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8-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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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을 주기 위해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보컬 오디션 프로그램인 JTBC <팬텀싱어3>에 출연했던 소코. 남태평양 ‘피지의 최초이자 유일한 성악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연해 프로듀서 옥주현을 울린 감동적인 무대로 더욱 화제가 됐다. 소코가 방송에서 처음 선보인 무대는 한국 가곡 ‘첫사랑’이었다. 방송 출연진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보이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소코는 10년 전인 2010년 외국인 유학생으로 고신대학교에 오게 됐다. 피지에 파송된 한국인 선교사가 고신대 음악과 출신으로 그를 통해 고신대를 알게 됐고, 성악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로서 소코 역시 신학을 하길 바랐지만, 소코는 자신의 소명이 아닌 것 같다며 신학이 아닌 음악을 선택했다. 고신대학교 음악과, 교회음악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고신대 국제교류팀에서 외국인유학생들을 돕고 있는 교직원이다. 그는 팬텀싱어 시즌 1, 2 방송을 보면서도 참여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SNS에서 시즌3 포스터를 보는 순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학교 직원으로서 근무도 해야 하고, 방송 출연을 위해서는 서울에 가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으로 하고 싶었다. 소코는 “그래서 기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 허락하신다면, 팬텀싱어를 경험해 보고 싶다”고 기도했다. 그러던 중 방송사에서 고신대로 소코를 찾으며 팬텀싱어 출연의사를 묻는 연락이 왔다. 이를 듣는 순간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기쁨과 감사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출연 결심 후 휴가를 내고 서울에 가서 오디션을 봤다. 혹시 탈락하지 않을까하는 염려로 주변에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디션 결과 74인에 합격해 첫 방송 무대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많은 화제를 낳았던 첫 무대를 회상하며 “최선을 다한 무대였다. 이 노래로 누구를 울릴 생각은 없었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 중에 나를 기억해주길 바랐다. ‘잘한다’는 평가보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동적인 무대로 본선 진출자 36인에 합격, 매회 미션을 수행하며 16인에 들었지만 최종 결선 12인에 들진 못했다. 소코는 “팬텀싱어를 경험하며 여러 가지를 느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감사’였다. 하나님께 감사했고 출연을 허락해 준 학교에도 감사했다. 좋은 일도 있었고 아쉬운 일도 있었지만, 그래서 인생이다”면서 “일반무대, 학교무대 등 여러 무대 위에 서 보았지만 방송무대는 또 달랐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경험들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소코는 오디션에 합격하자마자 가장 먼저 안민 총장(고신대)에게 연락해 소식을 알렸다. 소코에게 안민 총장은 좋은 사제지간을 넘어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담당 교수로 만나 음악에 대해 배웠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힘든 시간을 겪는 그를 돌보며 위로와 사랑을 건넨 어른이었다. 소코의 합격 소식에 안민 총장은 놀라워하면서도 용기를 주었다. 방송은 콩쿨과 달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안민 총장이 멘토로서 소코의 레슨과 컨디션 관리를 도왔다. 총장으로서 학교를 이끌며 바쁜 와중에도 소코를 도왔다. 소코의 학부, 대학원 담당교수였던 안민 총장은 그가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악기인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장단점을 잘 알기 때문에 레슨을 통해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소코는 “솔직히 코칭이 필요했다. 누군가 제 노래를 듣고 코칭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총장님께서 도와 주셔서 기뻤다. 레슨 뿐만이 아니라 컨디션 관리도 도와주시면서 많이 응원해주셨다. 제겐 교수님을 넘어 ‘아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송 소식을 들은 피지의 가족들도 놀랐다. 소코는 “저희 가족 중에 제가 가장 노래를 못한다. 그런 제가 꿈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아시고 축하해 주셨다. 성공보다 미래를 위해 걸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해 주셨다. 부모님들도 감사하며 함께 기도해 주셨다”고 말했다. 멋진 무대를 위해 노래만 생각했다. 잠도 잘 자지 못하고 밥 먹으면서도,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노래’ 생각을 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몸도 피곤하고 경연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행복했다. 동요, K팝을 성악으로 해본 적도 없고 자신이 하게 될 것이라 상상도 못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실력이 향상 되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몰랐던 제 안의 소리를 발견하며 감사했다. 경연 과제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팬텀싱어에 함께 출연했던 출연자들과 지금도 연락하며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비록 부산에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생각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서로 배려하면서 응원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더 좋았다”고 회상했다. “누군가가 찬양을 하면 어느새 다 따라 부르곤 했고, 대부분 교회 다니는 이들이었다. 신앙 안에서 알고 지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음악을 하고 싶어 먼 유학길에 올라 한국을 찾은 소코. 피지의 아이들에게 자신을 통해 희망을 주고 싶고, 그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결승 진출 문턱에서 탈락한 소코는 이렇게 소감을 남겼다. “정말 행복합니다. 사실 전 노래하는 이유에 대해 계속 고민했어요. 저를 멀리서 지켜보는 피지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하고 있어요. 왜냐면 이때까지 한명도 희망을 주기 위해 노래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 사람 제가 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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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4
  • 전도미니팝업북 저자 성준현 집사(수영로교회)
    주일학교 교사 섬기며 어린이 사역 꿈 꿔, 교대에 재입학 전도미니팝업북 제작 위해 ‘특별한 선물’ 출판사 설립 부산지역 기독교 역사 발굴에도 높은 관심 목표가 있는 삶은 다르다. ‘어린이 선교’라는 푯대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평신도를 만났다. 주일학교사역자모임(주사모) 디렉터, 전도미니팝업북 저자인 성준현 집사(수영로교회)이다. 성준현 집사는 어릴 적 동생을 따라 몇 번 교회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신앙생활은 하지 않았다. 젊은 혈기에 따라 살다가 그의 27세 때 지인의 전도로 부산 수영로교회 청년부 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예배 중 설교를 들으며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교회 등록을 했다. 이후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그는 “목사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제 죄를 회개하니 성령 충만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를 전도한 장석우 씨의 권유로 초등학교 1학년 주일학교 보조교사로 섬기게 됐다.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전도하는 것에 기쁨과 보람을 느꼈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성준현 집사는 “그때 어린이 전도는 밭에 숨겨진 보화와 같이 너무도 필요하고 소중한 것으로 제 마음에 다가왔다”고 말했다. 공대생 출신이었던 그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및 군제대후 다시 교육대학에 시험을 쳐 입학했다. 대학에 재입학한 그에게 교대 생활은 즐겁고 귀한 준비의 시간이었다. 이후 비신자였던 부모님을 전도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부산, 울진,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아이들을 만났다. 또한 지역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면서 어린이 전도 사역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교대 졸업 후 첫 발령지인 울진군 후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섬기며 아이들을 전도했다. 당시 많게는 60여 명을 후포길교회 여름성경학교에 초청하기도 했다. 결혼 후 경주에서는 경주중앙교회 동역자들과 함께 주일학교 2부를 개척해 100여 명으로 부흥하는 일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집 근처에 있던 꽃동산교회를 출석했는데 당시 초등부 새가족 부장을 맡아 섬겼다. 