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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임중칼럼] 聖衣를 벗고 싶었다
    가을 향기가 짙다. 계절의 변화를 보면 하나님의 창조섭리가 얼마나 놀라운지 신묘막측(神妙莫測)이라는 한마디 말로는 부족하다. 부쩍 많아지는 생각 속에 오늘을 살면서 나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자괴감이 일어 읽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속리산엘 다녀왔다. 국보 915호로 지정된 법주사 대웅보전 석축에 잠시 앉아 목사와 승려에 대하여 묵상을 해 보았다. 소위 종교계 지도자인 목사와 승려들은 지금 이 나라 이 국민들에게 어떤 위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까? 시류에 합류하고, 이기적 주판을 굴리며 야합에 발 빠르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은 입안으로 삼켜버리는, 걸어야 할 걸음은 취보(醉步)처럼 뒤뚱거리며 역사가 혼돈할 때 희망적인 메시지 하나 내 놓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를 그 어찌 시대의 마지막 보루인 참된 종교 지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 목사로서 성직의 시무를 다하고 은퇴를 하였지만 목사의 성의(聖衣)를 벗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신명(身命)을 다해 주님이 맡겨 주신 성도들을 사랑하며 그야말로 평행감축으로 목양하고 은퇴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룟유다의 배반의 입맞춤을 당한 것처럼 사랑한 사람들의 배반의 잔을 받아들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당할 때는 심파(心波)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들고 영파(靈破)까지 느끼는 혼돈에 허덕일 때는 정말 성의를 벗고 싶었다. 그리고 작금에 이르러 세상이 혼돈하고 백성들이 지치고 방황할 때 희망 메시지를 내 놓지 못하는 부평초 같은 현실 앞에서 성직수행의 한계를 느끼며 자괴감에 성의를 벗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입고 싶어 입은 옷이 아니라 주님이 입혀 주신 옷이기에 스스로 벗을 수가 없다. 그런 자괴감과 복잡함으로 서재를 벗어나 산행에 올랐던 것이다. 울창한 삼림을 걷다가 도토리 하나를 주웠다.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정도가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서로 다툼을 이르는 말’이 도토리 키 재기다. 대동소이(大同小異), 막상막하(莫上莫下), 반근팔량(半斤八两)이 같은 의미로 상용된다. 은퇴 후 말씀사역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이 소위 자칭 교회를 위한다는 교인들의 다툼의 언행들이다. 그것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의도 1번지 선량(選良)들의 쏟아내는 위정(爲政)의 언행을 보고 들으면서 도토리 키 재기가 생각났다. 가수 나훈아 씨가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僞政者)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국민들이 쾌감을 느끼는 것은 작금의 정치지도자들은 爲政者가 아니라 나훈아 씨가 일갈한 僞政者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자리는 좋아하면서 그에 합당한 직무는 수행되지 않는 것이다. 나훈아 콘서트가 방송된 후 온 나라가 나훈아 신드롬(syndrome)에 빠진 듯하다. 모든 방송과 SNS는 <테스형>으로 국민들의 마음에 마치 가을단풍 물들 듯 딱히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물들이고 있다. 모든 음원사이트에는 나훈아 노래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74세의 노당익장(老當益壯)에 젊은이들도 열광한다. 식당, 카페, 저잣거리에서도 대화의 화제는 나훈아, 테스형이다. 구태여 시청율은 접어두고라도 74세의 가수가 콘서트 막간에 한 말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나훈아 씨가 한 말의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僞政者들이 생길 수가 없다” “역사책에서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못 봤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 “KBS가 여기저기 눈치 보지 않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 KBS가 거듭 날거라 믿는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우회적 메시지였다. 바로 여기에 전 국민들이 공감하면서 나훈아 신드롬이 일어나는 것이다. 묘할 정도로 수위가 조절된 시국비판과 언행의 진정한 자유함의 포효에 시청자들은 열광했으리라. 그리고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테스형>이 존재가치를 회복하는 희망메시지가 되어 국민들의 아프고 지친 현실을 바로 보게 한다. 전곡에 흐르는 음색의 애잔함과 그에 내재된 슬픔이 베어 나와 그냥 저절로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이 테스형이다. 그것이 지금의 국민정서다. 사랑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문안 인사를 한 후 망설이듯 친구가 입을 열었다. “나훈아 콘서트 보셨는가?” “생방송은 못보고 유튜브를 통해 부분 부분 보았네.” “2시간동안 시청하면서 내내 나는 그 아픈 세월 다 감내하면서 여전히 고난의 행보를 하면서도 기쁨으로 말씀사역 하시는 서목사 자네를 생각했네.” 전화를 끊고 산행 길에 주워들었던 도토리 생각이 났다. 인생여정의 모든 이들의 삶의 몸부림은 도토리 키 재기인 것을... 그리고 나훈아 씨가 부른 <테스형> 첫 소절이 생각나서 흥얼거려 본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래 맞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훈아 씨가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꿈이 고갈되면 노래를 접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목사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고갈되면 꿈을 심어줄 수 없는 삯군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구의 과분한 격려가 내 마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로 다시 들렸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목사로서 가치개념이 부서질 때 聖衣를 벗고도 싶었지만 목사로서 Calling과 Mission을 생각하며 다시금 聖衣를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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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성서연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찬송가를 펼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예배 찬송입니다. 송영, 경배, 찬양 등의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부분의 찬송은 대개 예배가 시작되는 첫 부분에서 부릅니다. 그리고 그게 끝입니다. 