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자수첩

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고신 경남노회(법통) 100년사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고신 경남노회(노회장 이인규 목사)가 노회 역사를 담은 100년사를 출간했다. 지난 6일, 교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림교회에서 출판기념세미나를 가졌다. 이에 앞서 K장로가 교계 인터넷 매체를 통해 기고문을 올렸다. 그는 기고문에서 경남노회 100년사에 게재된 故 송상석 목사에 대한 친일, 반기독교적 행적을 비판했다. 교단의 역사기록을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사실을 적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마땅하다. 그러나 송상석 목사가 얼마만큼 회개하고 과거의 잘못을 돌이켜 선한 일로 일관 했는지 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울이 바울이 된 전철 밟은 송상석 목사의 고백담 사울은 믿음의 형제들을 찾아다니면서 결박하고 심지어는 스데반을 돌로 죽이는데 주역이었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복음의 전령자가 됐다. 위대한 전도자로 결국 순교의 대열에서 주님을 위해 바친 그의 행적을 보고 역사가들은 나쁜 자로 낙인찍어 쓰레기 취급했던 글을 보았던가? 친히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한 바울은 위대한 복음의 업적에 찬사를 보내도 아깝지 않다. 필자가 교계 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1978년 10월 어느 날, 송상석 목사가 자주 숙식했던 중구 보수동 애린유스호스텔에서 교계 기자 몇 사람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곳은 그의 딸과 사위 故 한남석 장로가 운영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때 한창 이슈가 된 구포 70만평 위에 용호동 나환자들의 정착촌을 위해 쓰일 땅이 한상동 목사가 하병국 목사에게 이사장 바통을 넘겨주고 하 목사가 미국 유학 갈 때 다시 김진경 교수한테 그리고 그의 친구 김상원 장로에게 넘겨주는 과도기 때에 구포 땅을 찾는 일에 매진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때부터인지는 몰라도 기자의 눈에는 故 한상동, 한명동 목사 형제를 그렇게 좋은 감정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총회 안에는 송상석 목사를 추종하는 경남노회와 한상동 목사를 지지하는 부산노회의 두 산맥이 서로 갈등과 이해 속에 사사건건 충돌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기자 근성으로 “송 목사님, 과거 일제시대에 고등계 형사직을 갖고 있었던 일이 있습니까?”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송 목사는 처음에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미소 띤 얼굴로 “그것이 그렇게도 궁금했느냐”고 반문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송 목사는 서서히 그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젊은 날에 잠시 뭣 모르고 택한 일이 있지요. 그때는 예수를 믿지 않던 젊은 30대였고, 그 직이 괴롭고 해서 1919년 통영군 원량면에 있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때 예수를 믿게 된 것이지. 그런데 말이여, 참 하나님은 오묘한 섭리로 나로 하여금 만주 봉천에 있는 박형룡 박사를 모셔 오는데 그 형사 신분증이 얼마나 유익을 주었는지, 검문검색이 많은 그 당시 이 형사 신분증을 최대한 활용하여 용케도 통과하여 박형룡 박사를 모셔왔던 것이야. 내가 죄인 되었을 때 교인을 핍박한 사도바울처럼 회개한 후로 1935년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국교회에 금연, 금주 절제운동을 펼친 것 등 주님의 일에 앞장 선 교단의 굳은 나쁜 일들은 내손에서 만들어지거나 법적인 문제마다 현실 법을 알았던 관계에서 도움을 주 것만은 사실 이라네 그 고약한 형사 닉네임만은 나의 어두운 그림자로 자리 잡아 상대방들이 늘 우려 먹는 도구라네. 어찌 하겠나. 죄인이었던 그때를 지울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제 궁금증은 풀어졌는가요. 신 기자님”라 하지 않는가. 나는 몹시 미안한 감이 들었다. 이후로 고신총회는 신학에 박윤선, 신앙에 한상동, 행정에 송상석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송 목사는 필자와 같은 마산문창교회를 다니면서 세례교인이고 마산고교 시절 기독학생운동(SFC) 출신인 점을 알아서 소상하게 얘기해주었다. 한편, 부민교회당에서 열렸던 총회에서 지덕용 장로가 취급, 보관했던 목회자 은퇴금(은급금)부도 건이 터지자 송 목사와 한상동 목사 측 계열과 맞붙어 성토당한일이며 김희도 목사와 윤은조 장로가 학교법인 이사허위 기재 등록한 공문서 위조로 검찰에 고발되어 피고가 된 사실 등의 교단의 검은 역사의 언저리에는 송상석 목사는 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었으며, 피나는 그의 끈기와 집념이 교단과 경남노회 법통노회로 지켜 계승하려는 그의 믿음의 의지를 엿볼 수가 있었다. 성경의 기자들 2000년 당시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것처럼 산 역사의 현장에 지켜보아 온 사실은 사실대로 기록하고 싶은 것이다. 