그리고 꽃동산교회 담임 김종준 목사의 제안으로 새친구들을 위한 자료를 만들게 됐고, 이후 교사강습회, 교사교육컨퍼런스 강사로도 활동하며 어린이 선교사역에 앞장서고 있다. Q. 집사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저는 현재 부산 수영로교회 성도이며 수영로교회에서 초등새친구부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주일학교사역자모임(주사모) 디렉터, 전도미니팝업북 등 전도 책자를 만든 저자로도 활동 중입니다. Q. 꽃동산교회는 주일학교를 바탕으로 성장한 교회로 유명합니다. 다음세대 사역으로 손꼽히는 꽃동산교회에 출석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A. 꽃동산교회는 매년 5월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복음축제를 개최합니다. 이 복음 축제를 통해 제 학교 전도 활동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매년 기다려지는 전도 잔치가 되었습니다. 복음축제는 전교인이 주일(또는 토요일) 어린이 및 청소년을 전도해 대예배를 함께 드리는 천국 잔치입니다. 본당을 아이들에게 1년 한번만이라도 열어 주자는 것이 복음 축제입니다. 전교인이 함께 하기에 주일학교 자체 행사 때보다 관계전도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습니다. Q. 다른 교회들도 복음축제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도움의 말씀을 주신다면? A. 복음축제에 대해 소개하면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어른들 총동원 전도주일도 있는데 굳이 어린이 복음축제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저는 인생의 가장 전도하기 좋은 때라고 답합니다. 전도해 보면 어릴 때에는 대부분이 예수님 영접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대학생만 되도 종교에는 자유가 있다고 하죠. 또 전도축제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호소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교회마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요. 복음축제 선물이나 간식, 혹은 간증자나 사역자를 초청하기 위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복음 축제를 위한 목적 헌금을 주보를 통해 요청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복음축제를 위해 각자의 달란트를 쉐어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들을 전도하기 힘든 분들은 떡볶이 같은 요리를 통해 섬기셔도 좋고, 운전, 풍선 만들기, 선물 기증, 안전 담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Q. 전도미니팝업북 저자라고 들었습니다.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서울 꽃동산교회에서 새친구 부장과 교사로 섬길 때 김종준 담임목사님께서 새친구 부서에 사용할 자료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중에서 구입한 자료를 드리니 자료를 보시다가 “성집사님이 새친구 자료들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한국어린이교육선교회와 연합하여 주일학교 강습회 강의 사역을 섬기며 주일학교 자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부산으로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김종준 목사님께 꽃동산교회 자료들을 부산, 경남 등 주일학교 부흥을 위해 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부탁해 받은 자료를 가지고 내려 왔습니다. 그때 제가 가지고 온 자료 중 복음제시용 입체책이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 전도팝업북입니다. Q. 출판사를 설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A. 처음 자료로 가지고 있던 것을 인쇄 출판하려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출판이 어려웠습니다. 기도하던 중 단판인쇄와 접지 형식의 최저 단가가 가능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출판, 유통할 여건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를 보급하기 위해 기독 출판사를 세워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제 어머니(대표 강원자)께서 대표가 되고, 아내가 기도하며 출판사 이름을 정해 ‘특별한선물’이라는 출판사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규현 담임목사님의 추천으로 한국기독교출판협회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책인 ‘전도미니팝업북’을 출간했습니다. 디자인은 부산 하늘기획(대표 김소휘)에서, 제작은 부산 주신기획(대표 사일권)에서, 유통은 어린이 문서 선교에도 헌신하고 있는 하늘유통(대표 황성연)에서 맡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책이 현재 2만권 정도 판매 되어 많은 어린이 전도 동역자들과 함께 주일학교 부흥을 위해 쓰임 받고 있습니다. 또 이 책을 수영로교회 국제영역(총괄 최창용 목사)과 함께 20여개국의 언어로 번역하여 제작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된 책을 가지고 몽골과 남아공으로 주일학교 강습회 전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Q. 기독교 역사 유적지에도 관심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A. 서울에 있으면서 복음축제에 참여한 아동들을 초대해 기독문화체험 행사를 가집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유도생태공원 코스로 다녀오는데, 학생들이 더욱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직접 보고 느낀 경험이 아이들에겐 오래 남게 되죠. 그래서 부산에서도 이같은 기독문화체험을 위해 알아보았지만 기독교 유적지가 상당히 소실되어 안타까웠습니다. 부산지역 기독교 역사를 알기 위해 이상규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었고, 지금은 부족하지만 저도 관심을 갖고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서양 선교사님들의 전도와 섬김, 열매가 지금의 ‘우리’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역사를 기념할 자리에 작은 명패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Q. 20년 넘게 초등학교 교사로 계신데, 크리스천 교사로서 학교 현장은 어떻습니까? A. 일선 교사로서 느끼는 학교 현장은 힘듭니다. 전도하는데 여전히 힘든 점이 많고 학부모님들의 반대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여전히 복음이 필요한 아이들입니다. 과거와 달리 생활에 여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세대를 향해 결핍이 없는 세대라고 하지만 마음과 영은 너무도 결핍이 심한 세대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하나님의 사랑이, 복음의 능력이 필요한 세대입니다. 제 개인적 견해로는 모든 교회가 어린이, 청소년 사역에 주력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겐 어린이 전도사역이 중요하지만 교회마다 특징을 가진 사역이 다르다고 봅니다. 어느 교회는 어린이 사역을, 어느 교회는 청소년 사역을, 어느 교회는 노인 사역을, 어느 교회는 교구 사역을 더 탁월하게 합니다. 각 교회가 가진 주특기를 살려 주력한다면 연합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색이 어우러진 무지개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노력하여 아름다운 연합을 이뤄내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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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1
  • 조의금을 선교헌금으로 낸 故 배경숙 권사 가족들
    ▲ 이송학 장로와 故 배경숙 권사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듯이 한 사람의 인생이 다녀간 자리에도 흔적이 남는다. 한 평생 살면서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 배움에 대한 열정, 선교에 대한 헌신, 가족의 사랑을 남긴 이가 있다. 지난 11월 5일(화) 소천한 故 배경숙 권사(부산영락교회)이다. 가슴의 열정을 행동으로 故 배경숙 권사는 신앙의 개척자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예수님을 믿고 늘 말씀을 읽고 외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들이 믿도록 기도했다. 이를 본 배 권사의 자녀들 역시 외가 식구들과 친척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배 권사의 남편 이송학 장로는 “신앙의 개척자에겐 의로운 영적인 부담이 있다. 가족과 친척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늘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자녀들까지도 이 일에 동참하게 교육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름수련회를 갔는데 시험을 잘 치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예수님을 믿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을 교회 교사들이 듣고 신기하게 여긴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장로는 “그리고 그 후 믿지 않는 친척과 처가의 형제자매 중 많은 분이 주님을 영접했다”고 덧붙였다. 이송학 장로는 부인 배 권사를 회상하며 “아내와 결혼하고 산지가 벌써 49년이 되었다. 그 세월 동안 자식을 낳고 업을 이루면서 머리는 맞대고 의논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아내는 책을 좋아하고 성경 말씀을 늘 가까이 했다. 그래서 어떤 해는 말씀을 10독하기도 했고 영어성경 전권을 써서 그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아들이 결혼할 때 혼인서약을 했다”고 말했다. 