그 외엔 잘 부르지 않습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애창곡은 거의 자신의 생애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주님, 고난 중에 도우시는 주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평강을 주시는 주님 등에 관한 찬송가를 좋아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찬송가들은 그다지 자주 부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매우 섭섭해 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하나님께 구하기만 합니다. 우리 문제만 가지고 나갑니다. 찬송도 우리의 인생과 안타까운 사연과 관련된 은혜를 구하는 찬송을 주로 부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섭섭해하지 않으실까요? 코로나와 여러 어려운 사회적 상황 때문에 우리의 기도와 찬송은 더욱 우리 중심적으로 흐릅니다. 우리를 돕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만 늘어놓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황과 관계없이 영원히 찬양받아 마땅하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며,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능력과 지혜가 무궁하십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지 않으셨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높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님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더욱이 우리가 사랑을 받을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사랑하십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항하고 반역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으니, 그 은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말해 줍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으신 목적,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당신을 찬송하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엉뚱한 우상을 찬송했고,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그토록 미워하신 이유는 당신께서 받으셔야 할 찬송을 우상에게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들 말하고, 선교, 봉사에 힘을 씁니다만, 그 전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자체가 가장 위대한 주님의 일입니다. 이제부터 찬송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일찍 혼자되셨지만, 재혼하지 않으시고 남자의 손으로 긴 세월 동안 자녀들을 키우셨습니다. 집을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셨는지요. 집사님은 교회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으시고 신구약성경 전체를 타이핑하셨습니다. 말년에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면서 요양병원에 가셨는데, 매일 옥상에서 스무 장 이상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양 병원 옥상에서 홀로 부르는 찬양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천국의 찬양대원이 되셨겠지요.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채찍에 맞은 몸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제부터 찬양의 삶을 살도록 합시다. 621장 찬송을 읊조려 봅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온 맘과 정성 다하여 주 찬양하라 경배하라 내 영혼아 경배하라 내 영혼아 온 맘과 정성 다하여 주 경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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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시사칼럼] 얼룩날개 장군이 납시었다
    제법 찬바람이 조석으로 불어대는 계절입니다. ‘어디에 두었더라?’ 깜빡하기 일쑤인 전기장판을 찾고, 옷장 깊숙한 곳에 갈무리해두었던 두꺼운 옷들을 꺼낼 시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여름 내내, 아니 어쩌면 오늘 새벽까지도 누군가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했을지 모르는 불청객들이 이제 물러갈 때가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들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힌트 하나를 드린다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최근 대담에서 환경의 변화로 인해 뎅기열(Dengue Fever)을 유발하는 ‘이것’들이 이미 대만까지 도달했고 한반도에도 상륙할 날이 멀지 않았다 예언했습니다(『코로나 바이러스』, 인플루엔서). 생태전문가요 통섭의 대가로서 괜히 하는 우려가 아닙니다. 2015년 아사히(朝日)신문은 일본 땅에도 열대성 열병을 유발하는 매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이미 정착 단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보도한 바도 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 ‘모기’입니다. 이들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요? 영화 <주라기 공원>은 공룡의 피를 섭취한 모기 화석이 이야기의 시발점인데, 원 소설의 저자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이 의사 출신이라 그런지 그럴듯하게도 들립니다. 적어도 ‘역사 시대’를 모기는 인류와 함께 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이집트의 룩소르(luxor)에서 발굴된 람세스 3세의 신전에 모기의 모습이 새겨진 상형문자판이 발견되기도 했으니까요. 단순한 역사의 동반자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티모시 와인가드(Timothy C. Winegard)는 최근 ‘모기’라는 책에서 <인류 역사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살인자>라는 부제를 달고 이렇게 서문을 썼습니다. “우리는 모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110조 마리의 게걸스러운 모기 군단에 남극 대륙, 아이슬란드, 세이셸,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일부를 제외한 전 지구를 샅샅이 훑고 있다. 이 윙윙거리는 곤충 집단 중 최소 열다섯 종류 이상의 생화학 무기로 무장한 공격자들은 그 효과가 의심스럽거나 오히려 해가 되는 방어책만을 동원하는 인간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의 한 자락을 살펴볼까요? 주전 480년 부왕 다리우스의 꿈을 이루겠다며 40만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한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를 결정적으로 패퇴시킨 것은 뒤늦게 합류한 새로운 항공부대(모기)였습니다! 늪지대와 습지를 횡단하던 페르시아 군사들을 모기떼가 덮쳐 40퍼센트에 달하는 병사들을 말라리아와 이질로 쓰러뜨렸기 때문입니다. 