한상동 목사나 송상석 목사 모두가 교단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이고 나쁜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교단을 위해 한 몸을 던진 숭고한 교단의 헌신자들임에는 부인 못 할 팩트다. 지금에 와서 친일행각 여부를 들춰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서 기자와 같은 세월 속의 지나간 그림자일 뿐이다. 어쨌든 이번 경남노회 100년사를 쓰기위해 역사 편찬위원 목사, 장로들 관계자들이 수고한 값어치가 100년사의 역사실록이 탄생된 것이다. 경남노회, 그것도 법통을 붙인다는 의미도 아마 법에 밝은 송상석 목사가 놓은 초석 때문이 아니었나, 매우 자랑할 만한 이유도 묻어놓고 있어 축하할 제목이다. 송 목사는 1929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한 것이며, 1932년 채필근, 조만식 장로와 함께 조선기독교 절제운동회를 조직해 1935년 미성년자 금주, 금연법 제정을 위해 손가락을 자랐던 것을 보고 마치 마태 제자가 예수 스승의 십자가 흔적을 손으로 만져보고서 참인줄 알았던 사실은 기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신이건 장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16-10-13
  • “발언권 달라(?)”
    복음병원 민주노총 지도부(지부장 노귀영)가 고신 총회가 열리고 있는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을 찾아와 총회장 배굉호 목사에게 발언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배 총회장은 “그런 전례가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거절하자, 이번에는 “유인물을 돌리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총회장이 거절했다. 하지만 노동조합 지도부는 총대 일부에게 자신들의 유인물을 배포했고, 결국 이 유인물을 대부분의 총대들이 보게 됐다. 유인물에는 자신들은 병원행정권자들에 대항하여 부당한 경영간섭을 한 일이 없다는 것과 최근의 병원 사태와 관련한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A 총대는 “자신들이 선한 양 같이 표현했던데, 말에 대해 인정하고 싶어도, 행동(배포하지 말라고 했는데) 때문에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고, B 총대는 “여기가 자신들이 마음 놓고 들어가는 법인 이사회 수준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라며 발언권 요구를 했다는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학교법인 A 이사는 “유인물을 봤는데, 개인적으로 그 유인물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고, B 이사도 “병원경영에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기자가)직접 병원장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용물을 읽은 몇몇 총대들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고신총회에 찾아와 발언권과 유인물 배포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고신총회를 아주 우습게 보는 것 같다”며 “고신총회가 복음병원의 주인이 아니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왜 총회 석상까지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등 다양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6-09-29
  • 고(故) 최태민 목사가 남긴 그림자
    22년 전에 세상을 떠난 고(故) 최태민 목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가! 그의 그림자가 사위와 자식들, 정치계에서 나풀거리고 있다. 최근 그에 관한 가족사의 얽힌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성하게 되살아나고 있어 교계차원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한동안 잠잠했던 故 최태민 목사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그의 딸 최순실(59세) 씨의 미르재단와 K스포츠 재단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면서이다. 그가 승려에서 목사로 변신하기 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을 말할 것 같으면 대개 이러하다. △故 최태민 목사의 정체는? 지난 40년 가까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는 과거 1974년을 거슬려 올라간다.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쓰러진 후 퍼스트 레이디 구실을 하던 박근혜는 ‘새마을 봉사단’ 명예총재라는 직함이 제기될 때부터 줄곤 따라붙어 다녔다. 혜성과 같이 교계에 나타난 최태민 목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비주류 계통의 종합교단이라는 곳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신학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최태민은 구국봉사단 총재 이름으로, 그리고 박근혜는 명예총재라는 타이틀 때문에 교계에 어필되었다. 