서로 아주 다른 성정을 가졌지만 각자의 인생을 세상 권이나 지성, 인기, 시류 등에 두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신의 전 존재, 즉 사고나 생각, 행동, 믿음을 두기 위해 노력했다. 故 배경숙 권사는 늘 돕는 배필로 살기를 원했다. 자녀들을 돕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그 사상들과 성경의 말씀에 근거해 자녀들을 양육했다. 그러면서 부정적이거나 희망적이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자식에게 주지 않으려고 했다. 이 장로는 “특히 자녀들이 스스로를 부족하게 생각하거나 실망하는 것을 소망으로 바꾸어 놓는 일을 아주 잘했다. 전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지식이나 재물이나 재능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자녀들과 부모가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 장로의 자녀들은 많은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려고 했으며, 손자들과 손녀들도 그러했다. 특히 배 권사와는 더욱 친밀했다. 이송학 장로와 배경숙 권사 슬하에는 1남 2녀가 있다. 아들은 현재 경희푸른한의원을 경영하고 있고 경희대 한의대에서 임상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큰딸은 보스턴 뉴잉글랜드 컨설바토리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해 뉴잉글랜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작은딸도 같은 학교를 나와 보스턴대학교에서 반주학 박사를 받고 국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늘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배 권사는 대학생들을 오랫동안 가르쳤다. 이송학 장로 역시 교육에 관심이 많아 시의원 시절에도 교육 분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며느리와 사위들 역시 교육현장에 있는 이들이다. 며느리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큰사위는 보스턴 버클리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작은사위와 작은딸도 연세대와 성신여대, 백석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들 이진신 씨는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늘 책과 함께하셨다. 물론 강인한 생활력으로 아버지를 뒷바라지하시고, 교회생활도 열심이셨다. 특히 선교에 열정이 많으셨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첫 장은 어머니의 서재이다. 방에는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서 “특히 철학과 신학, 이성과 종교에 대한 책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에는 펴서 읽을 만한 쉬운 책은 없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는 아주 유익한 책들을 찾아 읽곤 하였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일들을 남겨 故 배경숙 권사는 대구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 계명대학교, 부산영남신학교, 동아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철학박사)를 전공했으며 대학에서 철학개론, 사상사 이해, 현대사회와 철학, 논리학, 과학과 종교, 과학론, 과학철학, 현대신학, 종교철학, 교양영어 등을 강의했다. 저서로는 <세계종교의 이해>, <진리와 자유 그리고 은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남편과 함께 쓴 <그 나라로 가는 길에>가 있다. 평소 선교에 관심을 갖고 교회에서도 앞장서 섬긴 배 권사의 삶을 기리며 가족들은 조의금 3천만원을 선교헌금으로 냈다. 가족들의 뜻이 모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남편 이송학 장로를 비롯해 자녀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선뜻 선교헌금을 내며, 배 권사의 삶을 기억하기로 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졌지만, 그로인해 세계 곳곳에 영적 생명을 얻는 이들이 바라는 마음에서다. 부산영락교회 윤성진 목사는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답게 가신 분이다. 가족들이 아름다운 일들을 남겨놓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면서 “간호사 출신으로 신학도 배우고 철학박사 학위를 배우며 늘 공부하는 분이었다. 남편 이송학 장로님과 함께 교회에서도 늘 배우고 연구하는 부부였다. 고인의 뜻을 잘 기려서 가족들이 큰 결심을 했다. 많은 성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계속해 선교에 관심을 갖고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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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4
  • 교정, 교화활동 통해 ‘국무총리 상’ 수상한 강형식 목사
    10월 28일 교정의 날. 정부는 교정의 날을 맞아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제74주년 교정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강형식 목사(예인교회, (사)문화쉼터 대표)는 교정과 교화활동 통해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 한 공로로 ‘2019년 교정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강 목사는 “때로 힘들어 멈추고 싶을 때도 있었고, 사역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그만두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담 안 형제들의 편지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감동과 메세지가 힘이 되었습니다”며 “이 모든 것이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강 목사가 교정사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부터 29년 전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부산교도소 교무국장이 전화가 왔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요시찰 인물 한명을 소개하면서 “매번 사고를 쳐서 골치가 아프다. 목사님이 상담 한번 해 달라”는 부탁을 전해왔다. 보통 요시찰 인물들은 사고를 자주 일으켜 6개월에 한 번씩 타 교도소로 이동시켜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강 목사가 상담한 재소자도 당시 교정시설 안에서 악명 높은 인물로 통했다. 그런데 상담을 받은 이 재소자가 더 이상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고, 이후 1년 8개월 동안 부산교도소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사고를 일으키거나 요시찰 재소자들이 부산교도소에 들어오면 강 목사에게 연락이 왔고, 상담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본격적으로 교정사역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한다. 강 목사는 “그분들도 같은 인간입니다. 선입견 없이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분들도 마음을 열어준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며 재소자들과 가까워진 계기를 밝혔다. 본격적인 교정사역을 시작하면서 사역 방향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초창기 교정사역 하는 기독교 단체만 13개 정도였는데, 대부분 절기에 먹을 것만 전달하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강 목사는 “당시에 재소자들을 만나보면, 먹는 것 보다 성경공부를 원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산교도소에 성경공부를 할 수 있도록 요청했고, 지금까지 재소자 성경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고 소개했다. 오랜시간 재소자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들의 사연을 듣고 많은 눈물도 흘렸고, 비록 담안에 있는 몸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강 목사는 “한번은 성경필사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재소자가 성경을 필사해서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이들이 성경을 필사해서 저에게 보내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재소자들의 성경필사 전시회를 꼭 한번 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몇 년 전부터 간절한 기도제목이 생겼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친해진 재소자들이 출소 후 강 목사를 찾아오면서 생긴 기도제목이다. “OECD 국가중 우리나라 재소자들의 재범률이 가장 높습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다시 범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을 믿고 그들을 편견없이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드려야 하는데, 아직 이 부분이 미숙한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지금 강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 3층 생활관에는 갈 곳 없는 재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머물고 있다. 이런 재소자들을 위해 강 목사는 재활촌을 꿈꾸고 있다. “언젠가 꼭 재활촌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들이 머물고, 일하면서 일정한 수입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교정, 교화 활동은 담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출소한 분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합니다”고 말했다. 끝으로 강 목사는 “교회가 좀 더 재소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맞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들을 밀어내면 또 다른 범죄자로 만들 수 있고, 사랑으로 맞아준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구보다 충성된 일꾼으로 잘 살아 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고 전하며 사랑과 관심, 기도를 당부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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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1