모기는 성경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고쳐주신 “왕의 신하”의 아들이나 베드로 장모는 모기와 무관하지 않았을 열병을 앓았습니다(요 4:52; 막 1:30). 바울도 타우르스(Taurus) 산맥을 넘기 전 심한 병에 걸렸다고 하죠? 해안가 모기가 옮긴 풍토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모습을 본 마가가 떠나버렸으니, 모기는 선교 역사에도 실력행사를 한 셈입니다. 사도행전 28장을 보면 표류 끝에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멜리데 섬에서 바울이 “열병과 이질”에 걸린 보블리오의 부친을 안수하여 낫게 해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행 28:8).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전형적인 질병인 말라리아와 이질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님은 갔습니다’라는 시도 있지만, 모기만큼은 지금 잠시 떠나는 듯해도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더 광폭한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온다 하니 걱정입니다. 동남아시아 선교여행을 떠날 때 제일 먼저 맞는 것이 뎅기열 예방주사였는데, 이제는 우리가 사는 동네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신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하는 목소리도 있겠지만, 문제는 백신이 있고 없고의 여부가 아닙니다. 왜 뎅기열 모기가 북반구 중위도까지 진출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백신 개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만, 정작 문제는 앞으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재천 교수의 처방이 옳습니다. 현재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그때마다 땜질하듯 처방하는 백신이 아니라, ‘생태백신’이요 ‘환경백신’이라는 대안 말입니다. 그것만이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면서 모기를 비롯한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공감대가 이번 기회에 널리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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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성경인물탐구] 새로 뽑힌 예수님의 제자 맛디아
    사도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로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열두 명을 세우셨는데, 이 제자들을 가리켜 사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열두 명 중에 한 명인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반하였고 회개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도들과 성도들은 부족한 한 명의 사도를 충원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를 뽑기로 하고 뽑는 기준을 정하였습니다. 그들이 우선 내세운 기준은 항상 자신들과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이 얼마 되지 아니한 사람은 신앙의 진면목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열심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앞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못 가서 용두사미처럼 희미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금이 정련을 통해 순금이 되듯이 신앙도 연단을 통하여 깊어지고 성숙되어집니다. 새 사도의 선택 기준에 있어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이 되어야만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한 사도를 충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 선택함을 입은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십자가신앙과 부활신앙이 없이는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의 부활이었던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베드로와 제자들은 죽음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 일 곧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다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 가운데서 부활을 증거 할 사람을 뽑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두 사람을 무리 앞에 추천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고 또 한 사람은 맛디아였습니다. 두 사람을 추천한 것은 보다 객관적으로 주께 합당한자를 뽑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을 추천한 다음에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사도들은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매우 지혜로웠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그들이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으며,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기도에 힘쓴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는 중요한 무기입니다. 기도한 후에 사도들은 항아리 속에 이름이 적힌 돌멩이 둘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돌멩이 하나를 선택하였습니다. 그 돌멩이는 맛디아라는 이름이 적힌 돌멩이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맛디아를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비뽑기를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생각하였습니다. 제비뽑기는 구약 시대에 자주 사용되었던 방법으로, 새로 정복한 땅을 나눌 때, 금기를 어겼던 죄인을 찾아낼 때, 왕을 뽑을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제비로써 사도를 선출한 이유는 제자들 마음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일꾼, 교회에서 인정을 받는 일꾼,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경건한 성도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능을 지녔어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들을 썩힐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뜨거운 열심이 있어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열정은 가치가 없게 됩니다. 