구국봉사단이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새마음운동으로 개명되고 그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꾸려 일반 대중속에서 무료 의료치료 등의 봉사활동을 펼친 것이 국민들에는 신뢰를 얻어 회자 되기도 했다. 그당시 박근령과 대립됐던 육영재단과의 분란의 배경의 요인도 1990년도 신문 지면까지 보도되었다. 1998년 박근혜가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최순실의 남편)가 비서실장이란 호칭을 달고 등장 할 때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04년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정윤회는 종적을 감췄지만 2007년 경선 때에도 그가 박근혜의 비선 조직을 이끌며 핵심 측근으로 중심에 있었다는 소문도 자자했다. 최태민은 1975년 4월 29일 대한구국선교회<1976.12.10> 구국봉사단 1979년 5월 1일 새마음봉사단의 총재에 나선다. 1963년 5월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 첫 정계에 발을 디딛고, 전국불교 청년회 부회장, 1951년 3월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 1947년 4월 인천경찰서 사찰 주임 경위 등이 그의 과거 이력 전부이다. 최태민의 교계이력은 1945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은 뒤부터 목사라는 호칭이 그때부터 따라 붙는다. 그의 수사 자료를 보면 한때 불교 승려가 되었고 천주교 영세까지 받았다. 태민이란 이름도 7번째 쓴 가명이기도 했다. 그는 1912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942~1945년까지는 황해도 도경의 순사였다. 월간조선 <2007년 7월호>에 의하면 최태민은 6명의 부인으로부터 모두 3남 6녀의 자녀을 둔 그의 가계도를 제시 한 바 있다, 1970년대에 들어 와서는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교주행각을 벌였다.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했다는 교리를 내세워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권자경 칙사 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도 쓰고 다녔다. △박근혜와의 첫 만남 최태민이 박근혜를 만난 것이 이 무렵이다.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보낸 ‘김형욱 회고록’에 공개된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다 ‘어머니는 돌아가신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는 것을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을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해 항상 들을 수 있다’ 故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는 내용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른바 ‘현몽’으로 전하는 그의 본심은 한번 만나 주길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1975년 3월 6일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눈 것이 첫 만남이었다. 물론 그의 아버지 박정희도 동석해서 만났다. 1993년 11월 월간중앙지에 목사직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의 주론이나 이 사실은 확인된 바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목사안수는 그 당시 종합총회교단(합동비주류 100여개가 넘어)에서 받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다. 다만 그가 신학교 에서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이다.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봉사단을 발족하고 스스로 총재에 취임했고 5월 임진강에서 구국기도회를 열면서 박근혜를 명예총재로 그 자리에서 즉시 제안하여 추대가 된다. 그리고 전국 중요 도시에 구국봉사단, 구국의료봉사단을 조직하여 부산에서도 그 지부가 동구 초량동 어느 폐교에 간판을 걸고 부산교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당시 박영수 부산시장이 나오고 부산지부장에는 변창남 목사가 나섰다. 지금까지 인연으로 발을 딛고 내려온 것이 사단법인 한국경로복지회로 노인들을 상대로 재가복지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이다. 그 뒤 최태민은 합수부가 진행하는 수사를 받았고, 당시 전두환 지시로 수사를 맡았던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신동아’(2007년 6월호) 인터뷰에서 최태민은 강원도 어느 군부대로 보내 활동하지 못하도록 조용히 자숙하도록 했고, 새마음봉사단은 1980년 11월 강제 해산 당했다고 했다. 그의 딸인 최순실 이사장이 지금 정치계에 등장한 것도 다 이런 그의 아버지의 배경일지는 몰라도 소문에 꼬리를 물고 아버지의 망령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최태민은 이후 서울 역삼동 자택에서 칩거한 후 1994년 노환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신이건 장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16-09-29
  • 누가 봐도 과하다는데....