  • 문학비평가로 왕성한 활동 인정받아 부산시 문화상 수상한 남송우 교수
    제62회 부산광역시 문화상 시상식이 지난 10월 28일(월) 오후 4시 부산예술회관에서 개최됐다. 부산시 문화상은 1957년부터 매년 부산의 문화예술 진흥과 향토문화 발전에 공이 큰 문화예술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날 문학 부문 수상자인 남송우 교수(부산중앙교회 장립집사)를 만났다. 지역에서 40년간 문학을 중심으로 문화활동을 해 온 공적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됐다. 수상소감을 묻자 남 교수는 “이 나이까지 활동할 수 있도록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년 이후에도 지역 문화를 위해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아 감사하다. 사실 이 상의 의미는 제게 주시는 게 아니라 같이 활동했던 많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주신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면서 “바쁜 활동으로 가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미안하고 그런 중에서도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남송우 교수(부경대학교 명예교수)는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교직했고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사)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 (사)부산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남송우 교수는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며 지난 1991년 국내 최초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을 창간했다. 시, 소설, 현대문학 등 문예지가 있으나 비평 전문지는 없던 당시 서울도 아닌 지역에서 발간되며 이목을 끌었다. 비평이 활성화되면 문학 전체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동인들과 함께 창간한 것이다. 비평전문 계간 문예잡지 <오늘의 문예비평>은 창간 당시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서울에서도 힘든 비평 전문지가 부산지역에서 창간되었다는 점에 주목 받았다. 그러나 주목과 함께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출판이 취약한 지역이었지만 지평출판사, 세종출판사의 도움으로 출간을 이어왔다. 남 교수는 당시를 회고하며 “4년이 지나고 5, 6년이 지나면서 재정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출간하면서 한국 문학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부산을 중심으로 비평 담론을 새롭게 만들어간다는 평가로 폐간할 수 없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체적으로 ‘책읽는사람’이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출판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봉생문화회에서 주최하는 봉생문화상 문학부문을 수상하며 재정의 도움을 받았고, MBC문화대상에서도 수상하며 받은 상금 1천만원으로 출간을 이어오게 됐다. 그리고 요산김정한문학상과 KNN에서도 수상하며 출간을 이어왔다. 상금으로 출간을 이어왔지만 수상이 계속 되는 것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힘들었던 잡지였기에 알아보던 중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잡지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했고 <오늘의 문예비평>이 선정됐다. 남 교수는 18년간 편집인을 맡아왔고 20년이 넘어서면서 후배들이 전적으로 맡아 진행했고, 지금도 발간 중이다. 국내에선 가장 오래된 비평전문지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남송우 교수는 과거 부산지역 독서율을 설문조사한 적 있다. 조사 결과 초중등학생까지는 타지역과 비교해 평균 정도를 차지하지만, 일반인의 경우 타 지역보다 낮은 독서율을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민들의 독서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 영광도서와 함께 ㅈ난 1993년 3월부터 영광독서토론회를 개최했다. 작가와 비평가, 독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주로 비평가들이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참석한 시민들도 함께 질문하며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다. 때론 얼굴일 울그락불그락하며 토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시민들의 호응도 좋았다. 황석영, 공지영, 신경숙 작가 등 많은 작가들이 영광독서토론회에 자리했다. 남 교수는 “현상에 대해, 대상에 대해,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해석하고 어떤 선택을 할지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비평이다. 이런 비평 정신을 시민들이 삶에서 활성화시켜 시민의식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영광독서토론회는 일반 독자들이 생각하지 못했거나 작가가 놓친 부분을 잡아주며 문제를 짚어낼 수 있는 힘을 익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영광도서 건축 관계로 토론회가 일시 중지된 상태다. 이 외에도 국제신문과 오늘의문예비평팀이 협약해 국제문예광장을 개최해 지역 작가들의 왕성한 활동을 지원했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라는 이순신 평전을 펴냈다. 전기가 아닌 이순신 정신, 근원적 가치에 대해 그려낸 평전이다. 서울, 여수, 부산에 여해재단을 마련하고 재단 안에 학교를 개설했다. 청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순신아카데미를 열었고, 지난 2016년 1기를 시작으로 현재 7기까지 수료했다. 김 전 재판관의 권유로 부산지역을 남 교수가 맡아 진행 중이다. 남송우 교수는 과거 고려신학대학원이 송도에 있던 시절 신학대학원과 일반대학원을 동시에 다니며 공부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신학 공부는 포기하고 문학공부만 지속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학적 관심은 신학과 떨어져 있지 않다. 남 교수는 “선교 초창기처럼 말로 전하는 선교는 힘들다. 일반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보편화 되어 있기에 문화적 측면에서 선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학작품을 통해 시민들이 좋은 기독교 문학작품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지 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많이 없지만 기독교 문학 작품이 없는 건 아니라며 대표적으로 윤동주 시인을 꼽았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되어 좋은 평가를 받고 번연되어 국내에 소개된 김은국의 <순교자>, <소나기> 작가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엔도 슈사쿠의 <침묵> 등을 추천했다. 남 교수는 “문화적 토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지만 뛰어난 작가를 키워내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안타깝다. 다양한 형태의 선교전략을 고민하고, 그 일환으로 문화예술인을 많이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9-11-08
  • 꽃으로 그리는 그림 ‘압화’ 작가 이경숙 원장
    따뜻한 봄이 되면 들판에 핀 예쁜 꽃을 따다가, 선선한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을 떼다가 책 사이에 끼웠다. 책 사이에서 시간이 지나 마르고 나면 코팅을 하거나 편지지에 붙이는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봄을, 가을을 간직했다. 이처럼 꽃과 잎, 줄기 등을 채집해 누르고 건조시킨 후 구성한 그림을 압화(押花)라고 한다. 압화라고 말하면 생소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만들었거나 보았을 것이다. 인공적인 그림과 달리 자연 본래가 가진 아름다움 때문에 지금도 압화는 널리 이용되고 있다. 간단한 카드, 편지지부터 액자, 전등, 액세서리, 손톱 등 다양한 곳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최근 압화 분야에서 잇따른 입상으로 실력을 검증받은 이가 있어 만났다. 하수꽃예술원을 운영 중인 이경숙 집사(수영로교회)다. 성전 꽃꽂이를 시작으로 이경숙 원장은 어릴 적부터 오빠를 따라 주일학교를 다니며 경주 양남교회에 출석했다.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 좋았고, 길가에 수줍게 핀 꽃이 좋았다. 여느 소녀들처럼 꽃을 좋아하던 그녀는 들에 핀 코스모스를 보고 한 아름 모아다 교회 강대상에 꽂아 두었다. 