무슨 일에든지 적임자가 있게 마련이어서 사람이 많다고 모두가 이에 기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기용하실 때도, 교회나 사회가 일꾼을 쓸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경건 훈련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달란트의 분량에 관계없이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작은 일이라고 업신여겨서는 안 되며, 큰일이라고 뒤로 미루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은 그 분량이나 크기에 관계없이 주어진 사명으로 받아드리고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크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고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공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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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교회학교를살린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영화 <42>는 1940년대 초창기 미국 프로야구 최초의 흑인타자였던 재키 로빈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8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던 시대 속에서 사회의 편견과 부조리를 극복하고 훌륭한 야구선수로 성장하는 한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중에서도 참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관중석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수많은 어른들의 소리를 자연스럽게 따라 외치던 한 백인 어린 소년이 그라운드에서 주인공 곁으로 같은 팀 백인선수가 저벅저벅 걸어와 주인공과 어깨동무를 하며 말없이 주인공을 지지해주는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무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생각 없이 주변 어른들을 따라 흑인을 조롱하던 그 백인 소년은 또 다른 백인 선수의 의로운 행동을 보며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피부색을 가지고 공공연히 비하하고 차별했던 일이 벌어진 게 불과 8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 이런 인종차별이 일어난다면 엄청난 사회적 지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그때는 용인되던 일들이 지금은 완전히 틀리다고 비난받는 일들이 오늘날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사실은 이러한 인종차별과 관련된 사례들은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린 일들이다. 그것을 그때는 감지하지 못했고 오늘날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는 그래도 되었던 일들이 지금은 그러면 안 되는 일이 되어버린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은 또한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을 오늘의 시대에 맞게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가 바뀌면 바뀐 시대에 걸맞게 살아가야 하는데 여전히 예전의 시대에 살던 방식대로 산다면 시대에 맞지 않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이러한 경우에 적용하는 성구가 있지 않은가? “새 술은 새 부대에!”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이다.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지 않은가? 세상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예전에 유망 직종이었던 항공 여행 산업이 이렇게까지 곤두박질 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언택트라는 말도 처음 들어보는 신조어이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일들로 바쁘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와 교회학교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잘 인식하고 잘 대비하고 있는지 매우 우려가 든다. 혹자는 코로나만 끝나면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지극히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도 예산도 모두 회복될 거라 안일하게 생각하는 교회 중직자들이 예상외로 많다. 그러나 역사의 시계는 뒤로 가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미 우리의 다음세대들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신앙의 교육공백을 맞이했다. 이 타격을 어떻게 최소화하고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성민교회는 지난 9월에 다음세대를 비롯하여 전교인을 대상으로 문고리심방을 기획하고 실행하였다. 심방에 필요한 말씀과 정서적 돌봄 등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도록 설교집과 마스크, 손 편지와 수제 선물 등으로 가득 채운 선물을 각 가정별로 문고리에 걸어놓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문고리심방은 코로나시대의 목회적 대안으로 많은 교계 매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대안을 찾아갈 수 있다. 이 외에도 교회마다 다양한 방식들로 대처해나가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 시대에 걸맞는 방법을 교회와 교회학교는 나름대로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오히려 코로나 학습효과로 교회와 교회학교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한 시간으로 모든 신앙교육을 퉁치던 이전의 시대는 사라졌다. 그때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틀린 방식이다. 교회학교는 이제 우리 다음세대들의 일주일동안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예배 순서지를 제공하고, 가정에서 신앙 활동,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컨텐츠와 챌린지를 계속해서 공급하는 일도 이제 교회학교의 몫이다. 교회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속에서도 네트워크상에서 소통과 대화, 교제가 일어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연결해주는 일도 교회학교가 할 일이다. 필요하면 비대면으로 문고리에 걸어놓고, 다양한 신앙교육 컨텐츠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사이버세상에서 서로를 연결해주고 소통하는 이 모든 일들은 이전의 시대에는 자주 활용하지 못했거나 실행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새 시대에는 이렇게 신앙교육의 장과 활동범위가 광범위해져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다양한 창의적인 사고들이 교회학교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리 다음세대들을 위한 신앙교육이 폭넓어지기를 바란다. 간절함이 길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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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학교를 살린다