    최근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가 열려 상정 안건 등을 다뤘다. 병원 행정처장 해임 이후 다시 병원 부장들에 대한 추가징계안이 상정됐다. 이사들은 “행정공백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다음에 다시 논의하자고 안건을 뒤로 미뤘다. 또 복음병원 민주노총이 불법으로 운영하고 있는 매점과 분식점에 대해서는 “병원장이 적법하게 처리해서 이사회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해임된 행정처장에 대한 재심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단, 노동위원회가 심의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노동위원회 결과를 보고 재심을 처리하기로 했다. 최근 본보가 고려학원 내 교수, 직원들 10여명을 대상으로 이번 징계에 대한 생각을 알아봤다. 다들 “과하다”, “감정이 들어간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으로 병원 뿐만 아니라 학원 내 조직문화가 경직될 것 같다는 우려 섞인 반응을 나타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6-09-08
  • 교회에는 손 안벌리겠다고...?
    신문을 준비중인 부기총이 말과 행동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기총은 법인 이사회에서 “교회에 부담주지 않고, 기업체의 후원을 받아 신문을 자체 제작하겠다”고 말했다. 법인 이사회도 그 말에 허락을 한 것이다. 일종의 조건부 허락이다. 하지만 교회에 협조공문을 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여기에 대한 질문에 부기총 사무총장은 “공문은 보냈지만, 전화는 하지 않았다. 요즘 공문만 보낸다고 누가 도와주나?”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 또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며칠 뒤 모 교회 목회자가 “부기총 사무총장이 전화가 와서 신문을 만든다고 후원을 해 달라고 한다”며 “언론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어 현재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다음에는 무슨 변명을 할까?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6-09-08
  • 부산노회장로노회장 3파전, 누가 웃을 것인가?
    통합 부산노회(박상순 목사) 10월 가을노회에 있을 초미의 관심은 장로노회장 선출이다. 4년 만에 뽑는 장로노회장 선거에 노회안에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10월 둘째주 화요일에 하루 개최되는 노회 장소는 장유대성교회(한재엽 목사 ), 이미 출사표를 던진 장로 노회장 후보는 진장명 장로(항서교회), 김종수 장로(부산진교회), 문장석 장로(새날교회) 3파전의 경합이 치열하게 전개될 예정이다. 총대 투표에 1위를 한 김종수 장로(중부시찰)와 북부시찰 소속인 문장석 장로는 평소 같은 룸메이트로 활동했지만, 진장명 장로(서부시찰)는 홀로 정치노선을 지켜 온 인물이다. 부산노회는 지금까지 목사세계에서 신대원 출신 계열과 대·중형교회 담임목사들에 의해 성패가 결정되어 왔다는 시작이 우세하다. 하지만 제3세력인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파워도 만만치가 않다는 여론이다. 한편 부산동노회도 이번 장로노회장 선출 차례이지만 박한구 장로(학장제일교회)가 단일후보로 이미 잠정적 결정이 내린 상태이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6-09-08
  • 충성된 종, 롯데 이인원 부회장 장로 떠나다