이를 본 담임목사는 꽃이 예쁘다고 칭찬했고, 잘했다고 격려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18세였던 그녀에게 무조건적인 칭찬과 지지였지만 그땐 칭찬으로 기뻤고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부흥회를 참석하던 중 교회 강대상을 보며 꽃꽂이를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예쁘게 성전을 꾸미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렇게 꽃꽂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전 꽃꽂이를 시작으로 직접 꽃꽂이를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꽃꽂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계속 이 일이 하고 싶어 28세가 되어서는 꽃꽂이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경숙 원장은 크고 화려하게 핀 아름다운 꽃도 좋았지만 야생화를 더 좋아했다. 산에, 들에 모진 환경에도 꿋꿋이 피어 있는 야생화를 좋아했고, 특히 냉이꽃과 코스모스를 좋아했다. 야생화로 무언가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그녀에게 지인이 압화를 소개했다. 압화에 대해 알게 되면서 식물로 그림을 그린다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 크리스천인 그녀는 산에 핀 꽃 한 송이, 들에 핀 꽃 한 송이가 스쳐지지 않았다. 작고 가녀린 꽃 하나도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것처럼 자연을 대할 때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컸다. 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했고, 성경말씀을 보면서 받은 영감이 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술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이 원장의 재능은 여실히 발휘됐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대한민국미술대전 기타공예부문 특선, 올해 3월 제18회 대한민국압화대전에서는 분야별 대상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특히 전남 구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압화대전은 외국에서도 참여할 만큼 손꼽히는 곳이다. 여기서 이 원장의 작품 2점이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힘없는 들풀의 힘 압화는 작품을 만드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재료를 준비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꽃을 채취한다. 귀한 꽃이 핀 곳은 위치를 기억해 뒀다가 꽃이 필 때 다시 찾아가 채취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은 꽃을 손질하여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종이에 한 송이씩 올려 모양을 잡고 며칠 후 다시 확인하며 약 일주일간 건조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리고서야 준비된 꽃을 핀셋으로 옮기며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물감을 쓰지 않고 식물 자체를 재료로 쓰는 것이 압화의 매력이다. 이경숙 원장은 “꽃을 놓아 작품을 만들다 보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한땀 한땀 놓다보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만드셨구나 묵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경숙 원장은 6년간 학교에서 방과후교육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집중력과 정서발달을 도왔다. 지역 중학교에서 아트플라워 수업을 하며 꽃꽂이, 수경재배, 압화 등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서먹해하던 학생들이 이내 관심을 가지며 꽃을 가져와 이것으로도 만들 수 있냐며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 원장은 “아이들이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제 오해였다. 급변하는 아이들을 보며 신기했다”고 말했다. 학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 수업을 하고 올해는 중단했으나 지금도 가끔 공방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다. 이 원장은 “힘없는 들풀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경숙 원장에게 압화를 배우는 수강생은 압화의 재미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그저 지나치던 길이었는데 압화를 배우고 나니 길가의 꽃도 다시한번 보게 된다”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에게는 집중력 향상과 정서발달을 돕고, 성인들에게는 지난 추억을 떠올려 옛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이경숙 원장을 만나 작품소개 및 수상소감, 압화에 대해 들었다. Q.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이어 대한민국압화대전에서도 수상했습니다.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성전꽃꽂이를 시작하며 제 인생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지난해 10월, 올해 3월 잇따른 경사에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특히 남편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시간이 할애될 수밖에 없기에 이를 기다려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Q. 작품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이번 대한민국압화대전에서 분야별 대상을 받은 작품은 <자연의 노래>입니다. 창문에 총 10개의 작품을 담았습니다. 창문이 닫혔을 때는 가을 들녘에 바람이 나부끼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바람에 식물들이 날리는 쓸쓸한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 연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창문을 열면 가운데는 같은 곳의 풍경을 봄, 가을, 겨울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한 공간이지만 하나의 장면을 봄과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된 느낌을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풍경만 하기엔 단조로울 것 같아 항아리로 시크라멘과 크리스마스의 우아함과 정물 같은 느낌을 담았습니다. 풍요로움과 우아함을 정물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이 외 국전에서 수상한 <봄날의 하모니>는 깊은 산속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갖가지 식물들이 어우러져 찬양한다는 의미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압화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가을로의 초대>는 산 속 가을의 모습을 담아 표현해 보았습니다. Q.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하시는지? A. 지나다니며 본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마음에 담아 기억해 두기도 합니다. 때론 예배를 드리며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압화가 알려지지 않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꽃으로 그리는 그림 ‘압화’를 알려 더 많은 분들이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무심결에 밟고 지난 수 있는 꽃이지만 이를 통해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나타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이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작품 <가을로의 초대> ▲ 작품 <봄날의 하모니> ▲ 작품 <자연의 노래>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9-05-23
  • “크리스천이기에 달라야한다”는 이창훈 교수
    직전 부산대학교병원 병원장으로 섬기면서 매일 기도로 준비 부산대학교병원 제26대 병원장으로 지난 2016년 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3년간의 임기를 마친 이창훈 교수(부산대학교병원)를 만났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병원장직을 섬길 수 있어 감사하다. 부족한 제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매일 아침 기도하며 출근했다. 크리스천이기에 달라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창훈 교수는 1983년 부산대 의과대학 분과 1학년이 되었을 무렵에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집 근처 친구들이 전도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친척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근에 살았는데, 믿음이 깊은 할머니를 따라 할아버지께서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따라가게 되었다. 아내의 권유로 교회를 가지만 믿음이 없던 할아버지는 혼자 가기 뻘쭘했는지 이 교수 집에 찾아갔고,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됐다. 당시 믿음은 없었지만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종종 교회로 발걸음 했다. 그러던 중 이 교수의 아버지가 별세했다. 대학생으로 젊은 나이에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할지 앞이 막막했다. 그 때 출석하던 부산 평광교회 성도들이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장례절차도 모르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장례 치를 형편도 아니었지만, 교회 성도들이 발벗고 나서 제 일처럼 도와줬다. “목사님께서는 염하는 것까지 도와주셨다”면서 “그렇게 교회에 감사한 마음으로 출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믿음 없이 신앙생활 하기란 쉽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그에게는 공부에 대해 열중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바쁜 대학생활을 보내던 중 어느날 친구들과 만남을 갖고 있는데 기침을 했더니 피가 나왔다. 