    2020-10-27
  • [목회자칼럼] 여호수아의 연골
    기독교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바라보는 것이다. 찬송가 중에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라는 가사가 있다. 신앙생활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봄의 법칙이 있다. 본때가 생기는 것이다. 성경 인물 중에서 여호수아는 연구 대상이다. 여호수아는 “구원하다”는 뜻으로 예수님과 이름이 같다. 여호수아의 시대는 오늘처럼 격동의 세월이었다. 여호수아의 사역은 광폭이 엄청나다. 한마디로 여호수아는 출애굽 역사와 가나안 정복 역사를 연결하는 결정적인 인물이다. 여호수아의 시대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그 땅에서 한 사람을 들어쓰신다. 모세가 죽은 후 도래한 여호수아 시대는 큰 위기요, 역사의 전환점을 이룬 때이다. 모세가 없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는 설명할 수가 없을 만큼 위대한 지도자가 모세인데 그가 죽은 후에 가차없이 여호수아 시대가 펼쳐졌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 이 위기의 때를 살리고 광야의 방황하던 40년 역사를 종식시키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한 뉴 리더십이 여호수아이다. 만사가 때가 있고 기한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여호수아는 이미 노인이었다. 인생 후반전도 끝나가는 인저리타임 정도였다. 유통기한이 다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고비를 넘기고 이 때를 살리는데에 여호수아를 오랫동안 준비시키셨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지금은 엘리야때처럼? 지금은 모세의 때처럼? 지금은 다윗의 때처럼? 그렇게 여호수아의 때를 맞추셨다. 믿음이 자라나듯이, 은혜가 내려와 고이듯이, 성령이 임하고 머물 듯이 리더십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키워지고 세워지는 것이다. 모세의 수종자였던 만년 2인자에서 최고 지도자가 된 것이다. 마치 학생이 선생이 되고, 주일학교를 담당하던 전도사가 담임 목사가 되듯이, 들판에서 양치기하던 청년 다윗이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듯이, 운동 선수가 코치가 되고 감독이 되듯이 모세 사후 대혼란기, 리더십의 진공상태가 되었을 때 마치 이때를 위하여 차곡차곡 준비한 듯이 여호수아가 쓰임 받는다. 종의 근성을 가지고 평생을 굴종하며 살아가기가 쉬운데 여호수아는 현장, 전쟁터에서 활동하던 군인에서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의 반열에 우뚝 올라섰다. 오랜 세월 하나님의 커리큘럼에 따라 잘 준비된, 버릴게 하나도 없는 그 시대의 맞춤형 지도자가 되었다. 여호수의아 사역 여호수아는 지난 시절 모세의 수종자로 청춘을 소모해버린 것 같았지만 그 어려운 시절이 나중에는 추억의 계절, 화려한 시절이 되었다. 젊은 날 하드 트레이닝, 파워 프로그램의 준비과정이 복된 시간이 되었다. 작은 경험들이 쌓여서 노하우가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원망하거나 시대를 탓하지 않고 사도바울처럼 족한 줄을 알고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이 되었다. 수종자로서 평생을 종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늙어 갈수도 있다. 흉보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모세를 적폐대상으로 생각한다거나 모세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시샘을 하면서 모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여호수아는 자연스럽게 모세 사역에 완성자가 되었다. 역사는 돌발 변수가 많고 예측불허의 상황들이 속출하지만 여호수아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놀라지 않았고 담대하게 돌파구를 찾아 나갔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점점 겁이 많아지고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에 빠지기 쉽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하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가나안 정복 역사를 펼쳐나갔다. 모세 장례식을 치르며 죽은 사역을 하고 권한 대행 노릇이나 하는 임시방편이요 일회용 반창고 같은 땜방이나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모세의 뒤를 이어 완숙한 지도자가 되었다. 시키는 일만 하던 사람이 이제는 나라와 민족을 지도하는 일을 하며 시킬줄 아는 자가 되었다. 여호수아의 연골 건강에서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이 연골이다. 연골이 나빠지면 운동, 여행을 할 수 없고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도 없게 된다. 여호수아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연골이 발달되었다. 모세가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에게 바통 터치가 되었다. 계주에서 주자는 바뀌어도 바통은 그대로 전달이 되어야 된다. 연결이 중요하다. 다윗에게 솔로몬, 엘리야에게 엘리사, 바울에게 디모데가 연결되듯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고 어려움 당한자의 중보기도자가 되고 연약한 자에게 돕는 배필이 되어야 된다.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에 여호수아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균형 감각을 잡았다. 이편, 저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굳게 서서 요동치 않았던 것이다. 모세 사후에 비교 불가한 대안이 되고 대체 불가한 대체가 되었다. 모세가 건너지 못한 요단강을 건너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였다. 모세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여호수아는 새 시대에 새 역사를 만들어 가는 새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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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부산기독교이야기] 기독교세계봉사회와 아펜젤러 박사