    ▲ 故 이원호 장로(1947년 8월 12일~2016년 8월 26일) 지난 26일 검찰 출두를 앞둔 롯데 이인원 부회장(서울 충신교회 은퇴장로)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지난해 성완종 장로가 자살했고, 이 장로 자살 얼마 전 포항시장 정장식 장로도 자살을 택했다. 지난 8월 30일 오전 6시 30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서울 충신교회 이전호 담임목사의 집례로 거행하고, 전국 남선교회연합회 회장 최내화 장로의 기도와 ‘충성된 일꾼’이란 제목으로 이전호 목사가 설교를, 약력 소개를 롯데그룹 윤종민 부사장이, 조사는 남춘균 장로와 조숙경 대리가 각각하고, 애도를 표시했다. 故 이인원 장로는 1947년에 경북 경산에서 출생. 1995년 12월에 충신교회 시무장로를 섬기다가 65세 때 조기은퇴를 했고, 사회적으로는 43년간 롯데를 위해 헌신해 왔다. 지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검찰 수사 중 자살한 사람은 92명에 달한다. 형사 정책연구원 분석 결과, 이중 72%가 공직자나 기업인 등 소위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화이트칼라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크리스천에게 자살은 사탄의 유혹에서 이른다고 죄악시한다. 더구나 일반 신도가 아닌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대표성을 일컫는 장로가 극단적인 방법으로 죄의 블랙홀에 메이게 하는 것은 흑암의 권세로부터 유혹받는 최악의 선택이다. △이인원 부회장 장로는 어떤 인물인가? 43여 년 전부터 평사원으로 롯데그룹에 들어가 그룹의 2인자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은 그의 정직과 신뢰라는 터 위에서 리틀 신격호라고 할 만큼 그림자처럼 롯데그룹을 지켜온 롯데맨이다. 그는 주일날은 회사에 바쁜 일이 있어도 충신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난 후 회사에 가서 일을 챙기곤 했다고 한다. 그의 부인 박정성 권사가 건강이 좋지 않아 10년간 병간호를 해왔던 이 부회장은 일흔이 다 된 나이에서 이제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여러 번 사의를 표했으나 받아주지 아니한 것이다. 지금은 부산에 연고를 두고 있는 김종수 선교사를 도와 과거 30여 년 전인 이인원 집사시절부터 황폐해진 북한 땅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해서 비타민나무 20만 그루를 북한 전역에 심는데 도왔다. 그리고 2년 간 평남 숙천군에 약 3000평 상당 옥수수와 육아원(고아원)에 빵을 만들어 도와주는 등 북한선교를 위해 조용히 기부하는 등 소리 없이 헌신해왔다고 김 선교사는 말하고 있다. 그는 온순하고 인자해 남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가만있지는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했다. 21년 전에 교회 장로가 되었지만 70세 정년이 되기 전 조기 은퇴하여 충신교회 원로장로가 아닌 은퇴장로 명단에 들었다. 충신교회 박종순 원로목사를 배후에서 도와 물질적으로 많이 베풀었다고 교회 관계자는 말하고 있다. 이인원 부회장은 외동아들 정훈이 낳은 손자 창빈과 창준을 데리고 놀면서 양평 북한강변에 소박한 전원주택을 짓고 은퇴 후 노후를 보낼 준비를 했다. 양평군 서종면에 주말이면 찾아와 머리를 식히곤 했는데,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술과 골프도 하지 않고 오직 회사 일만 생각한 이인원 장로는 평소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회장님, 하늘나라 가시기 전 예수를 믿어야지요”라고 권하니 신 회장은 “여보게 이 장로, 나는 십일조가 무서워 교회 못 나가네”라고 한 일화가 유명하다. 세계보건기구가 자살의 전염을 막기 위해 제안된 보도원칙을 보면 유명인의 자살에 대한 지면 할애를 최소화하라, 자살한 사람은 순교자 또는 영웅으로 미화하거나 비난하지도 마라는 내용이 있다. 연예인이나 저명인사의 자살보도는 베르테르효과 등이 나타나 자살이 이어지는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언론의 신중함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교회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을 이 극단적인 자살에 대해 사탄의 유혹으로 빠져 들어가서는 안 되며, 자살이 결코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생긴 것이 「생명의 전화」로 자살을 예방하는데 지금도 기여하고 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적세계의 출발점이라 느낄줄 아는 크리스천이었으면... 신이건 장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16-09-01
  • 신문을 몰라도 너무 몰라.....