이후 결핵인 것을 알았지만 객혈한 당시에는 폐병인 줄 알았다. 친구가 아는 병원을 소개해줘 결핵치료를 받게 되었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용돈을 모아 고기 한 근을 사서 찾아갔더니 믿음이 좋았던 병원장이 고기는 아픈 사람이 먹고 힘내라면서 한사코 거절했다. 그리고는 부산산정현교회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당시 서울에서 한달에 한번 함석헌 선생이 부산산정현교회에 와서 강연을 했는데 여기에 참석해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감사한 마음으로 권유에 응했다. 부산산정현교회에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듣고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되었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새로운 깊이를 경험했다. 그렇게 교회생활, 청년들과의 유대관계, 말씀연구에 대한 관심 등이 자라게 되었다. 이창훈 교수는 “인생을 살면서 유혹도 많았고 실수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믿음의 길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정말 부족한 제게 믿음을 주시고 진리를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고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평광교회를 출석하다 지난 2002년 이사하면서 부산중앙교회로 옮기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장로 임직을 받았다. 이 교수를 만나 그의 신앙 이야기와 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섬기게 된 소감을 들었다. Q. 2월 로힝야족 난민에게 의료선교를 다녀왔다고 들었다. A. 지난 2월 설 연휴에 맞춰 로힝야족 난민에게 선교사역을 하고 왔다. 부산중앙교회 담임목사인 최현범 목사님과 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인 이병수 교수님, 그리고 지구촌구호연대 배태진 목사님께서 만남을 가지면서 로힝야족 난민에게 의료선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래서 최현범 목사님께서 제게 의료선교를 권유하셨고, 고민하던 중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산대학교병원 병원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였기에 바빠서 거절했다. 설연휴는 임기가 마치기 직전이라 힘들 것이라 답했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장로직분을 허락 받았기에 섬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장로임직을 받았던 다른 의사 장로님과 함께 뜻을 모아 교회 선교팀을 꾸려 로힝야족을 다녀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회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설 연휴이고, 4일 중 이동하느라 이틀을 쓰기에 실제 사역 기간은 이틀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경비는 많이 드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하셨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시고 움직여 은혜를 경험하게 했다. Q. 가서 어떤 사역을 했는가? A. 크게 의료사역, 어린이사역, 방역사역을 했다. 의료사역으로 내과질환, 외과질환, 당뇨검사, 소변검사, 치과 치료 등 이틀간 환자 800명을 진료했다. 또 고아들이 많기에 고아원 해피홈사역을 했다. 청년들이 어린이들에게 놀이문화를 가르쳐주면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밀집되어 살고 상하수도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질병 전염성이 높았다. 그래서 소독기를 준비해 방역사역을 실시했다. 로힝야족 난민은 공식집계로 110만명, 실제 1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짐작한다. 실제 가까이서 보니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특히 여성질환을 치료해 줄 의료진이 필요했다. 우리는 남자 의사들이라 이슬람 여성들의 진료를 보기 힘들었다. 고작 피부치료를 도와주는 정도였지만, 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Q. 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이 되었다고? A. 지난 4월 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지난 2013년 부산성소병원 박희두 장로님을 비롯해 몇몇 의사들이 뜻을 모아 결성했다. 부산대학교병원장 임기가 끝나니 박희두 장로님께서 제게 회장직을 물려주셔서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동안 활동이 많이 부족했다. 사실 크리스천 의사들은 다들 바쁘게 살아간다. 의사로서 병원 업무가 많지만 그 외에도 교회나 소속된 선교단체 등을 통해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지역으로 묶어 단체를 만든다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조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런 우리들의 뜻이 모여서인지 김성록 교수님께서 곧 부산에 찾아와 부산시기독의사회와 만남을 갖고 조언을 주기로 했다. 김성록 교수님은 부산대 출신으로 서울 성모병원에서 퇴직하시고 서울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섬긴 경력이 있다. 선배로서 부산시기독의사회가 활성화 되길 바라며 도움을 주고자 하셨다. 앞으로도 해외 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의료선교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부족하지만 부산시기독의사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임원들과 함께 좋은 사역들을 기획하겠다.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9-05-13
  • “진솔한 글로 후손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 학교법인 동서학원 박동순 이사장 올해 팔순을 맞아 회고록을 출간한 학교법인 동서학원 박동순 이사장. 1965년 그야말로 황무지 같은 땅에 영남기독실업학교를 세웠다. 19명의 신입생으로 시작한 학교는 학교법인 동서학원 아래 경남정보대학, 동서대학교, 부산디지털대학교, 이렇게 3개 대학으로 발전했다. 10만 명이 넘는 졸업생, 2만여 명의 재학생과 1천명의 교수, 직원이 재직하는 큰 교육기관이 됐다. 학교법인 동서학원의 설립자인 故 장성만 박사가 교육가, 정치가, 목회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데는 그의 곁에서 늘 동역한 박동순 이사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8월 25일 동서대학교 컨벤션홀에서 ‘2018학년도 2학기 개강감사예배 및 보직자 간담회’가 있었다. 더불어 박동순 이사장의 팔순기념 출판회를 가졌다. 이날 출판회에서 박 이사장의 장남 장제국 총장(동서대)은 “오늘의 동서학원이 있기까지 훌륭한 리더십과 섬김으로 학교를 이끄신 이사장님께 감사하다”고 말했고, 차남 장제원 국회의원은 “선친 장성만 초대 이사장님이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훌륭한 내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팔순회고록 <내 잔이 넘치나이다>(도서출판 카리타스)를 출간한 박동순 이사장을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박동순 이사장의 신간 <내 잔이 넘치나이다>(도서출판 카리타스) Q.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A. 8월 30일이 제 팔순이었습니다. 이후에는 글을 쓰기 힘들 수도 있으니 건강과 상황이 허락될 때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말보다 진솔한 글로 남기고 싶어 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재료를 모으기보다 머릿속에 있는 기억들을 메모하며 꺼내었습니다. 팔순이 8월이니 7월말에는 책을 출간할 계획으로, 4월부터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글을 다듬고 또 다듬고 하다 보니 생각보다 조금 늦어지긴 했습니다. Q. 책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제가 사회적으로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기에, 제 신분에 대한 신뢰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출생과 가정환경 등 신분에 대해 밝혔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만난 이야기로 어떻게 만났고, 미국 유학 생활은 어땠는지, 학교를 설립할 때의 이야기, 12년간 동서대 총장으로 섬기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적었습니다. 또한 제가 본 남편의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남편의 삶의 자세,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쳤고, 크리스천 정치가로 어떻게 활동했는지 적었고, 그 외 제가 후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남겼습니다. Q. 글의 맛깔스런 표현력이 돋보였습니다. 글을 쓰는데 힘든 점은 없으셨는지? A. 문학을 했기에 글을 쓰는 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청년시절엔 성경은 물론 책도 많이 읽었고 영화도 많이 보았습니다. 성경은 시편, 잠언, 전도서, 로마서 등을 특히 좋아해 많이 읽었고, 쿼바디스, 로미오앤줄리엣, 전쟁과평화 등 영화도 많이 보고 주제곡도 따라 부르곤 했습니다. 옛날엔 좋은 영화가 많았습니다.(웃음) 그리고 영시도 많이 외웠고, 좋은 문장을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우리 때는 그런 감성적인 문화들이 많아서인지 글을 쓰기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퇴근 후 집에 돌아가 글을 썼습니다. 보통 저녁 10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면 밤 2~3시가 될 때까지 빠져들곤 했습니다. 