    6.25 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외원기관들이 우리나라를 원조하기 시작했다. 여러 외원 기관 중 기독교계가 절대적 다수를 차지했고 대표적인 기독교계 구호 단체가 기독교아동복리회(CCF, Christian Children's Fund), 선명회(World Vision), 홀트아동복지회, 컴페이숀(Compassion),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Mennonite Central Committee), 기독교세계봉사회(CWS: Church World Service) 등이었다. 앞의 4단체는 주로 고아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나머지 단체는 전 계층의 극빈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여러 구호단체가 부산에 본부를 두고 구호 사역을 감당했지만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기독교세계봉사회(CWS)였다. 기독교세계봉사회는 2차 대전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과 유럽의 국가들을 돕기 위한 목적에서 1946년 북미외국선교협회, 미국연방기독교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 미국위원회 등 3개 단체가 공동으로 설립한 구호단체였다. 이 단체는 미국 개신교회의 구호활동을 대변하고 대표하는 기구였는데, 1951~63년에 미국교회협의회(NCC)의 한 부서였다가, 1964년부터 독립한 범세계적 구제 및 재활단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세계봉사회의 한국지회가 설립된 때는 1949년 4월이었다. 기독교세계봉사회는 한국 지부가 조직되기 전부터 활동했는데, 첫 책임자는 감리교의 빌링스(Bliss Billings, 변영서)였다. 그 후에는 대구의 동산병원 원장을 역임했던 플레처(A.G. Fletcher) 의사였다. 그 이후 한국지부가가 조직되면서 구호 사역을 관장하도록 미국교회연합회(NCC)에 의해 파송된 인물이 아펜젤러 박사였다. 1889년 11월 6일 정동에서 감리교 초대선교사 아펜젤러(H. G. Appenzeller)의 장남이자 둘째로 출생한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 1889-1953)는 서울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미국으로 가 프린스톤대학교(1911), 드루신학교(1915)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하고(MA, 1917) 목사안수를 받고 그해에 제2대 선교사로 내한하여 인천 지방에서 활동했다. 1920년부터 1940년 한국을 떠나기까지는 선친이 설립한 배재학교 교장으로 봉직했다. 1940년 일제 의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호놀룰루 제일감리교회, LA의 감리교회 목사로 봉사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기독교세계봉사회 책임자로 미국교회 연합회의 파송으로 1950년 다시 내한하게 된 것이다. 그는 피난지 부산을 거점으로 미국본부뿐만이 아니라 우방각국의 봉사기관과 협조하면서 지원물자를 공급받아 전쟁이재민들에게 식량·분유·의복·담요 등 생활필수품을 지원하는 일을 주관했다. 이 일은 전쟁 이후까지 계속되어 휴전 후에는 고아원·양로원·신체장애자 재활센터 등 사회복지시설을 지원하였다. 기독교세계봉사회는 한국지회가 조직되기 이전인 1947년부터 1955년 어간에 한국을 위해 1억 달러의 현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1945년부터 1961년까지 외원기관의 전체 후원금은 31억 달러에 달해 외원기관이 ‘제2의 보사부’로 불릴 정도였는데, 기독교세계 봉사회가 상당 부분을 감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펜젤러는 부산을 거점으로 피난민과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며 동분서주했다. 그는 1953년 11월까지 3년 동안 구호활동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다가 백혈구 부족으로 쓰러져 치료차 미국으로 돌아가 계속 치료를 받았으나 1953년 12월 1일 뉴욕의 감리교 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만 64세 때였다. “나의 뼈는 나의 고국이요, 사랑인 한국 땅에 묻어 달라.” 마지막 유언이었다고 한다. 장례식은 한국선교사 출신이자 고인의 동료였던 전선(全善, Anders Kristian Jensen, 1897-1956) 목사의 사회로 엄수되었다. 젠센은 1927년 내한하여 선교사로 활동했고, 6.25 전쟁 중에는 개성에서 중공군의 포로로 억류생활하다 석방된 인물이었다. 미국기독교연합회는 한국기독교연합회에 이렇게 통보했다. “한국에서 출생하고 65평생을 한국, 한국민, 한국교회를 위해 가장 선한 친구로, 가장 착한 지도자로, 가장 귀한 목자로 봉사하던 고 아펜젤러 박사의 최후를 영결하기 위한 장례식은 12월 2일 수요일 오후 미국 뉴욕 시내 감리교회에서 부인과 아들, 그의 형제인 두 아펜젤러 박사와 한국인 교우와 한국관계자들과 미국교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서 젠센 박사의 사회로 엄숙히 집례되었다. 특히 웰치 감독과 베커 감독이 장례식 집례를 보좌하였다.” 장례를 마치고 그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유골은 젠센 선교사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1954년 4월 20일 오후 2시 정동감리교회에서 배재학교와 기독교세계봉사회 공동 주최의 이장예배가 엄숙히 거행되었고, 유해는 그의 부모와 누나가 묻힌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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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의학칼럼] 안구건조증
    ■안구건조증이란? 안구건조증이란 눈물이 부족하거나, 눈물이 지나치게 증발하거나, 눈물 구성성분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안구 표면이 손상되고 눈이 시리고 자극감, 이물감, 건조감 등의 자극 증상을 느끼게 디는 눈의 질환을 말합니다. 보통은 기후적 특성상 대기가 건조한 겨울철에 많이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미세먼지의 영향과 선풍기, 에어컨 바람등의 영향으로 4계절 내내 환자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구건조증의 증상은 어떻습니까? 눈이 뻑뻑해지고 이물감이 느껴지거나 눈 안쪽이 살짝 가렵거나 혹은 따가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눈꺼풀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빨갛게 충혈이 되기도 합니다. 시야가 살짝 흐려지거나 평상시보다 빛이 눈부셔 보일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건조감이 며칠간 지속된다면 안과에 오셔서 진단을 받으셔야 합니다. ■안구건조증의 원인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원인을 크게 나누면 눈물이 적게 나오는 경우와 눈물이 빨리 증발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눈물이 적게 나오는 경우는 노화, 자가면역질환등으로 눈물샘의 기능이 저하되는 것이 있고 눈물이 빨리 증발하는 경우로는 컴퓨터를 많이하거나 스마트폰을 많이 해서 집중하게 되면 정상적인 눈 깜박임을 하지 않고 오래 뜨고 있기 때문에 증발되어서 건조증이 발생하게 됩니다. 또한 마이봄샘질환인 눈꺼풀염증질환에서 눈물의 지방층을 유지 해주지 못해 안구건조증을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안구건조증을 방치할 경우 다른 안과질환으로 발생할 수 있나요? 안구건조증을 방치할 경우 각결막염이나 안검염으로 진행되어 만성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안구건조증이라는 용어보다 건조 각결막염이라고도 하자는 안과학회 차원의 논의가 있습니다. 단순히 건조로만 보기에는 만성화되어 잘 낫지 않는 난치성질환이 될 수 있다고 생각 됩니다. 다른 안질화과 증상도 유사하여 감별하기 곤란하므로 병원에 방문하여 진단을 받는게 좋겠습니다. 특히 백내장과 녹내장등도 눈이 뻑뻑해지거나 이물감을 느끼기 때문에 주의해야겠습니다. ■안구건조증은 어떻게 검사하나요? 안과에 방문하게되면 우선 증상에 대한 진료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양상으로 증상이 나타나고 불편한 지, 생활방식이나 컴퓨터 사용시간 및 스마트폰 사용시간, 면역질환이나 전신질환이 있는지 복용하는 약제가 있는지도 물어보게 됩니다. 눈의 건조상태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눈물띠의 두께, 눈물 분비량, 눈물이 증발하는 시간, 눈의 충혈, 염증 유무와 눈꺼풀테의 염증 유무가 중요한 검사입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복잡한 검사를 단순화해서 수치로 보여주는 검사장비들이 많이 도입되어 안구건조증의 진단, 치료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눈물층 중 지질층에 대한 검사 및 치료를 하는 장비가 병원마다 도입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주위에 안구건조증으로 진단받고 인공누액을 넣으시는 분들이 많던데요, 치료법은 어떤 것이 있나요? 