않았던 회심자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확실한 백신은 말씀과 성령,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제 신천지를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회심자들을 품어야 하는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국면을 단단히 대비하는데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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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0
  •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소강석 지음 / 쿰란출판사 / 2020.04.27. / 264면 / 12,000원 갑자기 닥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책 없이 예배가 중지되고, 온라인 예배를 드린다 해도 현장예배는 드리지 않는 교회들이 생겨났다. 코로나19 위기가 해제되었을 때 과연 한국교회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이 책은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변화, 교회 환경변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한국교회의 미래를 향한 전략과 뉴 포맷을 제시하며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코로나19 해제 이후에 위기를 극복한 한국교회 안에 정화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 문화
    • 도서
    2020-06-10
  • 이재철, [목사, 그리고 목사직]
    목사, 그리고 목사직 이재철 지음 / 홍성사출판사 / 2020.05.08. / 296면 / 14,000원 신학교가 난립한 한국에서 목사가 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목사직을 올곧게 수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척 교회 목사부터 대형 교회 목사까지, 신학박사부터 무인가 신학대학 출신까지, 저자는 지난 70여 년 동안 수많은 목사들을 만났다. 지난 시간 동안 만났던 목사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향해서 저자는 묵혀 두었던 7가지 질문을 던진다. 특히 사모, 부목사, 평신도들이 저자에게 보낸 상담 요청 편지가 본문에 익명으로 인용되어 있다.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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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0
  • [기독교교양읽기] ‘문화돌봄’은 교회의 소명이자 임무
    ‘문화전쟁’을 넘어 ‘문화돌봄’으로 마코토 후지무라의 컬처 케어(CULTURE CARE) 미국에서도 예술가들은 춥고, 배고픈 모양이다. 예술가는 어떻게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가? 어떻게 가족을 부양하면서 후세에 남을 영혼이 깃든 멋진 작품을 남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저명한 크리스천 아티스트인 저자의 답이 이 책에 담겨있다. 예술가에게만 미루지 말고 함께 상생의 생태계를 만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화는 전쟁이 아닌 가꾸어야 할 정원으로 창조적 자본을 가진 예술가그룹과 사회적 자본을 가진 목사 혹은 교회공동체 그룹, 물질적 자본을 가진 후원그룹 간의 협력을 통한 ‘문화돌봄운동’으로 시스템을 만들면, 시류와 무관하게 영혼을 울리는 걸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하나님은 창의력과 아름다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 마토코후지무라는 1960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나, 버크넬대학을 졸업하고 도쿄 예술대학에서 국비로 일본의 고전예술 양식인 니혼가(Nihonga) 기법을 연구하여 M.F.A.(예술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도쿄 현대미술관이 작품을 구입한 최연소 작가로 그의 나이 31살 때였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교회 장로인 그는 저명한 예술가로 왕성히 활약하고 있으며, 1990년 국제예술운동을 설립하여 ‘신앙과 예술의 조화, 문화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 열심이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국립예술위원회의 대통령 임명직으로 정부의 예술정책을 자문한 바 있으며, 현재는 풀러 신학교에서 예배, 신학, 예술을 위한 브렘센터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Refraction》, 《Silence and Beauty》 등이 있다. I.V.P, 2020. 12,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을 기독 서적들 《예술과 영혼》 힐러리 브렌드, 아드리엔느 채플린 공저 / IVP 《르네상스-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복음의 능력》 , 오스 기니스 지음 / 복있는 사람 / ‘문화돌봄’은 교회의 소명이자 임무 -함께 상생의 생태계 만들어 가야-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문화는 가꿔야 할 정원 “문화는 쟁취하거나 빼앗기는 영토가 아니라 우리가 돌보아 관리하도록 부름받은 자원이다. 문화는 가꾸어야 할 정원이다.” 일상의 미를 찾아서‥ 김길구 예고는 했는데 코로나19 특집으로 미뤄진 이 책을 읽고 목사님은 격찬을 하셨는데‥ 김형기 제가 여생을 문화목회를 지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막연했던 문화운동의 솔루션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서죠. 이론뿐 아니라 실제를 겸비한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체로 구입하여 문화계 동역자들과 독회도 가졌는데 참가자들의 반응도 뜨거웠어요. 김현호 이 책은 저자가 관여하는 국제예술운동, 후지무라연구소, 풀러신학교 브렘 센터가 추진 중인 일종의 기독교문화 활성화 방안 프로젝트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길구 저자는 30여 년 전인 신혼의 무명작가 시절 생활이 궁해 한 푼이 아쉬울 때 그의 아내가 꽃 한 다발을 사 오자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꽃 살 생각을 할 수 있”냐며 화를 낸 기억과 “우리의 영혼을 먹이는 것도 필요해”라는 아내의 대꾸에 충격을 받았던 회고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김형기 정작 예술가로서 영혼을 가꾸고 보살펴야 할 저자가 생활고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잊고 메마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얘긴데 저자는 지금은 성공했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겪고 있는 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아닐까요? 