    부기총이 신문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무지한 건지, 용감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신문은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발행해야 한다. 부기총은 분기에 한번씩, 1년에 4번 신문을 발행하겠다고 말하지만, 법률에 의하면 그러한 신문은 등록 될 수 없고, 신문이라고 호칭해서도 안된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에는 “신문 이란 정치·경제·사회·문화·산업·과학·종교·교육·체육 등 전체 분야 또는 특정 분야에 관한 보도·논평·여론 및 정보 등을 전파하기 위하여 같은 명칭으로 월 2회 이상 발행하는 간행물로서”라고 나와 있다. 일간과 주간 신문만이 존재하는데, 월2회 이상 발행을 하지 못할 경우 신문이 될 수 없다. 월간도 신문이 될 수 없는데, 부기총은 분기별로 신문을 발행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재정적으로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신문을 제작하는 것 보다, 발송료가 더 들어간다. 발송료의 경우 우체국에 정기간행물 등록이 되어야 가능하다. 4만부 중 그 절반만(2만부) 우편으로 보낸다고 가정 했을 때 (정기간행물 등록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약 5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인터넷 신문도 충족요건이 강화됐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작년 12월31일 개정되어 인터넷 매체의 기준을 강화했다. 첫째는 취재인력 2명 이상을 취재인력 3명 이상으로, 취재/편집 인력 3명 이상을 취재/편집인력 5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둘째는 기자의 상시 고용을 증명하기 위해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중 1가지 이상의 가입내용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셋째는 청소년 유해정보의 차단 업무를 맡을 책임자를 지정, 공개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기존 인터넷 언론도 문을 닫아야 한다.(단, 기존 언론사는 1년간 유예기간을 준다) 더 큰 문제는 김영란법이다. 최근 회사 소식을 알리는 사보가 잇따라 폐간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 달 시행되는 김영란 법의 영향이 크다. 회사 외부로 발송되는 사보도 신문과 같은 정기 간행물로 간주되어 김영란 법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발행인이 회사 대표들이기 때문에 김영란 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삼성, 한화, 삼양 등 열 곳이 넘는 대기업이 사보를 폐간하거나 온라인으로 대처한 상황이다. 지역 교계에서는 유독 부기총만 스스로 족쇄를 채우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다만, 찌라시나 불정기적인 홍보용 전단지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부기총이라는 단체는 언론의 감시 대상이지 감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6-08-24
  • 1년 반 만에 교체된 C교회 담임
    A교단 부산 B노회 산하의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C교회의 담임목사가 1년 반 만에 사임하고 떠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담임목사는 서울대 출신이며 사모는 명문대를 나와 교단 소속 신학대학의 교수로 근무하는 촉망받던 인물이다. 소속 노회 인사에 의하면 C교회의 담임목사는 서울에서 이름있는 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C교회에서 첫 담임목회를 시작했고, 그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으나 당회로부터 사임압박을 느끼고 사임서를 노회에 제출하고 떠났다고 한다. 위임목사가 아닌 3년 후 위임투표 방침에 따라 임시목사로 목회를 하는 가운데 담임목사가 구설수에 오르게 됐다. 주말부부로 생활하는데 사모가 학교에 사표를 쓰고 내려오든지 아니면 담임에서 사임을 할 것인지 양자 갈림길에서 섰고, 결국 사임하는 쪽으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C교회는 1년 반 만에 또 다시 담임을 청빙하게 될 단계에 서 있다. C교회 당회가 신문 공고 등 없이 수소문해서 청빙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소식이다. 원로목사와 후임 담임목사가 떠나고 세 번째 또 다시 떠나는 교회를 두고 부산교계에 화제거리 교회로 입소문이 번지고 있다. C교회 담임목사에게 문자로 해명을 요청했지만 노코멘크로 일관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6-08-24