인공눈물을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좋아졌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인공눈믈은 눈물을 보충하는 역할이지 눈물의 분비를 촉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검사를 통하여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야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건조의 원인에 따라 눈물이 부족하다면 인공눈물을 보충해줘야 하고 눈물의 생성을 촉진하고 염증을 조절하기 위해 건조치료제를 사용해야 할 수 있고 심한 경우 안연고를 사용하거나 눈물의 배출을 막고자 눈물이 배출되는 눈물점을 플러그로 막기도 합니다. 그 외 지방층을 생성하는 마이봄샘의 치료를 위해 온찜질을 하고 마이봄샘 입구를 청소하기 위해 짜주거나 안검 마사지등도 시행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병원뿐만 아니라 집에서 직접 홈케어를 할 수 있도록 온열 마사지기구나 세척액이 나와있으므로 병행한다면 치료가 효과적일 것입니다. ■안구건조증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소 안건강에 신경을 써야겠지요. 영양공급을 위해 식품을 가려서 섭취하고 눈을 혹사시키지 않는 생활습관이 중요하겠습니다. 눈을 청결한 상태로 유지하여 염증이 생기는 것을 차단하고 가습기를 사용하여 습도를 올리거나 온열기구의 사용을 줄여 실내온도를 낮추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무엇보다 장시간 독서나 TV 시청,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오랜 사용 및 청소년들의 경우 장시간 게임등은 증세를 악화시킬 수 있으니 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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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교회학교를살린다] “온도차를 줄여라”
    일상생활이나 여러 방면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대하여 나와 타인 또는 이편과 저편의 견해가 다르거나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인식의 차이가 있을 때 흔히 “온도차가 난다” 또는 “온도차가 심하다”라는 말을 쓴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느끼는 온도차는 개신교에 대한 우리 내부와 외부의 견해차이다. 어느 교단 신문에서 설문 조사를 한 결과를 보니 그러한 생각이 더 들었다. 이 설문조사에서 특히 ‘개신교를 신뢰한다’라는 항목이 눈에 띄었다. 이에 대해 개신교인 스스로는 71.2%가 긍정적이라고 대답하였지만, 타 종교인들과 무종교인들은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대답이 고작 5% 미만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개신교인인 우리와 비개신교인들 사이에 온도차가 너무나 심하게 나는 지점이다. 실제로 명절을 앞두고 한 성도님이 고향에서 받았다는 전화 한 통에 참 만감이 교차했다. 한 고향 이웃이 형님에게 “당신 동생, 교회 다니니까 고향에 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오늘날 개신교인들이 코로나 상황 속에서 사회적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 시점에 우리는 심각한 자성과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교회 안의 우리들이 안일한 자세로 이만하면 좋다는 식의 생각으로 안주해오는 동안 교회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점점 더 위태롭고 불안해진 것은 아닐까? 교회가 사회를 선도하던 시대가 지나고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와 버렸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요즘이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 커져버린 이 온도차를 줄이고 대사회적인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하여 개인과 교회 공동체가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어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교회학교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지면에서 왜 교회와 개신교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논하는 것인가 의아해 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속의 신앙공동체와 교회학교는 전혀 동떨어진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갈라설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교회학교와 교회, 성인세대와 다음세대는 모두 신앙인으로서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코로나19로 인해 그리고 한국교회 내부의 문제들과 외부의 문제들로 인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데,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서 다음세대들은 스스로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잃거나 교회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과연 교회와 교회학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기독교교육계에서는 이러한 교회와 사회 사이의 인식의 갭을 줄이고, 교회가 사회와 인류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까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있어왔고, 특히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삶의 문제이자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사명에 관한 것이다. 요즘 신학계와 기독교교육학 영역에서는 이러한 연구를 공적신학, 공적실천신학이라는 타이틀로 많이 하고 있다. 신앙인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신앙생활을 잘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 속에서 함께 공존하며 타인과 세상을 사랑으로 섬기고 돌보는 일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예전에 교회가 구원의 방주로서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선교의 사명을 다하여 교회 안으로 불러오는 역할을 강조했었다면 이제는 세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가는 사람들을 구하는 구조선이 되어,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아픔을 감싸 안아주는 역할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널리 빛과 소금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의 문제가 신앙교육에서 강조가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비상상황을 맞이하여 세상은 교회를 주목하고 있다. 