다음날 출근해야하는 걱정에 중단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평소 순간순간 기억나는 것은 메모하고,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글을 썼습니다. 이미 책을 출간했는데도 ‘아, 그거 썼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다시 책을 쓸 자신은 없네요. ▲ 남편인 故 장성만 박사의 존영 앞에선 박동순 이사장 Q. 글을 쓰며 중점을 둔 부분은? A. 과거를 회상하다보니 나를 자랑하는 것이 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솔하게, 사실 그대로 쓰자고 결심했습니다. 우리 가정의 아이들이 나의 삶을 봐 왔기에 거짓이 없게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동서가족인들이 보았을 때 공감할 수 있도록, 누가 보더라도 진솔하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제게 백번을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진실하게, 정직하게 썼습니다. 제가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진실할 때 모든 것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Q. 제목인 <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뜻은 무엇인지? A. 어머니께서 20대이던 시절 호주선교사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확실한 믿음을 가진 어머니는 믿음생활이 철저한 분이셨습니다. 이는 제 형제 모두 합창할 정도죠. 어머니는 애국적인 마음은 물론 신앙에 입각한 철저한 믿음생활을 사셨습니다. 그게 참 고마울 뿐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정말 어렵고 좌절될 때 내가 예수님을 안믿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제게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주신 어머니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편 장성만 박사의 초상화를 바라보며)저 양반이 나를 정말 사랑해주었습니다. 저 남자의 큰 사랑을 받았기에 힘을 합쳐 함께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또 동서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사한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학교가 어려울 때 교직원들 모두 반발하거나 분규 없이 이제껏 지내왔습니다. 서로를 믿고 신뢰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좋은 만남들을 허락하셔서, 제가 변화되고 믿음을 갖고 능력을 갖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신앙심, 남편의 사랑,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과 신뢰로 저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 잔이 넘치도록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Q. 책을 본 주변의 반응은 어떤지요? A. 큰 아들인 장 총장이 제게 인쇄들어가기 전 먼저 글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여줬더니 딱 한마디 하더군요. 눈물이 났다고. 오히려 제가 핀잔을 줬지만, 제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 고마웠습니다. 주변에서 책을 본 후 여러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입니다. 남편과 정치인 선후배로 알고 지냈는데, 이번에 여행 후 집에 돌아와 책을 읽다보니 진솔하고 마음에 감동이 와서,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며 편지를 보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또 여러 지인들이 잠이 안와서 책을 보며 자려고 했다가 한번에 다 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안지겹다고 말씀들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Q. 팔순잔치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A. 시대가 시대인만큼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한 학기를 시작하고 끝날 때마다 3개 대학 교직원들이 함께 모여 개강종강예배를 가집니다. 그런데 묘하게 제 생일이 8월말이라 2학기가 시작하는 여름방학이 끝날때, 남편의 생일이 음력 11월 2일이라 겨울방학 시작 때입니다. 이번 2학기에는 1부 개강예배, 2부에 출판기념회로 가졌습니다. 직원들 모두 참석은 힘들고 300명, 지인 60명을 초청해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뵙지 못했던 분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Q.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학생들 앞에 서서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캠퍼스를 밟는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은? A. 앞서 말했듯 진실한 말이 감동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명문장은 아니더라도 입학식, 졸업식 식사(式辭)를 제가 모두 직접 작성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늘 말하던 것은 ‘before 동서 after 동서’, 학교 오기 전에는 당신이 누구였든지 간에 학교를 마치고 나갈 때는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스승을 만나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만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걸 명문장으로 쓰는 건 싫더군요. 제 진정으로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말해왔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습니다. ▲ 故 장성만 박사의 동상 앞에 선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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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5
  •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 김덕규 장로
    흰 가운을 입고 환자들의 질병을 냉철하게 판단 해야 하는 의사이자 생명을 존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는 작가, 김덕규 장로(동아대학교병원, 온천교회)를 만났다. 구원의 길 김덕규 장로는 2대째 믿는 가정에서 3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는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녔으나 중학생이 되면서 학생회 예배만 겨우 참석하는 정도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사춘기 등의 이유로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지 못했고, 주일 예배 참석도 매우 등한히 했다. 그러던 중 부유했던 집안의 경제 사정이 어렵게 돼 도심을 떠나 변두리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평소 친구가 없어 쓸쓸하게 지내던 김 장로는 이로 인해 고립감마저 경험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하굣길에 언덕 위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춘기를 지내며 교회 생활을 멀리 했지만, 힘든 삶 속에서 스스로 교회에 발을 디뎠다. 다음 주일예배에 참석한 그와 가족들은 교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교회에 출석했다. 김 장로는 “전 교인 모두가 환대해 주었다. 그 따뜻함이 저의 어둡고 무거운 마음을 깨뜨렸다”면서 “그동안 지켜보고 계셨던 주님께서 고립무원의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저를 구원하려고 성도들을 붙여 주셨던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성도들의 사랑을 받으며 출석한 언덕 위의 작은 교회가 괴정제일교회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주 들은 이름이 있는데, 바로 안용운 학생이다. 그 학생은 집안의 모진 핍박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교회의 모범 성도가 되었고, 공부도 열심히 해 서울대에 진학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일들로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이후 2001년 온천교회를 출석하게 된 김덕규 장로는 비로소 말로만 듣던 ‘안용운 학생’을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국민들을 울린 시인 지난 2010년 백령도 해역에서는 국가를 충격에 빠뜨린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인해 46명의 수병이 전사했다.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그 슬픔과 바람을 시로 적어 공감을 일으킨 이가 김덕규 장로다. 천안함 사건 후 김 장로는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는 제목의 시를 해군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후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며 공감을 얻어 당시 해군 홈페이지는 접속자가 폭주해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였다. 김덕규 장로는 당시 천안함 피격 관련 신문기사를 읽던 중 가슴에 뜨거운 감정들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차올랐다고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 감정들을 글로 옮겼다.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그 시를 언급하며 사건에 대한 슬픔과 시에 대한 감동을 말했다. 김 장로는 “제가 받은 그 감동들이 그대로 전달되어 아마도 동일한 감동을 자아낸 것으로 추측한다. 