  • 한국기독공보 천영호 사장을 보라
    2013년 서울 명성교회당에서 개최된 예장통합 제98회 총회에서 있었던 비화 한 토막. 전국 60개 노회에서 온 1500여명의 총대(목사, 장로)가 명찰을 달고 총회 장소에 들어왔다. 총회 부총회장 선거와 한국기독공보 사장 선출이 가장 이슈였던 총회 분위기였다. 부총회장 후보로 나선 정영택 목사(경주제일교회)는 대중 앞에서 떨지 않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후보 연설을 시작했다. 그런데 ‘만장하신 여러분’을 ‘환장하신 여러분’이라고 잘못 말하고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든 후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전했다. 군중을 한 번에 사로잡은 그의 유머는 결국 부총회장 당선이라는 결과를 얻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두 번째 한국기독공보 사장 선출이 있었다. 총회 안에 한국기독공보 사장직은 억대연봉은 물론, 판공비 월 3백만 원, 총회장과 함께 해외출장 등 선망하는 노란 자리로, 요즘 말하는 금수저에 해당된다. 변변찮은 이력을 소유한 부산에서 올라 온 천영호 장로를 행해 비토하는 온갖 괴문서와 문자메시지로 총회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냉랭한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는 떳떳하게 나와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기독공보가 그동안 누적되어 온 적자 13억 원을 갚아 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그만 두겠습니다. 수년 내 흑자로 돌리는 경영을 해 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투표 후 사장으로 선출됐다. 온갖 험담과 루머가 난무한 가운데 떳떳하게 나선 것이다. △3년만 적자를 흑자로 돌려 역대 기독공보가 누적되어 온 부채 13억원을 3년만에 완전 청산하고 이제는 연간 5억원의 흑자를 내는 전설적인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번 총회 감사의 지적되는 부분이 이색적인 말이 있다. “왜 사장에게 승용차를 사드리지 않느냐?” “월급 1/2을 주던 것을 완전히 지급해야 한다”고 감사보고서에 이와같이 지적을 했다. 전국 노회산하 약 130여 교회를 찾아다니면서 교인들을 울렸다 웃겼다하는 가슴에 와 닿은 자신의 신앙 간증을 전한다. 그리고 나서는 기독공보 후원자가 되어달라고 호소한 결과 수백, 수천 명이 늘어난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이를 통해 그동안 역대 사장이 누적해온 적자를 청산시켰고 흑자로 진입했다. 더구나 노후한 언론사 기자재 등 약 2억 원의 재원까지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 백양로교회 시무장로지만 한 달에 한번 부산에 올 정도로 기독공보에 미쳐있는 사람이다. 일개의 지사장이 본사 사장까지 된 전설적인 인물이다. CBS부산방송 본부장 차량 기사로 들어가 선교국 차장까지 역임했으며, 부산장신대에서 4년을 수학한 노력형이다. 소위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할 만큼 어려운 여건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역설한 천 장로가 지금에 이르기 까지 그의 인생 스토리는 한편의 드라마다. △이제 65세로 2017년 조기 은퇴한다? 총회 일각에서는 65세까지 기독공보 사장(4년임기)자리를 한 번 더 연장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경영 수완가를 놓치면 안되지 않느냐며 법을 고쳐서라도 연장해야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65세면 교회에서 만든 규칙에 준해 조기은퇴해야 하는데 총회 시무장로는 만 70세까지다. 천영호 장로는 총회 안 기독공보의 새로운 역사의 사도행전을 써내려간 주인공으로 남는다. ‘할 수 있다’의 그의 긍정의 의지가 한국교계 최초의 언론지인 한국기독공보의 사장이라는 영예를 누리고 있는지 모른다. 신이건 장로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16-08-2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