이제는 교회와 교회학교가 이 난관 앞에서 세상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세상을 도와야 하는가가 곧 기독교교육, 신앙교육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온 국민이 바이러스의 재 확산을 온몸으로 막기 위해 어떤 이는 현장에서 또 어떤 이는 집안에서 머물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없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이들에게 교회와 신앙인들이 희망과 용기, 기쁨의 메시지가 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랑의 인내와 수고를 배우고 실천하는 도전이 필요하다. 우리가 때로는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받는 억울한 일이나 부담스럽고 힘든 일도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갈 때, 우리의 다음세대들도 우리의 뒤를 따라 아주 조금씩이지만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느리지만 강력한 “다음세대를 위한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교육과정”이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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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학교를 살린다
    2020-10-27
  • [부산기독교이야기] 피난지 부산에서 순직한 원한경 박사
    원한경(H. H. Underwood, 1890-1951)은 언더우드 가의 제2대 선교사였다. 초대 언더우드(H. G. Underwood)는 원두우(元杜宇)라는 한국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1885년 4월 5일 내한하여 31년간 조선을 위해 봉사하고, 예기치 못한 발진티푸스의 악화로 미국으로 돌아가 1916년 10월 12일, 57세를 일기로 뉴 저지주 에틀랜틱시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로부터 83년이 지난 1999년 7월 그의 유해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외국인묘지로 이장되었다. 원두우 선교사의 독자가 원한경인데, 1890년 9월 22일 서울 정동에서 출생했다. 한국에서 중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그는 16세가 되던 해 한국을 떠나 프랑스, 스위스 등지에서 1년간 수학하고 미국으로 가 아버지가 공부한 뉴욕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에 이어 자신도 선교사의 길을 다짐하고 22세가 되던 1912년 9월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내한하였다. 처음에는 경신학교에서 영어와 역사를 가르쳤으나, 연희전문학교가 개교하는 1915년부터 연희전문학교에서 가르쳤다. 1916년 부친 사망 시 미국으로 가 교육학을 더 공부하고 1917년 내한한 그는 연희전문학교 전임교수로 영어 철학 교육학 심리학 등을 가르쳤고, 191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후에는 연희전문학교의 행정과 운영을 맡기도 했고, 1934년 10월부터는 이 학교 3대 교장으로 봉사했다. 1923년에는 미국으로 가 뉴욕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1924.6) 받았고, 이어 1925년 6월에는 Modern Education in Korea 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후에 일제의 압력으로 교장직에서 물러나고, 10일 간 구류처분을 받기도 했고,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는데 결국 강제 추방되었다. 해방을 맞게 되자 1945년 9월 미육군성 관할 하의 한국어 통역관으로 임명받아 다시 내한하였고, 곧 미군정장관 아놀드 중장의 통역 및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1946년 8월에는 연희대학 명예총장으로 추대되었고, 1947년에는 미군정청 교육부장관 고문으로 임명되었으나 7개월 후에는 군정 업무를 마감하고 연희대학으로 복귀했다. 그의 주된 업무는 연희대학의 복구와 확장 그리고 재정 동원 및 대외 관계였다. 당시 총장이 백낙준 박사였다. 얼마 후 불행한 일을 겪게 되는데 1949년 3월 17일 그의 아내 에델 반 와그너(Ethel van Wagoner, 1888-1949)는 다섯 명의 좌익청년들에 의해 피살된다. 4남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원일한 박사였다. 새문안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렀는데, 교회 찬양대 지휘자 이창식 교수의 지휘로 ‘만세반석 열리니’를 부르고 이어 ‘할렐루야’를 노랬는데, 장례식에서 할렐루야를 부른 것이 이 때가 한국에서 처음이었다고 한다. 부인을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했다. 그리고 5월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부인의 죽음을 심각하게 여겼고 이때부터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6.25 동란이 발발했다. 미국에서 전쟁 소식을 들은 그는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한국의 비극과 믿음’이라는 소책자를 썼다. 그리고 한국을 지원해 주도록 백망으로 노력했다. 그러다가 1950년 10월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심리전 G-2’의 민간고문자격으로 일했다. 이 때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고 부산으로 피난을 권했다. 그래서 원한경은 부산으로 와 동래에 머물게 되었다. 그의 장남 원일한은 부산에 있는 해군 본부에서 일하고 있었고, 막내 원득한은 미육군 소위로 부산에 주둔하고 있었다. 부산 동래에서 때로 뒷산 금정산을 오르기도 했으나 심장병으로 고생했다. 심장마비가 오는 일도 있었는데, 1951년 2월 20일 그날은 치명적이었다. 결국 원한경 박사는 그날 오후 7시 45분, 61세의 나이로 부산에서 사망했다. ‘조선의 선박’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그는 사망 직전 까지 이순신에 대한전기를 집필 중이었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일생을 우리나라 교육계와 종교계에 바쳤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을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많은 공헌을 한 문화계의 대은인인 연희대학 명예총장 원한경 박사는 20일 하오 7시 40분 산동여관에서 61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서거하였다. 특히 박사는 한국을 제 2의 고향이라고 늘 말해 왔으며 한국을 이해하기가 한국인 이상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2월 26일 오후 2시 부산역전의 미국인교회(Base Chapel, 전 부산시 공회당)에서 사회장으로 거행되었는데,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 미8군 사령관과 유엔군 장교들, 미국대사와 해외 공관장들, 한국교회 대표들이 참석했다. 장례식은 아펜셀라의 사회로 거행되었고, 공무로 제주도에서 비보를 듣고 달려온 백낙준 박사가 영결사를 했다. 전쟁 중이라 원한경 박사는 부산 대연동의 유엔 묘지에 묻혔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난 후 1956년 양화진 외국인 묘지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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