지금도 변함없이 믿고 있는 것은 그 감동은 하늘에서 내려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평택 2함대 사령부내 천안함 전시물 옆과 백령도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옆에 그의 시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가 함께 적혀 있다. 지금도 천안함 추모일이 되면 뉴스나 온라인에서 여전히 회자될 만큼 국민들의 공감을 받은 시다. 하나님의 마음을 글에 담아 김덕규 장로는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는 글을 통해 하나님의 아파하는 마음을 알게 됐다. 김 장로는 “하나님의 아파하는 마음이 제 마음에 이식 되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 땅에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수십만, 수백만의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은 사실에 무지한 자신이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으려다 총에 맞아 죽고, 굶어 죽고, 겨우 중국으로 넘어갔으나 인신매매를 당한 사람들의 아픈 모습들이 눈에, 가슴에 들어왔다. 김 장로는 “주님께서 이러한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은 이를 널리 알려라는 사명을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깨달음, 그 아픔을 시로 표현했고, 이를 엮어 2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그는 신앙 수필집 <기도로 채워지는 하나님의 시간>, 북한 주민들의 아픔을 담은 시집 <살아만 있어다오>, <봉화>를 펴냈다. 최근에는 묵상집 <천, 묵, 기, 통 요한계시록> 신간이 출간됐다. 제목에서 ‘천’은 천천히, ‘묵’은 묵상하며, ‘기’는 기도하며, ‘통’은 통곡하며 읽는다는 말의 축약이다. 이 책의 특징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가 일반 성도의 시각으로 요한계시록을 읽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독자들이 쉽게 공유하도록 평이한 문장으로 적은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물질이 풍부한 남한 교회에 주는 메시지와 말할 수 없는 핍박과 환란을 당하고 있는 북한 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요한계시록에서 찾아 보여준다. 책의 결론은 복음통일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의 탓이라고 말한다. 9만여 한국교회가 한 마음이 돼 북한 주민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 기도 했다면 벌써 통일이 되었을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은 모든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김덕규 장로에게 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그의 친절함과 세심한 진찰을 높이 평가한다. 환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환자를 책임지는 태도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동료 의사들은 실력은 물론 인품이 뛰어난 의사라고 말한다. 삶에서 신앙에서 하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김덕규 장로에게 기도제목을 물었다. 그는 기도제목을 대신해 시 한편을 보여줬다. 그의 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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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10
  • 자천교회를 설립한 故 권헌중 장로의 후손들, 조상의 뜻 이어가
    ▲ 자천교회 내에서 찍은 고 권헌중 장로의 후손들. 이들은 현재 각자의 자리에서 조상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결혼할 당시 제 지인들은 아내에게 믿는 가정에 시집 잘 왔다고 했었죠. 그러나 결혼 후 아내 가문을 알게 된 지인들이 제게 장가 잘 갔다고 하더군요.(웃음)” 부산시 영도구 땅끝교회를 섬기는 김남규 장로와 권미혜 권사 부부 이야기다. 자천교회를 세운 고 권헌중 장로 김남규 장로는 5남 3녀 중 여섯째로 형제들 중 3형제가 목사로 재직 중이거나 은퇴했다. 다른 남매들도 장로, 권사 직분으로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김남규 장로는 결혼 후 처가에 대해 알게 된 후 놀라웠다고 말했다. 권미혜 권사 가정은 현재 6대째 신앙의 뿌리를 이어 온 영남지역 기독교 명문 가문이다. 권 권사의 증조부인 고 권헌중 장로는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 위치한 자천교회(담임 손산문 목사)의 설립자다. 1898년 4월 동학농민운동으로 청송에서 대구로 이사를 가던 중 산 고갯길에서 선교사를 만났다.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된 제임스 아담스(한국명 안의와) 선교사에게 복음을 들은 권 장로는 예수를 영접하고 이사를 포기했다. 선교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3개월간 신앙교육을 받았고, 자천리에 초가삼간을 구입해 서당 겸 기도소로 사용했다. 권 장로는 자신의 집에 있던 노비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해방시켜 주고, 전도에 힘써 믿는 사람들이 증가하자 교회 설립을 결심하게 됐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에 자기 재산을 들여 마을에 필요한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지어주고 나서야 교회를 완공하게 됐다. 자천교회는 일제 강점기 때에는 가마니 공장으로, 10.1 사건 때에는 인민군 사무실로 쓰이는 등 민족의 역사와 함께 했다. 지금의 교회 건물은 1904년에 지어져 해방 이후 다소 변형된 채로 보존되다 2003년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452호로 지정, 2005년 복원공사를 통해 다시 원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자천교회는 예장통합 총회사적지 제2호로 지정돼 있다. 연 3만명 이상의 순례객이 찾는 성지 순례 코스로도 유명하다. 자천교회 내에는 신성학당이 있다. 과거 서당 훈장이었던 권헌중 장로가 자천교회 내에 설립한 2년제 소학교이다. 1913년 50명의 신입생으로 시작된 신성학교는 서당을 대신해 교회가 근대적 공교육의 장을 감당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한 전통 한옥 교육관인 신성학당과 관련된 간증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교회가 학당을 고 김경환 씨의 선대에 빚 대신 넘겨줬다.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후 2007년 김경환 씨는 임종 직전에 신성학당을 교회에 기증했다. 고 김경환 씨는 할아버지가 산 이 집 때문에 자손들이 잘 된 것 같다며 다시 교회에 헌납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이를 기증해 그동안 폐가로 방치된 신성학당을 교회가 보수 정비했다. 이로서 교회와 함께 신성학당까지 성역화 작업이 진행돼 문화재로 지정됐다. ▲ 김남규 장로 아내 권미혜 권사의 증조부인 고 권헌중 장로가 설립한 자천교회 영남지역 기독교 명문 가문 지금 자천교회에 있는 ‘예배당’ 현판의 글씨는 권헌중 장로의 아들인 권오진 장로의 친필이다. 고 권오진 장로는 아버지를 이어 자천교회를 섬기며 일제시대 갖은 시련에도 강직한 믿음을 지켰다. 고 권오진 장로는 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믿음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고 권오진 장로 슬하에는 4남 2녀의 자녀들이 있었다. 이들 모두 장로, 권사, 사모, 집사 등 믿음을 지켰고, 권미혜 권사를 비롯한 다음 세대 자녀들도 모두 믿음 생활을 하고 있고, 그 다음 세대 역시 모두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김남규 장로의 처남인 권순백 장로(땅끝교회)는 “가계도를 보면 사회적으로 뛰어난 인물이 없을 수도 있지만 모두가 믿음을 지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믿음의 유산이 세대를 이어 잘 전수되고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 권오진 장로의 후손들은 10년 전부터 매년 여름 가족수련회를 개최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는 8월 15일 자천교회에서 가족들이 모여 제11회 가족수련회를 연다. 기도, 격려사, 특강, 토론 등 여느 단체의 수련회에 뒤처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별세, 건강 등의 이유로 보지 못하는 가족들도 있지만 또 새로 태어난 생명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며 세대의 전수가 이어진다. 이들은 매년 수련회를 갖고 그동안 모은 재정을 교회에 헌금한다. 시골 교회라 교인이 줄고 재정이 어려운 교회를 위해 설립자 후손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연금, 월급 등 자신의 소득을 구분해 연 수천만원씩을 헌금했다. 김남규 장로와 권미혜 권사 슬하에는 두 딸 정은, 고은 씨가 있다. 두 딸 모두 변호사로 장녀는 제주도에서 활동 중이며, 차녀는 부산도시공사 법무팀 변호사로 근무 중이다. 가족들의 헌신을 보고 자란 김정은 변호사는 자천교회 등록교인이 돼 지속적인 헌금생활로 조상들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김남규 장로는 “자손으로서 조상들의 신앙을 잘 계승하고 이를 후대에 잘 전달하고 싶다. 또한 예수 믿는 가정이 잘 되는 모습을 사회에 보여 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가정의 두 자녀 모두 변호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조상들의 기도의 열매를 우리 가정에서도 받게 된 것 같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김남규 장로(우)와 처남 권순복 장로(좌) ▲ 김남규 장로 가족 사진. 두 딸 모두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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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천파워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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