김현호 해마다 발표되는 직업별 연봉 순위를 보더라도 제값 못하는 국회의원이 연속 부동의 1위인데,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4~500위권으로 생활고에 찌들어 살아요. 소득이 월 200만 원이 채 안 되더군요. 요즘 같으면 더 어렵겠지요? 문화의 영혼을 굶주리게 하는 것 김길구 책을 보면서 문득 미국의 풍자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글이 생각났어요.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싶다면 예술을 하라, 예술은 생계의 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견딜만하게 만들고,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인간적인 방법이다. 결과물이 한심해도 괜찮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보상이다.’ 인간은 왜 예술을 할까요? 창조의 본능? 김현호 진부한 답변일지 몰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인간에게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의 의미 속에는 돌봄(care)이라는 뜻도 있어요. 아담은 첫 사역으로 피조물에 이름을 붙이며 창조성을 발휘합니다. 일종의 문화명령을 수행한 것이죠. 이런 능력은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본성으로 봐야지요. 김형기 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으로 가슴 속에 꿈틀대는 무언가를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세상과 소통하려고 해요. 그것이 선한 영향력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위험성도 안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에겐 영적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움을 회복해야 김길구 교회는 진리의 구조를 지켜왔지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에서 성령과의 접촉점을 대체적으로 잃었다는 지적이 매섭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김형기 한 때 서양의 역사와 문화의 기준은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오늘의 교회는 아름다움의 창조자를 만나는 곳이 아니예요. 현대 기독교는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김현호 그런 연유로 전문예술인들이 음악같은 몇몇 장르를 제외하고는 약화된 게 사실이지요. 따라서 기독예술인들이 입지가 좁아졌지요. 김길구 그런 예술가들의 역할에 대해서 저자는 ‘메악스타파’mearcstapa라는 생소한 고대 영어의 개념을 들었는데 ‘경계를 걷는 사람’, ‘경계스토커’를 뜻하는 이 단어는 자신이 속한 무리의 가장자리에 살면서 다른 부족과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소통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저자는 예술가들의 사회와 교회와의 가교 역할과 분열된 문화를 위한 소망과 화해의 전달자 역할을 기대해서겠지요? 김현호 주변부를 오가며 타자에게 열려 있는 예술인으로 미국이 사랑하는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예로 들었는데 둘 다 기성교회에 적응을 못해 주변부로 밀려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비인간화된 사회의 도래를 예견하고 이에 맞서 고군분투하며 지금도 세상에 말을 걸며 큰 울림을 주고 있다며, 교회는 세속문화에 대해 닫아건 문을 열고 세상과 더 깊은 소통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육성하여 기독교문화의 지경을 넓혀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화돌봄, 영혼돌봄 김길구 저자는 그런 잠재력을 가진 문화의 영혼이 계속 굶주리거나 지나친 상업화와 유용성에 매몰되어 오염된 문화의 토양을 돌보고 가꾸기 위하여 문화돌봄(culture care)을 제시합니다. 김형기 이 말을 ‘우리 문화의 영혼을 위한 돌봄’이라고 풀어서 정의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황폐해진 문화를 회복시킬 의무가 있다며 이 문화돌봄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김현호 이 운동이 성공하려면 창조적 자본인 예술가들이 먹고사는 일에만 몰두치 않고 창작활동에 집중하고. 사회적 자본을 가진 목사나 공동체 조직가들은 예술가가 온전함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도록 문화환경을 조성하며, 물질적 자본을 가진 이들은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3가지 자본 유형의 핵심 그룹 구축이 필요한데, 다가 어려우면 2가지만이라도 만들라며 예술가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실제적인 조언이지요. 돌봄의 사례들 김길구 이 책의 결론은 어떻게 우리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문화돌봄의 생태계를 만들어 가느냐?는 문제인데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무명시절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7~8명의 평범한 고객들에게 매월 100달러씩 후원을 받고, 연말에 작업실을 방문토록 하여 자신의 작품을 한 점 가져가게 하는 방법이었는데 일시불로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작품을 구입하기는 어려워도 분납식 후원방식으로 효과를 보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현호 저의 교회 얘기를 해보죠. 문화회관 같은 공공기관의 상주단체와 같은 개념인데요 전문연극팀을 선정하여 연습장소와 일정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연극단은 연중 몇 회의 의무공연을 하게 하는 방법인데요, 주로 부활절이나 성탄절 등의 절기에 공연을 합니다. 수준 높은 공연으로 교인들도 매우 좋아해요. 열악한 기독예술인들의 고충을 덜어주면서 은혜로운 공연도 감상할 수 있어 좋잖아요. 김형기 문화목회를 추구하는 저의 교회에는 아예 상설전시실을 마련하여 지역 기독예술가들의 작품을 순회전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배도 드리고 작품도 감상할 수 있어 교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덕분에 기독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요. 김길구 이 책 말미에는 꼼꼼하게 17페이지에 달하는 토론가아드가 수록되어있어서 각 장마다 심도 있는 논의와 토론이 가능토록 편집되어 있어 전문 예술인과 젊은이들의 교재로 활용해도 좋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호에는 저명한 성경신학자이자 구약성경 해석의 권위자인 월터 브루그만의 저서로 그의 신학을 요약한 《하나님, 이웃, 제국》-God, Neighbor, Empire- 성서유니온 편을 다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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